김수천 사장 사퇴로 ‘꼬리 자르기’미봉책... 재무개선 막중한 부담은 한창수 신임 사장에게 전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No Meal(노 밀)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에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과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7월 발생한 사상 초유의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는 여러 정황들이 아시아나항공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책임을 김수천 사장에게 홀로 지우고 마무리하는 형국이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의 구원투수로 그룹 재무통인 한창수 아시아나IDT 사장이 투입됐다. 박삼구 회장의 아들 박세창 사장은 전임 사장이 일궈 놓은 아시아나IDT를 맡아 또 안전한 곳에서 경영 검증을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03년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기존 기내식 공급업체인 LSG스카이 셰프는 아시아나항공 측이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에 1600억 원을 투자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지난 6월 30일자로 계약을 종료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박삼구 회장이 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소를 위해 기내식 업체를 무리하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지적 속에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7월 1일부터 기내식 공급업체를 게이트고메코리아로 바꿨다.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과 게이트고메코리아는 30년 짜리 계약을 체결하면서 게이트고메코리아의 모회사인 중국 하이난 그룹이 금호홀딩스에 1600억 원 투자를 완료했다.
그런데 기내식 공급을 위해 신축 중이던 게이트고메코리아 공장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해 예정대로 기내식을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임시방편으로 중소 기내식업체 샤프도앤코에 공급을 맡겼지만 도저히 기내식 수요에 공급량을 맞출 수 없게 되면서 기내식 대란이 터졌다. 이 과정에서 샤프도앤코의 협력사 대표가 납품 지연에 심한 압박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터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됐다.
논란이 지속되자 박삼구 회장은 사태 직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LSG는 루프트한자 대 아시아나항공간 지분 비율이 80 대 20으로 설립돼 경영참여도 힘들었다”며 “다른 업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게이트고메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율이 60 대 40으로 경영 참여나 원가공개도 가능해 계약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사태 책임을 김수천 사장이 홀로 지면서 ‘꼬리 자르기’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7일 전격 사퇴한 김 사장은 2014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이끌면서 올해 광화문사옥 매각을 비롯해 CJ대한통운 주식을 매각하면서 차입금을 8656억 원 감축하는 등 재무개선에 주력해 왔고, 임기도 오는 2020년 3월까지 1년 6개월을 남긴 상황이었다. 사퇴 당시 기내식 공급도 정상화 된 상태였다.
하지만 기내식 대란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박삼구 회장은 여전히 그 중심에 서 있다. 아시아나항공 소액주주 8명은 박 회장, 김 전 사장, 서재환 금호산업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70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차 변론이 지난 19일 열리면서 본격화 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수천 사장의 사퇴 후 9월 10일 아시아나항공 신임 사장으로 한창수 아시아나IDT 사장이 취임했다. 한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창립 이후 재무와 회계 담당으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관리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경영관리본부장을 지낸 그룹 재무통으로 꼽힌다. 그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이란 녹록치 않은 중책을 맡게 됐다.
박삼구 회장(왼쪽)과 박세창 사장 부자. 사진=금호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은 자회사 상장을 통해 재무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차입금은 대략 5300억 원 규모로 이를 아시아나IDT 상장과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아시아나IDT에 대해 이르면 오는 11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한창수 사장은 아시아나IDT 코스피 상장 추진을 진두지휘하면서 목전에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장의 결실은 박세창 아시아나세이버 사장이 한 사장 후임으로 아시아나IDT 사장을 맡게 되면서 보게 됐다.
아시아나IDT는 그룹 내 IT 관련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는 시스템통합(SI)업체다. SI업체 특성상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그룹 물량으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아시아나세이버는 아시아나항공 예약 발권 시스템 구축 및 서비스 제공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로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 모회사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경영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기회가 없었던 박세창 사장으로선 아시아나IDT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3세 경영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전 아시아나세이버나 현재 아시아나IDT 등 박 사장의 앞날에 당분간 큰 난관은 없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반면, 한창수 사장의 어깨는 아시아나IDT 시절에 비해 막중해졌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은 부채비율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내년 1월부터 항공기 운용리스 비용이 새 국제회계기준(IFRS16) 적용에 따라 부채로 전환되면서 아시아나항공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총 운항 항공기의 60%(76대)를 운용리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간 운용리스를 비용으로 처리했던 기존 회계처리 기준이 2019년 1월부터 운용리스 회계처리(K-IFRS) 변경에 따라 운용리스를 전액 부채 처리로 바뀌게 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 증가는 불가피해졌다. 올해 6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597.95%다. 6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이 운용리스 계약을 통해 앞으로 지급할 최소 리스료는 2조 9784억 원이다. 이를 부채로 환산해 기존 부채와 합산하면 부채비율은 851.7%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자회사 상장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도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IDT는 지난 9월 5일 한국거래소의 코스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IDT 주식 가운데 220만 주(19.82%)를 처분하기로 하고 지난 달 17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공모절차에 들어갔다.
문제는 최근 증시불안으로 아시아나IDT의 공모 규모가 1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란 당초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IDT의 공모 규모를 637억~795억 원, 시가총액 2142억~2675억 원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46%를 보유한 저가항공사(LCC)인 에어부산도 올해 상장을 추진했지만 LCC 업황 침체로 사실상 물 건너 가 이를 통한 자금 수혈도 어렵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초 4분기 차입금 상환을 위해 이 달과 11월에 총 4200억 원 규모의 4년 만기 장기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8일 현재까지 발행한 ABS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 규모는 8월 대비 503억 원 줄어든 3조 1411억 원이지만 여전히 막대한 규모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차입금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으며 단기차입금 비중은 이달 현재 30% 수준을 유지하면서 1년 전 대비, 2017년 말 대비 1조 원 규모의 차입금을 줄인 상태다”라고 강조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