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미진해 서울고검 재수사 명령 두 차례나 받아…북부지검 “피의자는 잘못 없다, 검찰 잘못”
2013년 3월 8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광운대 빙상장에서 스케이트 연습을 하던 A 씨(28)는 빙판 위에서 넘어져 패딩 펜스에 부딪쳤다. 움푹 패인 빙판에 걸려 튕긴 앞 선수의 스케이트 날이 자신에게 향해 이를 피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A 씨는 척추가 손상돼 두 다리를 못쓰게 됐다. 평생 반신불수로 살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난 뒤 A 씨는 2013년 10월 18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광운대 빙상장 시설 관리 책임자였던 B 씨(55) 등을 고소했다. 경찰은 얇았던 패딩 펜스와 고르지 못한 빙질을 원인으로 봤다. 당시 수사 담당 경찰 관계자는 “B 씨는 광운대 빙상장 시설 관리 책임자로 안전한 펜스를 설치하고 빙상장 바닥을 고르게 관리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으나 이를 게을리해 상해를 가했다”고 기소 의견을 냈다. 사고 당시 패딩 펜스는 두께가 25㎝였다. 패딩 펜스의 국제규격은 40~60㎝다. 사고 뒤 광운대는 페딩 펜스를 두께 50㎝로 교체했다.
북부지검은 경찰의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이 사건을 2014년 12월 31일 불기소 처분했다. 피의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북부지검은 “총괄 관리를 맡긴 했지만 행정 전반 업무를 담당할 뿐이다. 빙상장 관련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반인이 아닌 훈련 목적으로 선수에게 대관할 땐 대관하는 쪽이 감독 및 총괄한다”며 “패딩 펜스의 국제규격은 40~60㎝지만 국내 일반대회 규격은 20~40㎝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대회 때도 아무 문제 없었다. 전국의 다른 빙상장 중 상당수도 같은 두께의 펜스를 사용한다. 굵은 패딩 펜스를 사용해도 부상은 발생한다”는 피의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북부지검은 광운대가 제출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일반 빙상장에 설치하는 패딩 펜스 두께는 관련 규정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보낸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패딩과 선수의 안전 규정’을 보면 ‘국제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라 40~60㎝여야 한다고 하지만 ‘일반대회’는 20~40㎝로 규정하고 있다”며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한 패딩 펜스 두께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불기소이유서에 적었다.
광운대는 문구 하나를 추가했다.
문제는 광운대가 북부지검에 제출한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패딩과 선수의 안전 규정’이 조작 의혹에 빠졌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패딩과 선수의 안전 규정’ 원본에는 일반대회 관련 패딩 펜스 규정문은 없다. 반면 광운대가 북부지검에 낸 제출본에는 “일반 대회는 패딩의 높이는 링크보드의 높이와 같게 하여야하고 폭은 20㎝/ 40㎝로 구분할 수 있고 길이는 200㎝이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이 하단에 ※ 표시와 함께 적혀 있다.
두 자료 가운데 하나는 특정인의 편집을 거쳤다는 말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원본은 모두 평서형 문장으로 쓰였다. 광운대의 제출본에는 조작 의혹이 제기된 문장만 존대문으로 적혔다. 원본은 동사 ‘하다’를 ‘해야’라고 표기했지만 광운대의 제출본에는 ‘하여야’라고 썼다. 원본은 패딩 펜스 규격을 ‘40㎝에서 60㎝’라고 했으나 광운대 제출본에는 ‘20㎝/ 40㎝’라고 표기됐다.
광운대 자료와 실제 각 빙상장이 보낸 자료.
이뿐만 아니다. 광운대는 자체 작성한 다른 빙상장의 패딩 펜스 자료를 냈다. 일부 사실과 다른 자료였다. 목동빙상장은 2011년 7월 패딩 펜스를 30㎝에서 50㎝로 교체했지만 광운대 자료에는 20㎝짜리를 40㎝짜리로 2013년 7월 교체했다고 적었다. 과천빙상장은 두께 정보가 달랐고 고양빙상장 역시 두께와 교체 시기가 광운대에서 작성한 자료와 큰 차이를 보였다.
북부지검은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4년 9월 12일 북부지검 담당 검사는 A 씨에게 “우리나라 쇼트 트랙 경기할 때 링크장 크기나 펜스 높이 및 폭 등에 관한 규정이 있는지 또는 권장규격이 있는지 그 규격은 어느 정도인지 문의를 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주최하는 국내 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 기준에 따르게 돼 있다. 패딩 펜스 규격은 높이 120㎝, 너비 200㎝, 두께 40㎝ 이상이라고 돼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기소하는 데 유리한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혐의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돼 버렸다. 조작 의혹이 있는 광운대의 제출 서류를 북부지검은 신뢰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답변. 광운대 제출본 같은 문장을 넣은 적 없다고 확인했다.
A 씨는 항고했다. 이선훈 서울고검 검사는 이 사건이 이상하다고 판단해 2015년 4월 28일 재수사 명령을 내렸다. 얼마 안 돼 증거의 조작 여부를 판가름할 결정적인 답변이 대한빙상경기연맹에게서 나왔다. 2015년 6월 29일 북부지검은 원본과 제출본의 차이를 두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사실 여부를 확인 받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위와 같은 문구를 연맹 측에서 빙상관련 기관 또는 학교 측에 송달한 공문 또는 지시·지침 등이 있습니까?”라는 북부지검의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사건은 표류했다. 15개월이나 더 걸렸다. 북부지검은 2016년 7월이 돼서야 기소했다. 2018년 1월 18일 북부지법은 빙상장 관리자 B 씨 등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조작 의혹 서류를 제출한 광운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사문서변조,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2016년 9월 27일 B 씨를 다시 고소했다. 그 해 12월 27일 북부지검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사문서변조죄는 타인 명의의 문서에 대해 권한 없이 변경을 가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만든 서류는 국제 안전규정을 번역한 문서로 작성자가 기재되지 않았다. 문서의 위조 또는 변조 여부를 확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문서변조를 무혐의 처분했다.
북부지검은 이 문제의 본질을 조작 의혹 서류 제출이 아니라 미진한 수사를 한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북부지검은 “피의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권리와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권리는 있지만 진실만을 진술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다. 허위 사실을 진술하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하지 않아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면 피의자의 수사 방해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불충분한 수사 때문”이라고 적었다.
A 씨는 항고했다. 최인호 서울고검 검사는 북부지검에 2017년 3월 31일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고 일렀다. 북부지검은 7월쯤 A 씨를 불러 “혐의가 인정되기 어렵다”며 설득하다 2017년 8월 4일 불기소 처분했다. 처분서에는 “피의자는 진실만을 말하도록 법률상의 의무가 부과되는 건 아니다”라고 또 다시 적혔다. A 씨는 광운대 사고로 반신불수가 됐다. 북부지검 처분으로 나머지 반쪽도 타들어 가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