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방위상에도 활동 알리지 않고 스파이 활동…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처음 존재 드러나
육상자위대의 비밀조직 ‘별반’에 대해 보도한 주간문춘 11월 17일호.
2008년 4월, 교도통신 기자(현재는 편집국 편집위원) 이시이 교우는 전직 육상자위대 간부와의 간담에서 ‘별반’이라는 낯선 조직명을 듣게 된다. 그로부터 5년간의 취재를 거쳐 2013년 11월 28일 ‘육상자위대, 독단으로 해외에서 정보활동’이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총리와 방위상도 모르게’ ‘자위관이 신분 위장’ ‘문민통제 일탈’이라는 꽤 충격적인 단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기사를 요약하면 ①육상자위대에는 ‘별반’이라 불리는, 조직도에 없는 비밀정보부대가 존재한다. ②멤버 전원이 육상자위대의 교육기관인 고다이라학교 심리방호과정을 수료했다. ③냉전시대부터 러시아, 중국, 한국, 동유럽 등에 거점을 마련해 신분을 위장한 채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 ④자위대는 이러한 활동을 총리와 방위상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실행 중이며, 이는 문민통제를 일탈하는 행위다. ⑤별반의 활동자금에 관한 예산상의 처리 등이 불명확하다. ➅별반이 미군과 밀접한 관계라고 지적하는 관계자가 많다.
사실, 별반의 존재는 과거 몇 차례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일본 매체 ‘주간아사히’에 따르면, 그 존재가 처음 드러난 계기는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이었다. 주간아사히는 “당시 납치를 실행한 한국 중앙정보부(KCIA)가 김대중의 일본 내 거주지 확인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육상자위대원 출신으로 구성된 흥신소를 이용했다”면서 “이 기관의 소장이 전직 ‘별반’ 멤버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고 전했다.
또 1975년 별반 관계자로부터 익명의 내부고발이 있었으며, 일본 공산당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아카하타’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증언들은 1970년대에 멈췄고, 이후 별반의 실체는 안갯속에 갇혔다. 일본 매스미디어들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2013년 교도통신의 기사는 제법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이시이 편집위원은 “한 자위관에게 별반을 기사화하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말했다. 기사가 보도된 뒤에는 “최소한 미행이나 도청은 각오해둬라”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특히 지하철을 탈 때 맨 앞에서 기다리지 마라” 등등 신변의 위협을 느낄 만한 말들이 이어졌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발했지만 현재까지 일본 정부는 ‘별반이라는 조직이나 그들의 해외 활동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이다. 존재를 추궁하려는 움직임도 전무하다”며 “과연 아베 총리가 문민통제를 존중하는지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이시이는 ‘자위대의 어둠조직’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다시금 세간에 별반을 오르내리게 했다. 여기엔 육상자위대 출신의 전직 최고위 지휘관을 지낸 복수의 인사를 상대로 취재한 내용들이 수록됐다. 이시이에 따르면, 별반은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일본 관련 국가들의 정보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팀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민간인이나 외무성 등 공무원을 가장해 첩보활동을 벌인다. 다만,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출신자들도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또 활동 시에는 가명을 사용하며, 대원들끼리 코드네임으로 부르고 있어 서로의 본명조차 모른다. 물론 가족들에게도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히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활동자금은 매우 풍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시이는 “지출에 대한 결재가 따로 필요 없다. 정보제공료 명목으로 한 번에 3000만 원까지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별반의 활동 범위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러시아, 중국 등에 민간 위장업체를 만들어 극비활동을 벌이는데,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못할 경우 현지 협력자를 매수해 군사, 정치 관련 정보를 모으기도 한다. 이시이는 “미군 정보부대나 CIA와도 빈번하게 정보교환을 하는 등 일본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다”며 취재 결과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별반처럼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조직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시이는 “가령 미국의 국방정보국(DIA)이나 러시아의 정찰총국(GRU) 같은 군사조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별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위대의 최고 지휘관인 총리와 방위상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즉, “문민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부대의 독주는 국가의 외교나 안전보장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과거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관동군처럼 말이다. 이 사건은 결국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이어졌다.
덧붙여 그는 “아베 정권이 마련한 ‘특정비밀보호법안’이 시행될 경우 자위대가 보유한 광범위한 정보가 비밀로 지정되므로 국회와 국민의 감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정비밀보호법안은 방위·외교·스파이 행위와 테러활동 방지에 관한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하고 누설한 공무원은 최고 징역 10년, 누설 교사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을 구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아직 실현되진 않았지만 자위대 안에서는 별반과 특수부대를 일체화해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별반과 특수부대가 실제로 통합될 경우 해외 인질 구출, 적지 잠입과 공격목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같은 구상은 일본 헌법해석상 금지돼 있는 ‘해외에서의 무력행사’에 발을 내딛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시이는 “아베 총리가 일본을 전쟁 가능한 나라로 변모시키기 위한 ‘헌법 9조’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지금, 자위대를 돌아봐야 할 때”라면서 “그 시작으로 자위대가 감추려는 별반의 존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별반으로 뽑히는 엘리트 자위관들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입학 명령…동기 중 수석만 배치 그렇다면 어떤 자위관이 ‘별반’으로 뽑히는 걸까. 전직 별반 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날 갑자기 고다이라학교 심리방호과정에 가라는 명령이 내려와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수십여 명의 동기들 가운데 수석을 차지한 사람만이 윗사람에게 불려가 별반에 배치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심리방호과정에서는 약 4개월 동안 정보에 관한 군사학, 추적, 미행 등의 기초훈련을 받는다. 타깃이 된 상대방에게서 100% 이야기를 끌어내는 훈련도 받는다. 예를 들어 지방도시 대형음식체인 사장과 접촉하라는 과제가 주어지는 식이다. 주로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남을 속이는 기술을 익힌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교육의 대부분이 과거 제국주의 일본 육군의 스파이 양성기관인 ‘나카노학교’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