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냉동보다 급속해동이 어려워…해동 때 세포 손상 막는 게 미래기술의 핵심 과제
과연 먼 미래에는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꿈만 같은 일이 정말 가능해질까. 노화가 질병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삶, 즉 영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과거에는 불치병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질병들이 오늘날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들은 영생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죽지 않고 기다리면 누구나 늙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때까지 살지 못하고 죽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바로 냉동인간이 되는 것이다. 시신을 급속 냉동시켜 세포 조직의 부패를 막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보관했다가 부활이 가능해질 때 즈음해서 해동시키는 것이다. 실제 냉동인간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시신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에 걸쳐 600여 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러시아의 냉동인간 기업인 ‘크리오러스(KrioRus)’를 찾아가 냉동인간 프로젝트의 현주소에 대해 보도했다. 과연 불로장생은 더 이상 헛된 꿈이 아닌 걸까.
‘크리오러스’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다닐라 메드베데프가 냉동보존 탱크 앞에 서있다. 현재 보존탱크 안에는 65명의 사람과 15마리의 동물이 보관돼 있다. 사진 출처=stern
현재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냉동인간 기업은 미국에 세 곳, 러시아에 한 곳 등 모두 네 곳이다.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은 디트로이트에 있는 냉동보존연구소(CI)다. 세계 최초로 ‘냉동보존술(Cryocics)’을 시도한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에틴거가 1976년 설립한 회사다. 이밖에 애리조나주에 있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과 오레곤주에 있는 ‘오레곤 크라이오닉스’가 있다. 미국을 제외한 곳에 있는 유일한 회사는 러시아에 있는 ‘크리오러스’다. 현재 ‘크리오러스’에는 65구의 시신이 냉동보관돼 있다.
냉동인간을 만드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람이 죽으면 즉시 시신을 얼음통에 넣어 차갑게 유지한다. 이는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산소 부족으로 뇌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심폐소생 장치를 이용해 호흡 및 혈액 순환 기능을 복구시킨다. 그런 다음 체내의 혈액을 뽑아낸 후 정맥 주사를 이용해 특수 부동액을 주입한다.
방부 처리가 완료된 후에는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가 담긴 냉각 탱크 안에 시신을 거꾸로 매달아 급속 냉각시킨다. 시신을 거꾸로 매달아 놓는 이유는 뚜껑을 열었을 때 가능한 뇌가 차가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내에서 혈액 및 체액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냉동되는 과정에서 세포 안의 수분이 얼게 될 경우, 부피가 팽창해 세포막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얼음 결정이 되고, 이 결정체가 혈관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뇌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100억 개가 넘는 뇌세포 가운데 하나라도 손상될 경우에는 상당히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속 냉동보다 더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는 사실 급속 해동이다. 해동되는 과정에서 세포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기술 발달의 핵심적인 과제는 해동 과정에서 가능한 세포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손상된 세포를 어떻게 복구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여성 갈리나 랴비니나의 시신. 65세인 그는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딸인 타티야나는 어머니가 먼 미래에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곳에 시신을 맡겼다. 사진 출처=stern
미국 외에 유일하게 러시아에서 냉동인간 기업이 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슈테른’은 러시아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특수한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불멸에 대한 환상과 이를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믿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이런 믿음은 이미 19세기부터 시작됐다. 가령 러시아의 철학자인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신은 언젠가 인간들이 스스로 부활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근래 들어 러시아인 사이에서 영생과 부활에 대한 요구가 더욱 빗발치기 시작한 이유는 구소련의 붕괴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초강대국이었던 나라가 스스로 분열되자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삶 역시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옳았던 것이 갑자기 틀린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러시아인들은 페레스트로이카(소련의 사회주의 개혁) 이후 어떤 형태의 극단적인 변화도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크리오러스’를 설립한 발레리야 우달로바(58)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우달로바는 기술의 발달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는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화성 탐사를 연구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를 통해 ‘트랜스휴머니즘’을 알게 됐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운동으로, 이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불가능한 꿈이란 없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죽음을 극복하고 노화를 질병처럼 치료할 수 있다고도 믿는다.
에틴거 박사의 저서 ‘냉동인간’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다닐라 메드베데프(38)를 알게 된 우달로바는 2005년 메드베데프와 함께 ‘크리오러스’를 설립했다. 모스크바 중심부의 오래된 건물에 위치한 ‘크리오러스’의 사무실 입구에는 간판이 없다. 행여 사람들이 호기심에 무작위로 방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크리오러스’의 직원인 아나 쿠카리나가 시체보존실에서 모형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흰 증기는 시체를 냉동할 때 사용하는 액체질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진 출처=stern
하지만 첫 번째 고객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를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고객이 연락을 해왔다. 할머니의 뇌를 6개월 동안 침실 안에 있는 아이스박스에 넣어 냉동보관하고 있던 그는 멀리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에도 냉동인간 회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그는 “복잡한 운송 과정과 시간 다툼을 하지 않아도 됐다”라며 기꺼이 회사를 찾아왔다.
우달로바는 시신을 냉동보관하기에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 이를테면 심장마비, 뇌졸중, 교통사고, 살인 등은 나쁜 죽음이다. 죽음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는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리 최고의 기술이라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사망 후에는 시신이 부패되지 않도록 모든 작업이 신속히 처리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리 냉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옆에 있는 가족들의 응급 조치가 중요하다. 한번은 사망한 고객의 가족들이 급한 대로 슈퍼마켓에서 냉동 채소를 구입해서 시신을 차갑게 보존해 놓았다가 운반해 오기도 했었다.
반면 냉동보존하기에 좋은 경우는 질병이나 노환으로 서서히 사망하는 경우다. 가령 암환자들이 그렇다. 이에 우달로바는 언젠가 안락사와 ‘크리오러스’의 서비스를 결합하길 꿈꾸고 있으며, 냉동보관실이 딸린 노인 요양원을 건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사람에 비해 동물을 냉동보존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현재 ‘크리오러스’에는 2008년 암으로 죽은 우달로바의 애완견을 포함해 총 열다섯 마리의 동물들이 냉동 상태로 보관돼 있다. 대부분은 개, 고양이, 새 등이며, 가장 최근에는 햄스터를 냉동보관시켜 놓기도 했다.
신경생물학자이자 트랜스휴머니스트인 올가 레비츠카야는 때때로 자신이 개발한 사이버 수트를 입고 생활한다. 이 수트를 입고 있으면 자신의 몸을 외부에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사진 출처=stern
그렇다면 비용은 어떨까. ‘크리오러스’의 냉동보존 비용은 미국 회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머리만 보관할 경우에는 1만 3000유로(약 1600만 원), 시신 전체를 냉동시킬 경우에는 3만 유로(약 3800만 원)가 든다. 우달로바는 “기본적으로 몸 전체를 보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뇌만 보관할 경우, 훗날 몸통을 비롯해 팔과 다리를 새로 만들어 붙이면 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부활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해 있을 때면 아마도 몸을 접합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재 ‘크리오러스’에 등록되어 있는 예비 고객 명단은 5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실제 고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해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가령 한 미망인은 남편이 사망하자 계약금 전액을 반환해줄 것을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멀리 시베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크리오러스’를 찾아온 남성의 경우가 그랬다. 이 남성은 얼마 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90세 할머니의 전신을 냉동보존하길 희망했지만,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하는 수 없이 머리만 보존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마저도 비밀로 하기 위해 그는 할머니의 머리를 따로 보관한 후 장례 절차를 생략하고 서둘러 시신을 화장시켰다.
이처럼 간절한 희망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혹은 자기 자신을 냉동보존하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다시 말해 기적을 믿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날아온 타티야나 역시 기적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부활이 가능할지 그건 나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작별이 쉬워지긴 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200년 후엔 부활기술 나올 것” 냉동보존술 아버지 로버트 에틴거의 믿음 로버트 에틴거 냉동보존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에틴거는 생전에 “노화란 질병이다. 따라서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한 시점에는 질병은 물론, 회춘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후다. 1961년 냉동보존기법에 대해 정리한 ‘냉동인간’을 출간했던 그는 이 책에서 냉동과 해동 과정에서 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시체를 냉동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이때 시신은 섭씨 영하 196도에서 몇백 년간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당시 다리를 절단할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 이식술을 통해 다리를 보존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미래에는 다리뿐만이 아니라 생명 자체를 영구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6년 디트로이트에 냉동보존연구소를 설립했고, 이곳에 자신의 어머니의 시신을 처음 냉동 보관했다. 그리고 1987년과 2000년 각각 사망한 첫 번째 아내와 두 번째 아내의 시신 역시 모두 냉동 보관시켰다. 그리고 그 역시 부활의 꿈을 품고 2011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냉동보관 됐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