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첫 날부터 담당 기자는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확인해서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연루자와 그 주변 인물, 사망한 피해자와 그를 기억하는 이들, 그리고 학교와 경찰, 관련 단체들까지 폭넓게 취재를 진행했으며 기존 보도 내용을 훨씬 뛰어 넘는 얘기들이 파악됐습니다. 거듭된 고민은 과연 이 가운데 어느 수위까지 보도하느냐 였습니다. 이런 기사는 수위 조절이 중요합니다. 망자나 유가족을 욕되게 하거나 힘들게 만들면 안 되고 가해자들을 미화하거나 동정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취재 과정을 통해 확보되는 팩트의 조각들이 늘 기사화하기 적합한 방향으로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가해자들은 CCTV가 없는 능허대공원으로 피해자를 끌고 와 1차 폭행을 가했다. 고성준 기자
어느 순간 가장 중요한 취재원으로 인식된 이는 추락사 하루 전 이른바 공원 폭행 당시 함께 있었건 여학생 둘 가운데 한 명 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옥상에 있지는 않아 구속되진 않았고 현재 불구속으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입니다. 불구속 상태라 기자의 접근이 가능해 ‘일요신문’ 외에도 수많은 매체가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여학생에게 주목한 까닭은 그가 사망한 학생의 모친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보낸 이 여학생은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진심일까, 어렵게 전화 통화가 이뤄졌지만 그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감 날인 11월 23일 오전 갑자기 담당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금 바로 인천에서 만날 수 있냐는 얘기를 듣고 다시 취재 기자가 인천으로 출발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담당 기자에게 인터뷰가 잘 이뤄졌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인천으로 와 달라고 말했지만 한 동안 그 여학생은 기자와의 만남을 주저했고 기자는 ‘기다림’이라는 막강한 무기로 결국 인터뷰 성사시켰습니다. 6명의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여학생과의 만남을 통해 왜 폭행 사건이 벌어졌는지, 그 전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피해 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충격적인 현장에는 없었던 터라 그날의 정황까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왜 그들 무리가 피해 학생을 폭행했으며 평소에는 어떤 관계였는지 등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피의자 단독 인터뷰] ‘인천 중학생 추락사’ 직전 폭행의 전말 “사망 학생은 그들의 물주였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패딩에 대해서도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이를 인용 보도한 한 매체에선 ‘반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인천 중학생 추락사] 서열 ‘1위’가 뺏은 패딩 ‘4위’가 입고 나타났다 라는 기사로 보도됐습니다.
피해학생의 패딩점퍼를 입고 남동경찰서를 나서는 가해학생. 연합뉴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취재는 인턴 기간을 잘 끝내고 막 수습기자로 발탁된 사회부 막내 기자가 담당했습니다. 나름 혹독한 신고식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는데 수습 첫 주에 특종이라고 해도 무방할 좋은 기사를 쓴 만큼 ‘화려한 신고식’이 됐습니다. 최희주 기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넵니다. 물론 그 뒤에는 학원폭력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그래서 ‘일요신문’ 홈페이지 탐사보도 섹션의 ‘학원폭력’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최훈민 기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피의자 여학생 인터뷰는 최희주 기자가 스스로 해낸 터라 온전한 박수를 보냅니다. 일주일 동안 밤 10시에 귀가한 것이 가장 일찍 들어간 날이고 나머지는 자정 무렵에야 귀가를 했다고 하니 ‘혹독한’ 신고식이기도 했을 겁니다.
지난 주 이 코너를 통해 ‘인천 중학생 추락사’를 소개하며 던진 화두는 동종 전과 없는 그들이 과연 반성하고 있는지 였습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취재기자가 보고해온 내용을 취합한 결과 오히려 이미 동종 전과가 있지만 전혀 반성하지 않는 한국 사회, 아니 우리 모두도 공범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학교폭력, 학교를 떠난 장기 결석 학생, 가출 청소년, 다문화가정 차별 등 오랜 기간 한국 사회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문제점들이 바로 이번 사건을 통해 한꺼번에 드러났고 이로 인해 한 중학생이 사망에 이르게 됐습니다. 가해자들, 구속된 당시 옥상에 있던 네 명과 하루 전 공원 폭행 사건 당시에 함께 있던 불구속 입건된 두 명 등 여섯 명 가운데에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이도 있지만 안타깝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구속된 네 명 가운데 누군가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최희주 기자가 인천으로 향합니다. 불구속 입건된 피의자 단독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 최 기자가 이번엔 사건 안에 감춰진 한국 사회의 속살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합니다. ‘인천 중학생 추락사’ 관련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일요신문’ 사회부로 직접 전화 주셔도 되고 ‘일요신문’ 홈페이지 기사제보 코너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일요신문 사회부 데스크였습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