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우승에 눈물…강인한 멘탈 갖춰 더 좋은 성적낼 것”
프로골퍼 박채윤. 최준필 기자
지난 26일 경기도 화성시 한 골프장에서 만난 박채윤은 첫 우승을 경험한 시즌의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을 먼저 이야기 했다. 그는 “우승 말고도 다른 내세울만한 성적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전반기엔 나쁘지 않은 듯 했지만 우승 이후 좀 급격히 나빠진 감이 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승에 앞서 “골프를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는 고민도 털어놨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고민은 올해 초 더욱 강하게 머릿속을 지배했다.
“작년부터 성적이 좋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올해 초에는 골프가 너무 안돼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우울했다. 골프 선수를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냥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고민이 이어지던 시기 우승이 반전으로 다가왔다. 박채윤은 “우승 이후 마음을 좀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지쳐있는 상황에서 우승 트로피가 스스로에게 응원이 된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우승이 확정 됐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전까지는 ‘설마 우승을 한다고 해도 눈물이 나겠어?’라고 생각했다”며 “아무래도 이전까지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나서 그러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날 밤에도 실감이 안 났다. 우승하는 순간의 동영상을 몇번이나 돌려봐도 그랬다. 잠도 오지 않았다. 사실 그 전까지 평생 우승하지 못할거란 생각도 했었다”라며 웃었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맥콜·용평리조트 오픈. 사진=KLPGA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더블보기가 나왔을 때 ‘역시 난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며 포기했다(웃음). 16번 홀에서도 찬스가 났는데 공이 홀컵에 맞고 나오며 버디에 실패했다. 그런데 마지막 홀에서 리더보드를 보니 1위를 달리던 선수가 보기를 하더라. 그 때 가능성이 보였다”면서 “세번째 샷이 조금 길었는데 이상하게 퍼팅 라인이 잘 보였다. 연장전에서도 같은 홀이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시즌 우승 트로피 외에도 ‘세이프티 퀸’에 등극하기도 했다. KLPGA는 매 대회 가장 난이도가 높은 홀을 선정해 그 홀에서 선수들의 연간 스코어를 집계, 최고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세이프티 퀸을 선정해 수상한다. 박채윤은 지난 2016년에 이어 올해까지 2회 우승자가 됐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세이프티챌린지에서 2회 우승은 박채윤이 처음이다.
그는 “꼭 내가 두 번 수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웃음), 우승보다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홀에서 잘 쳤다는 의미니까 나름 자부심도 있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상 비결로 “비거리가 긴 편이라 그런지 어려운 홀에 남들보다 강한 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면서 “그런 홀에서 파 세이브율이나 버디율이 높다고 생각은 했는데 수상은 예상을 못했다”며 웃었다.
스스로도 이야기했듯 박채윤은 남다른 장타 강점이다. 올시즌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50야드를 넘기며 투어 내 10위를 차지했다. 그는 자신의 장타에 대해 “나보다 더 멀리 치는 선수들도 많다”면서 “그냥 작은 키에 비해 멀리 치는 편”이라고 평했다. 비결로는 “몸이 커서 그런 게 아닐까(웃음)”라면서도 “드라이버를 칠 땐 아이언보다 스탠스를 더 넓게 선다. 다운스윙 때는 힙턴을 더 빠르게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아서 그 부분을 많이 신경 썼고 무거운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빈스윙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장타에는 자신감이 있지만 그가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일까. 박채윤은 “아무래도 쇼트게임이 가장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커버리, 세이브가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면도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을지라도 속에서는 겁이 많고 걱정도 많다. 강인한 멘탈을 갖춘다면 더 좋은 성적이 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프로골퍼 박채윤. 최준필 기자
그가 105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느리지만 결국 결승점에 도달한다’며 거북이라는 별명이 다시 한 번 회자되기도 했다. 이에 박채윤은 “큰 의미가 없는 별명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토끼는 빨리 가다 포기하는 반면 거북이가 느린 걸음으로 이긴다. 원래도 싫진 않았지만 더 마음에 드는 별명이 됐다”고 말했다.
느린 걸음이지만 생애 첫 우승에 다다른 거북이 박채윤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다음 시즌에는 꾸준히 탑10 안에 들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기복 없는 꾸준함을 보일 수 있도록 다듬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무대 진출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채윤은 “기복이 없는 성적을 낼 수 있게 된다면 나중에 일본 무대에서 활약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빠르면 2년 뒤 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닌 일본 무대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오가기도 가깝고 문화적으로 적응하기도 편하다. 미국처럼 먼 곳에서 오랫동안 지낼 엄두가 잘 안난다”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