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박원순에 대해 우호적 기류…유시민 김부겸도 거론
이해찬 대표가 11월 22일 오후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모습. 고성준 기자
최근 여권에선 친문도 비문도 아닌 새로운 계파가 주목을 받는다. 이해찬계다. 이해찬 대표를 따르는 전·현직 의원들이 중심이다. 아직 계파라고 부를 단계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긴 하다. 하지만 친문이 분화하고, 친노계와 비문 진영이 기지개를 펴면서 소위 ‘이해찬 사단’도 급부상 중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청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 대표가 친위대를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홍영표 원내대표, 김태년 정책위의장, 윤호중 사무총장은 모두 이 대표 최측근으로 꼽힌다. 당 주요 보직에 이해찬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셈이다. 한 친문 의원은 “이 대표가 단행한 인사를 보고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전당대회 때 생긴 친문과 이 대표 측 간 감정 골이 더 깊어졌다”면서 “이 대표 역할에 무게감이 쏠리자 비문은 물론, 중도성향 의원들까지 이해찬계에 가세했다. 이젠 여권 신주류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소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정치권 시선은 이들이 과연 차기에서 어떤 후보를 지원사격할 것이냐에 쏠린다.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완결판이다. 그리고 총선 공천은 그 전초전이다. 총선에서 충분한 세를 모아야 대선 경선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가 주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천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에 측근을 발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 측과 가까운 한 의원의 설명이다.
“지금 거론되는 (친문) 후보로는 이 대표가 내세운 장기집권론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물색하고 밀어주는 역할을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기존의 후보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이 있지 않느냐. 이재명 박원순도 그렇고, 지금 입각해 있는 분이나 원외 정치인들에게도 다 열려 있다. 곧 문재인 정부 3년차다.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친문과 불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이 더욱 중요하다. 여기에 계파가 있을 수 없다. 이 대표, 그리고 우리들이 중심에 설 것이다.”
현재 친문 진영에서 오르내리는 차기 후보들은 이낙연 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정도다. 이 중 이낙연 총리는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반면, 그동안 비문계로 꼽혔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박 시장과 이 지사는 최근 들어 친문과의 대립각을 분명히 세우는 모습이다. 차라리 비문계의 지원을 받아 차기를 노려보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 대표 측에서도 앞서 언급한 친문 후보들보단 박 시장과 이 지사를 향한 우호적 분위기가 역력하다. 또 다른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낙연 임종석 김경수 모두 경선에선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본선에선 힘들다. 차라리 큰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박원순이나 이재명이 낫다”고 했다. 이어 그는 “친문 쪽에서 박원순 이재명을 모두 쳐내려 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어찌됐건 경선에서 공정하게 겨뤄는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러다 정권 내준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해찬계로 불리는 일부 의원들은 얼마 전 만나 이런 내용에 대해 의견들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차기 대선과 관련된 모임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 모임에 직접 참여했던 한 의원은 “이재명 지사 거취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박 시장 얘기도 나왔다.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앞으로 자주 만나 총선과 대선에 대해 우리 쪽 입장 등을 정리하기로 했다. 친문에서도 이런 모임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이는 향후 여권에서 차기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대권을 노리고 있긴 하지만 여권 최대 계파인 친문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박 시장과 이 지사로선 이해찬계의 이러한 스탠스가 반갑기만 하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도 “이 대표 쪽에서 밀어만 준다면 경선에서 한 번 붙어볼 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권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이해찬계와 당내 기반이 부족한 박원순·이재명 측 간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 측이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박 시장과 이 지사 외에 새로운 차기 후보군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 측에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 이사장이 친노 ‘적통’일 뿐 아니라 방송 활동 등을 통해 대중성까지 겸비했다는 판단에서다. 친문과 관계가 원활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유 이사장 본인은 정작 정계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앞서의 이 대표 측 의원은 “문 대통령도 처음엔 절대 정치를 안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유 이사장을 원하는 국민이 많을 경우 결국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유 이사장만 나와 준다면 (차기 후보를 두고) 우리가 더 이상 걱정할 이유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 대표와 손을 잡을 차기 후보 중 하나로 물망에 오른다. 한때 친문 진영에서도 그를 차기 후보감으로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지지만 지금은 이낙연 임종석 김경수 등에 비해 다소 밀려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한 친문 인사는 “엄밀히 말하면 김 장관은 원래부터 비문 아니냐. 그가 장관에 발탁됐을 때 친문에서 불만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친문에서 그를 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장관과 이 대표 관계가 회자됐던 것은 지난 8월 전당대회 때다. 전당대회 출마 카드를 만지고 있던 김 장관이 뜻을 접고, 이 대표를 지원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이른바 ‘이해찬-김부겸 밀약설’이다. 이해찬이 당 대표를, 김 장관이 대선 후보를 각각 맡는다는 게 골자다. 김 장관과 가깝게 지내는 한 의원은 “현 시점에서 (이 대표 측의 지원은) 김 장관으로선 최선의 시나리오 아니겠느냐. 이 대표 측과 긴밀한 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