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분할·합병 부침, 유망 사업 SK텔레콤이 가져가…신사업 첨병이라면서 팔다리 모두 잘랐다
SK플래닛은 지난 7년여간 총 11차례의 걸친 사업부 분할과 합병을 거치면서 몸집이 쪼그라들었다. SK플래닛이 2011년 출범 당시 챙겨 나온 사업부문들, 즉 티스토어와 티맵, 11번가, 호핀, 스마트월렛(시럽) 등에서 현재 남은 것은 시럽뿐이다. 한때 SK마케팅앤컴퍼니와 통합법인을 만들며 자산규모 2조 4000억 원, 연 매출 1조 7000억 원 규모 조직으로 커지기도 했으나 현재 매출액은 1조 원 이하로 떨어졌다. SK플래닛이 2016년과 2017년 연간 3000억 원 규모의 영업적자에 허덕이자 모회사 SK텔레콤은 주요 플랫폼을 되가져 간 후 광고사업까지 매각했다.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있는 SK플레닛 건물. 박정훈 기자
SK플래닛의 미래가 더 암울한 까닭은 독자생존을 이끌 사업부문이 모두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음원 서비스 멜론의 운영사와 광고사업부 매각이 대표적이다. 특히 SK마케팅앤컴퍼니 광고사업부는 SK플래닛이 유일하게 계속 보유 중인 스마트월렛 ‘시럽’의 커머스와 연계돼 모바일과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 전문 기업의 핵심 축이었다. SK플래닛이 2012년 계열사 멤버십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만든 ‘원 아이디(One ID)’ 서비스도 멜론 매각 등으로 시행 4년도 되지 않아 종료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럽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시럽의 사업 핵심이 다른 사업부문과 연동인 탓이다. 시럽의 어려움은 곧장 SK플래닛의 적자 확대를 야기했다.
SK플래닛 지분 100%를 보유한 SK텔레콤은 사업부를 쪼개고 붙이는 과정에서 주요 플랫폼 사업을 흡수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그룹 차원에서 모빌리티 사업 부문을 강화하는 시기에 SK플래닛에서 티맵을 이전해 왔다. SK텔레콤은 모빌리티 사업단을 만들고 T맵을 중심으로 T맵 택시,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영역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K텔레콤 한 관계자는 “자회사 사업 중 성장성이 있는 사업은 내부로 가져오는 일이 잦다”면서 “반대로 SK텔레콤이 직접 기획해 추진하다 잘 안 된 사업을 SK플래닛으로 넘기는 일도 많다”고 했다.
일각에선 SK텔레콤이 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운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플랫폼 사업을 강화하면서 SK플래닛의 사업 축소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직접 나서 5G망에 기반을 둔 AI 및 IoT 사업 플랫폼 구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통신사업은 사실 망 관리가 핵심으로 성장 한계가 뚜렷한 사업”이라며 “SK텔레콤은 무선사업 매출이 줄고 있는 데 따라 홈 IoT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하는 등 플랫폼 사업 부문 확장에 나선 상태”고 말했다.
SK플래닛 사업 조정은 박정호 사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 SK텔레콤 내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PM)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M실은 지난 9월 SK플래닛 커머스사업부인 11번가를 분사해 독립법인으로 출범시키면서 SK플래닛에는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을 하는 SK앰엔서비스만 남겼다. 또 AI 플랫폼 ‘누구’ 등 소프트웨어(SW) 개발을 전담했던 SK테크엑스를 SK플래닛에 붙이면서 ‘누구’는 SK텔레콤으로 가져갔다. 현금이 도는 B2C 사업을 직접 챙겨 무선사업 정체를 플랫폼 사업으로 뚫어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SK플래닛이 홈페이지에 사업 전환을 밝혔다. SK플래닛 홈페이지
이에 따라 SK텔레콤의 정보기술(IT)·전자상거래전문 자회사로 출발한 SK플래닛은 사업 시작 7년 만에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 SK플래닛은 홈페이지에 ‘SK플래닛이 데이터(DATA) & 테크(TECH) 전문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합니다’라는 설명만 게시해 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SK플래닛 한 관계자는 “사업 전환이 SK텔레콤 위주로 이뤄지면서 SK플래닛은 사실상 사업 방향을 잃었다. 사업 방향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태”라며 “SK테크엑스 합병을 제외하면 SK플래닛에는 마케팅사업부 내 OK캐시백과 시럽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SK플래닛은 SK테크엑스의 기술을 살려 ‘데이터 기술회사’로 자리매김할 계획을 밝히고 B2B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분할됐던 SK테크엑스가 그나마 지난해 순이익 268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SK플래닛은 새 대표이사로 이한상 전 SK테크엑스 대표를 선임, 지난 11월에는 IoT 기반의 센서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내놓기도 했다. SK플래닛은 OK캐쉬백과 시럽에 쌓인 소비자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기술 기반 서비스를 구축하겠다는 전략 및 블록체인 기술 개발 계획도 내놓은 상태다.
SK플래닛 관계자는 “OK캐쉬백을 19년, 시럽을 8년 동안 각각 운영하면서 쌓은 데이터를 고려할 때 SK플래닛에는 여전히 B2C 사업 역량이 있다”면서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 제휴와 함께 SK테크엑스의 자체 개발 센서 관리 및 모니터링 노하우, 데이터 분석기술, 이상감지 시스템 기술을 활용한 B2C 사업 강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데이터 기술회사로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내년 초가 지나봐야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 속도 내나 이동통신 사업이 신통치 않은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 전환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이동통신 사업 옆으로 미디어, 커머스, 보안 등 사업을 다각화해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SK텔레콤 아래로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에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직접 나서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10월 SK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 참석해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분율을 상향, 뉴ICT 사업을 이동통신 사업과 대등하게 배치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 SK텔레콤이 사업부 조직을 ▲무선통신(MNO) ▲미디어 ▲보안 ▲커머스로 재편하면서 중간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들 사업부 대표에 대부분 박 사장 측근이 내정돼 중간지주사에 ‘밑그림’을 그렸다는 해석이 일고 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