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한통 없이 관계 정리…상처됩디다”
2017 시즌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여러 가지 이유 중 당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로저 버나디나를 빼놓을 수가 없다. 버나디나는 그해 타율 0.320 27홈런 111타점 118득점 32도루를 기록하며 타이거즈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휩쓸었다. 2018 시즌에도 버나디나는 타율 0.310 20홈런 70타점 106득점 32도루를 올렸지만 KIA에서는 내년 만 35세가 되는 버나디나의 나이를 들어 재계약을 포기하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 제레미 헤즐베이커를 영입했다.
로저 버나디나.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네덜란드가 고향인 버나디나는 시즌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향했다. 재계약 여부는 에이전트한테 일임했지만 그는 내심 KIA와 재계약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KIA는 버나디나를 포기하고 새로운 외국인 외야수를 불러들였다. 버나디나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재계약이 어렵다는 내용을 KIA로부터 직접 연락받은 적이 없었다. 에이전트도 연락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새로운 선수와 계약이 된 걸 한국의 지인들과 뉴스를 통해 알았다.”
보통 구단이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하지 않을 때는 미리 통보해준다. 물론 사전에 알려주지 않는 구단도 있다. 즉 KIA가 버나디나한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럼에도 버나디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잠시 있다 온 팀도 아니고 2년을 동고동락한 데다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함께했던 팀에서 문자 한 통 없이 관계를 정리해버리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이러한 내용이 알려진 후 구단 관계자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의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NC 다이노스는 대만에서 온 투수 왕웨이중과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다음 언론에 알리기 전 그 내용을 미리 에이전트에게 이메일을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 기자가 입수한 이메일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이 대단히 정중하고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한 시즌 동안 NC를 위해 뛰어준 왕웨이중의 노력과 열정에 고마움을 전하며 구단도 왕웨이중과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소식을 알리게 됐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왕웨이중이 앞으로 어디에서 활약하든 왕웨이중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는 말로 그 이메일은 마무리된다. NC의 아주 작은 노력이 팀을 떠나는 왕웨이중에게 서운함 대신 감동을 자아내게 만든 사례다.
버나디나는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 놓았다. 올 시즌 중견수에서 우익수를 보다 세 차례 정도 1루 수비를 봤는데 팀이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어도 경기 후반부에 교체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기울어진 경기거나 크게 이기고 있을 때 경기 후반부에 교체된다. 그러나 나는 포지션을 바꾸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경기를 뛰어야 했다. 경기에 나서는 게 싫어서가 아니다. 가끔은 내가 외국인 선수라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아닐까 싶었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이상한 형태로 소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더스틴 니퍼트한테도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니퍼트는 자신과는 관계없지만 일부 외국인 선수들이 구단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부 감독들, 일부 코치들은 외국인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는다. 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돈을 주고 소유한 것은 맞지만 외국인 선수들도 한국 선수들처럼 제대로 관리 받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난 운 좋게도 좋은 코치들, 구단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A 구단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외국인 선수에 대해 “한국 선수와 항상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대우를 해줬다”고 말한다.
“오히려 국내 선수들의 불만이 높을 정도였다. 외국인 선수한테는 많은 지원을 하면서 국내 선수들한테는 그보다 못한 지원을 해준다는 부분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 영입한 선수를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에릭 해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NC다이노스에서 활약하며 56승 34패 평균자책점 3.52의 성적을 올린 에릭 해커(35). 매 시즌 140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2015년부터 3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다. 2015년에는 19승(5패)을 올려 다승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그는 2018 시즌을 앞두고 NC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구직자 신분이 됐었다. 다행히 히어로즈가 손가락 부상을 당한 에스밀 로저스의 대체 선수로 에릭 해커를 영입하면서 6월, 에릭 해커는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다시 KBO리그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에릭 해커한테는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회한이 있었다. 그가 2017 시즌 종료 후 NC와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그 배경에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김경문 감독과 프런트가 팀보다는 자신의 루틴을 중요시하는 해커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NC 소속으로 뛰던 에릭 해커는 2017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했다가 4차전에도 올라가라는 김경문 전 NC 감독의 요청에 “5차전을 준비했다”며 정중히 고사한 적이 있었다. 이후 NC는 4차전에서 패했고 5차전 선발 등판한 해커의 호투 덕분에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김 전 감독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해커는 NC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해커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내 루틴을 지키는 게 개인주의적이라고 비난 받을 줄 정말 몰랐다. 한국에 오면서 내 자신과 약속한 게 있다. 항상 좋은 팀원이 되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좋은 커리어를 만드는 것이다. 난 루틴을 지키려 했을 뿐이지 등판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팀이 필요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갔을 것이다. 문제는 이후다. 김경문 감독이 내게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만 재취업하기를 희망하는 나를 향해 구속이 떨어졌다, 컨트롤이 안 된다는 등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실제로 김 전 감독은 에릭 해커가 KBO리그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었다. ‘구단들은 더 강한 투수를 원할 것이고 해커는 스피드가 떨어졌고 컨트롤도 완벽한 선수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에릭 해커는 히어로즈와 계약 후 초반에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적응을 마치면서 자신의 구위나 제구에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직접 실력으로 확인시켜 줬다.
최장수 외국인 선수인 더스틴 니퍼트(37)는 8시즌 동안 214경기에 등판, 1291.1이닝을 소화해선 102승 51패 1세이브 탈삼진 1082개 557실점(자책점 515점) 평균자책점 3.59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수 최초로 100승을 이뤘고, 2016년 22승을 거두며 외국인 투수 최다승 타이기록을 남기면서 정규시즌 MVP도 수상했다. 그러나 30대 후반의 나이는 니퍼트를 실직자로 만들었다. 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KBO리그에서 다시 뛰고 싶다고 말한다.
더스틴 니퍼트
“분명 내가 나이를 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나는 매년 경쟁하면서 성장했고 좋은 성적을 낸 덕분에 8년간 한국에서 뛸 수 있었다. 만약 내년 시즌 내가 뛸 수 있는 팀을 구하지 못한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은퇴다. 그러나 아직은 1년 정도 더 뛰고 싶다.”
니퍼트는 7년을 몸담았던 두산이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올 시즌 KT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그는 돈보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KT의 제안을 고마운 마음에 수락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1년 만에 또 다시 비슷한 처지가 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이 떠오른다. 팀 소식이 없어 진짜 은퇴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고 있을 때 KT가 기적처럼 내 에이전트에게 계약 의사를 타진해온 것이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중이다.”
1998년부터 적용된 외국인 선수 제도는 처음에 2명 보유, 2명 출전 규정에서 2014시즌에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바뀌었다. 대부분 투수 2명, 타자 1명이고 3명 모두 투수로만 구성할 수는 없다.
일부 야구인들은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지금의 3명에서 4, 5명으로 늘리고 출전 숫자를 3, 4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 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단 1군 엔트리에는 4명만 등록이 허용된다. 현재 프로야구 10개 팀들 중 외국인 투수 2명을 제외하고 내세울 만한 국내 에이스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5선발 체제를 구축하기 어려운 팀도 있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늘리고 공급의 물꼬를 터주면서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도한다면 KBO리그의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일부 야구인들의 의견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버나디나가 특급호텔 고집한 이유 ‘단체행동보다 몸관리가 중요해!’ KIA에서 뛰었던 로저 버나디나는 서울로 원정 올 때마다 숙소를 따로 사용했다. 선수단이 사용하는 숙소가 아닌 좀 더 고급스러운 특급 호텔을 자비를 들여 이용했다. 이유는 한 가지. 선수단 원정 숙소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몸 관리가 최고의 관심사인 프로야구 선수가 최고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체 생활을 중요시하는 야구 문화에서 버나디나의 행동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 방송 해설위원은 버나디나의 행동이 선수들로부터 위화감을 갖게 했다고 말한다. “물론 선수는 좀 더 좋은 서비스, 질적 수준이 높은 숙소를 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정된 숙소가 아닌 다른 숙소에 머물다 출퇴근하는 건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물론 국내 선수들한테도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일부 선수들 중에서도 버나디나의 그런 행동을 두고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버나디나의 지인 B 씨는 “그만큼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라면서 “아침 조식, 웨이트트레이닝 시설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서울 원정이 있을 때면 특급 호텔을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버나디나의 행동을 프로다운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현재 무적 신분인 버나디나는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