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FA’ 효과 기대 이하…시장 역대급 한파 예고 속 구단마다 기존 선수 잔류 애써
올 시즌 FA 시장은 최정, 이재원의 계약 이전까지만 해도 최대 한파가 몰아치는 듯했다. NC 모창민(3년 최대 20억 원)이 테이프를 끊은 이후 더 이상의 FA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정이 100억 원대의 몸값으로 FA 시장을 흔들었다. FA 영입에 공을 들이는 구단들은 최정의 몸값이 FA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다.
모창민, 최정, 이재원의 공통점은 타 구단이 아닌 소속팀과 FA 계약을 맺음으로서 내부 잔류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대부분의 구단들이 외부 FA 영입에 앞장서기보다는 내부 FA 잔류나 육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FA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일부 구단들은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을 정도다.
2018 한국시리즈 당시의 최정. 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프로야구단 단장 A 씨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만약 거액의 몸값이 예상되는 선수가 FA 시장에 나왔다고 하자. 구단 입장에서는 거액을 주고 그 선수를 영입했을 때 팀 성적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지, 구단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선수인지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100억 원 안팎의 돈을 주고 그 선수를 영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판을 바꿀 수 있는 선수가 FA로 시장에 나왔다면 100억, 200억 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도권 팀의 B 단장도 “올해는 외부 영입보다 기존의 선수들을 잔류시키려 하는 게 특징인 것 같다”면서 “대어급이든 준척급이든 외부 FA 선수 영입이 팀 성적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구단들이 외부 FA 영입 후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게 내부 잔류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그는 또한 “외부 FA 영입으로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기보다는 내부 선수 육성을 통해 장기적으로 구단의 미래를 준비하는 게 최근 추세”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장 대표적인 구단이 넥센. 넥센은 올 시즌 대형 FA 영입 없이 유망주들 위주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한편 A 단장은 다른 건 몰라도 FA 선수를 영입할 때는 구단주의 재가가 떨어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SK가 최정, 이재원과의 계약을 비교적 빠른 시기에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한 최창원 구단주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FA 협상은 여유를 갖고 잘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팀 얘기지만 그 점은 부러운 게 사실이다. 구단주가 FA 계약에 힘을 실어준다면 협상 테이블이 훨씬 화기애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야구단 단장들은 최정, 이재원의 FA 계약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앞의 B 단장은 “최정, 이재원이 적당한 금액에 계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각 구단마다 처한 상황과 선수층이 다 다르지 않나. SK 입장에서는 특히 최정을 SK에 영원히 기록될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팀의 레전드로 예우해줬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팀의 C 단장은 최정 정도의 대어급 선수 관련해서 구단과의 상도덕을 얘기했다.
“최정 정도의 선수는 팀의 간판스타다. 선수가 원소속팀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시장으로 나오지 않는 한 아무리 FA 선수라고 해도 다른 팀에서 먼저 최정한테 접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년 전 최형우가 FA 시장에 나왔을 때는 그가 삼성과의 계약 실패를 선언했기 때문에 KIA와의 계약이 가능했다. 롯데 이대호, 한화 김태균, LG 박용택 등은 팀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선수들은 다른 팀에서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C 단장은 하지만 최정이 SK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시장에 나왔다면 거액을 들여서라도 최정과의 계약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을 영입했을 경우 우리 팀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정은 예상대로 SK와 계약했다. 그것도 계약 기간 6년으로 말이다.”
타 구단에 소속됐던 FA 선수와 다음 년도 계약을 체결한 구단은 해당 선수의 전년도 연봉의 200%에 해당하는 금전보상과 구단이 정한 20명의 보호선수 외 선수 1명을 보상해야 한다. 해당 선수의 원 소속 구단이 선수 보상을 원하지 않을 경우 전년도 연봉의 300%로 보상을 대신할 수 있다.
2018 한국시리즈 당시의 이재원. 연합뉴스
C 단장은 “양의지, 최정 정도면 몰라도 준척급 정도의 외부 FA 영입을 위해 유망주를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FA 시장이 활발하지 못한 건 FA 보상 제도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올 시즌 FA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는 단연 양의지다. 무성한 소문만 떠돌고 있을 뿐 여전히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양의지의 행보에 따라 향후 FA 시장이 요동칠 거라는 얘기도 있다.
KBO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는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최정상급의 선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 원소속팀인 두산 외에 롯데, NC가 양의지한테 관심을 두고 있는 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산은 양의지를 잡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김현수, 민병헌이 FA로 나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 두산 구단의 한 관계자는 “양의지는 두산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성사시키려 한다”면서 “계속 협상 중인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이견 차가 있어 빠른 시일 내로 결론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은 물론 양의지 에이전트도 각각의 협상 전략을 가다듬고 있어 그 전략을 한데 모으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양의지는 올 시즌 타율 0.358 23홈런, 77타점, 도루저지율 0.378로 압도적이었다. 반면에 이재원은 도루저지율이 올 시즌 0.267 타율 0.329 17홈런 57타점을 기록했다. 4년 69억 원을 받은 이재원에 비해 양의지가 공수 어느 면에서나 앞서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도 국가대표 주전은 양의지였고, 이재원은 백업이었다.
양의지는 이재원의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재원과 양의지가 리코스포츠 에이전시 소속이라는 사실. 즉 리코스포츠의 이예랑 대표가 이재원의 계약에 나선 터라 양의지의 FA 협상에도 이재원 계약을 기준점으로 삼을 거란 예상이 가능하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두산 베어스의 김태룡 단장은 양의지 계약과 관련해서 앞선 구단 관계자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단장은 “우리도 양의지를 잡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해마다 FA 시장이 열리면 구단들은 ‘거품을 빼자’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정작 구단에 필요한 선수라면 거액의 베팅을 서슴지 않는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외부 FA 영입에 발을 빼고 있지만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면 선수의 몸값이 올라가도 영입하려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2018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두산 베어스의 양의지가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한 한 구단 단장은 이런 얘기를 전했다.
“선수의 몸값을 올린 건 선수가 아닌 구단들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서로 더 얹어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선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그래 놓고서 FA 몸값 상한제를 요구하는 웃지 못 할 일을 벌였다. 난 개인적으로 FA 선수들의 몸값을 제한하는 데 반대한다. 필요하면 사가는 것이고, 필요 없으면 포기하는 것 아닌가. 구단이 올려놓은 선수들 몸값은 구단들이 안고 가야 한다. FA 시장은 자유롭게 경쟁하고 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KBO(한국야구위원회)와 10개 구단이 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 제안했던 FA 상한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당시 KBO는 4년간 최대 80억 원과 계약금을 총액 3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FA 상한제를 내놨다. 이를 받아들이면 선수들이 원하는 FA 등급제와 FA 획득연한 축소를 반대급부로 주겠다고 했다. 선수협은 FA 상한제의 폐해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
그 단장은 “FA가 빈익빈 부익부라고 하는데 선수의 실력과 가치에 따라 몸값을 정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FA는 갈수록 대어급보다 준척급 선수들이 좋은 계약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편 프로야구 역대 FA 계약 중 최고의 몸값은 롯데와 150억 원에 계약한 이대호다. LG와 4년에 115억 원에 계약을 맺은 김현수는 2위에 올랐다. 모두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어서와~ 협상은 처음이지? 차명석 LG 단장 “선수와 돈 얘기 난감, 갑 같은 을” “에이전트와 대화하는 게 훨씬 편하다. 선수랑 몸값 관련해서 대화 나누는 게 쉽지 않다.” 올 시즌 LG 트윈스 단장으로 선임된 차명석 단장은 요즘 정신이 없다. 박용택과의 FA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든 걸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택이 수상하는 시상식이 있으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가 꽃다발을 안긴다. 박용택에게 LG 구단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는 박용택은 KBO 리그 역대 최다 안타의 주인공이다. 종전 양준혁의 2318안타를 넘어 2384안타를 기록했다. 최근 7년 연속 150안타 기록도 박용택의 몫이다. 또한 박용택은 KBO 리그 최초로 10년 연속 3할을 쳤다. 최다, 최초 등 다양한 기록들이 줄을 잇고 있어 별명도 ‘기록택’이다. 올해 FA 자격을 다시 획득한 박용택은 차명석 단장과 여러 차례 만남 끝에 계약 기간 2년에는 합의했다. 지금은 금액에 이견이 있어 협상 중인 상태. “박용택이 에이전트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직접 얼굴 보고 계약 얘기를 해야 한다. 한때 코치와 선수였던 관계에서 선수와 단장으로 돈 얘기를 주고받는 게 쉽지 않다. 사람들은 구단이 갑이라고 하는데 경험해보니 겉모습은 갑이지 갑 같은 을이나 마찬가지다.” 차 단장이 박용택과의 계약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LG 구단에서 박용택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39세인 박용택은 올 시즌 FA 시장에 나온 최고령 선수다. 그는 2년 계약 후 은퇴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다. 차 단장도 박용택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갖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조율하겠다고 말한다. 차 단장이 박용택과의 계약에 더 신경 쓰는 배경에는 박용택의 은퇴 후 행보와도 관계가 있다. 박용택이 지도자 과정을 밟는다면 그 길을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박용택과의 FA 계약에 은퇴 후 코치 연수 등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차 단장은 “선수가 요구한다면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몸값을 조율하면서 코치 연수 등을 원한다면 맞춰줄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LG는 박용택을 차기 지도자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박용택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LG와 박용택이 어떤 내용으로 FA 계약을 매듭지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