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업적 쌓기’ 이재명 ‘낮은 포복’ 김부겸 ‘여의도 컴백 작전’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은숙 기자
“박원순·이재명·김부겸은 문재인 정부 자산이다. 이 중 누구를 버려야 하나. 다 안고 가야 한다. 원팀의 원심력이 커질수록 당·청도 상처를 입을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여권 분열상에 대해 이같이 잘라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 기대와는 달리, 포스트 3인방 입지는 예전만 못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의뢰로 11월 26∼30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월 4일 발표한 여야 통합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낙연 국무총리(15.1%)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12.9%)가 1∼2위를 각각 차지했다. 박 시장(8.7%)과 이 지사(7.0%)는 3∼4위에 그쳤다. 김 장관(3.7%)은 공동 3위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7.0%), 김경수 경남도지사·오세훈 전 서울시장·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6.9%),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5.9%)보다 낮은 10위에 머물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다.
여권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포스트 문재인 3인방 행보 키워드는 ▲속도전(박원순) ▲로키(이재명) ▲여의도 귀환(김부겸)으로 요약된다. 우선 박 시장의 최대 과제는 ‘브랜드 만들기’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7년간 ‘박원순 표’ 업적을 만들지 못한 것은 박 시장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3선 도전에 성공한 직후 ‘여의도 통째 개발’ 추진을 공언한 것도 상징적인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비롯됐다. 박 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개발 정책은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여권 내부와 지지층 사이에서도 ‘박원순 비토론’이 들끓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정부 승인 없이 불가능하다”며 제동을 걸었을 정도다.
박 시장은 내년에 개발 이슈 대신 ‘남북평화 지도자’ 이미지 구축에 사활을 걸 방침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과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이 내년으로 줄줄이 연기된 만큼, 어젠다나 시기적으로 효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 문화체육관광부와 북한 체육성이 공동 추진 중인 ‘2032년 하계 남북 올림픽’도 박 시장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 시장은 12월 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8 국제 인권 콘퍼런스’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전쟁 위기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금석을 놓았다면 2032년은 완성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시는 ‘2032년 제35회 하계올림픽대회 서울·평양 공동개최 유치 동의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구체적인 예산액도 포함했다. 서울시는 2032년 7∼8월 중 서울·평양 및 한반도 전역에서 15일간 33종목을 치르기 위해 우리 측이 부담할 소요액은 3조 857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 측근은 “서울시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표 업적 만들기가 장기 과제라면, 단기적으로는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의 산을 넘어야 한다. ‘안·이·박·김 숙청설’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권의 요구를 덥석 받자, 정치권 안팎에선 친문계와 박 시장이 각자도생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번째 국정조사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당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측근들은 “당 지도부가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야권은 즉각 갈라치기에 나섰다.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안희정 날아갔고 이재명 잡고, 이제 박원순이 남아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고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은 “박 시장에게 ‘까불지 말라’는 메시지를 날리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민주당 한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 지사는 기사회생했다. 민주당이 이 지사에 대한 징계 논의를 유보하면서 극적으로 생환했다. 특히 정치권에서 주목한 것은 이 지사의 ‘절묘한 수’였다. 혜경궁 김씨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이 지사는 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의 취업 특혜 의혹의 진상규명이 먼저라고 맞섰다. 혜경궁 김씨로 지목된 이 지사의 아내 김혜경 씨의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를 입증하려면 트윗 내용에 포함된 준용 씨의 취업 특혜 의혹의 진상을 선 규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선 친문계와 이 지사의 ‘완전한 결별’을 예상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지사의 의도가 뭐냐”며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야권에선 “내분으로 무너질 신호”(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반문(반문재인) 야당 선언” 등의 말을 쏟아내면서 여권 균열의 틈새 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 지사의 준용 씨 특혜 채용 의혹을 던진 후 검찰이 ‘혜경궁 김씨·김부선 스캔들·조폭 관련설’ 등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판은 뒤집어졌다.
이 지사는 당의 징계 논의 직전 “당의 단합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전달했다. 당의 출당제명 조치에 맞서 ‘백의종군 승부수’로 차기 대선 교두보 확보에 나선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지사의 뜻을 수용한다”며 판단 유보 결정을 내렸다. 어떤 식으로든 무소속 신분일 경우 검찰 기소 및 차기 대선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지사 측도 “이 지사가 승부사 기질을 제대로 발휘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검찰이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선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만큼,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이재명 리스크’는 언제든지 튀어 오를 수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도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도지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여의도로 복귀할 예정이다. 김 장관의 후임으로는 범 친노(친노무현)계 전·현직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내각 개편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측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불을 켜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일 정도로 김 장관의 여의도 귀환은 당내 권력구도 및 차기 대권의 변수다. 민주당의 8·25 전당대회에서도 ‘김부겸 출마’ 여부는 경선 판세의 분수령으로 꼽혔다.
친노(친노무현)계 한 관계자는 “지지율이 다소 낮은 것만 빼고는 다 장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 장관의 지역은 ‘보수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영남, 특히 대구·경북(TK)이다. 국회의원 시작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시작했지만, 유연한 리더십으로 ‘보수 DNA’ 논란의 불씨를 꺼트렸다. 당내 비노(비노무현)계인 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첫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지명 받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야권도 김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 장관이 12월 14일 울산시청에서 지방분권 특강을 하자, 한국당에선 “대권 놀음”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김 장관과 박 시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대통령병으로 죽어 나가는 것은 민생”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한국당 울산시당은 12월 17일 김 장관을 공무원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을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이에 김 장관 측은 “통상적인 민생행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차기 대권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윤지상 언론인
이재명 사태 여진 때문에…민주당 경기 지역 의원들 흉흉한 민심에 한숨 “민심 이반을 어쩌나….” 더불어민주당 경기 지역 의원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각종 의혹으로 당 내분이 격화되면서 지지층 이탈이 현실화해서다. 일부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당 지도부의 결정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앞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2월 12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지사에 대해 당장 징계하지 않고 판단 유보하기로 했다. 당시 비공개회의에서 민주당 최고위원 8명은 ‘4대 4’로 팽팽히 맞섰다. 원내대표인 홍영표 의원을 비롯해 박광온·박주민·김해영 의원은 징계에 찬성한 반면, 설훈·남인순 의원과 이수진·이형석 최고위원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캐스팅보트(결정권)를 쥔 이 대표가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판단 유보 결정을 내리면서 ‘이재명 징계’ 논의는 애매한 상태로 봉합했다. 재판 결과를 보고 최종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기 지역 일부 의원은 이후 당 지도부 결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신들의 세 규합이 ‘친문(친문재인)계 vs 비문(비문재인)’ 갈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 끝내 기자회견을 접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시 당 지도부의 결정을 비판했던 성명서 내용 수위가 높았던 것으로 안다”며 “당이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했다면, 적잖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 지사에 대한 당 결정을 앞두고 민주당은 두 쪽으로 갈라졌었다. 정국진 전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 후보 등 당원 1172명은 지난 11월 28일 ‘이재명 징계 청원서’를 당에 제출했다. 그러자 경기도 내 기초의원 112명은 12월 6일 “이 지사에 대한 ‘마녀사냥식 탄압’을 중지하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징계에 반대한 기초의원들은 친문계 지지자로부터 문자폭탄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됐다. 이 지사가 백의종군 의사를 밝히면서 파국은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재판 결과는 당 분열의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사태’의 여진이 이어질 경우 경기 지역 의원들의 집단행동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재명 의혹’에 불을 지핀 것도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던 전해철 의원이다. 전 의원은 ‘진문(진짜 친문재인)’계로 꼽힌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