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불씨 품고 있다’ 향후 행보 뜨거운 관심…조국 수석 동반교체엔 회의론도
임종석 비서실장. 박은숙 기자
“아마 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지막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비서실장을 지켜봤다는 한 친문 의원의 말이었다. 이날 임 실장은 전직 특감반원 김태우 씨 폭로 등을 놓고 야당 의원들과 공방을 벌였다. 이 친문 의원은 “임 실장이 청와대를 조만간 떠날 것이란 소식이 파다하던 때였다”면서 “그래서인지 (임 실장도) 예전처럼 치열하게 반박하고 그러진 않는 것 같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고 했다.
그동안 임 실장 거취는 소문만 무성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임 실장이 교체될 것이란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임 실장의 총선 및 대권 출마설도 화제를 모았다. 여권에선 임 실장에 대한 견제론까지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문 대통령 순방 당시 임 실장이 DMZ를 시찰한 것을 두고 자기 정치 논란이 일자 그 비토 여론은 확산됐다. 정권 출범 후 ‘청와대 2인자’로 불리며 여권 내 최고 실세로 급부상했던 임 실장을 두고 벌어진 파워게임이었다.
하지만 임 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 신임은 각별했다. 교체설은 어김없이 ‘루머’로 결론 났다. 이를 두고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문 대통령에게 임종석 대체재는 없다”고 했다. 대선 캠프 때부터 문 대통령을 보좌했던 임 실장은 업무 스타일, 조직 장악력 등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정권 역점 과제인 남북관계에 있어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까닭에 임 실장의 ‘장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런데 돌출 변수가 발생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전직 특감반원 김태우 씨 폭로가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다. 청와대와 6급 검찰 수사관 사이에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고, 이는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그 뒤를 이어 기재부 사무관 출신 신재민 씨가 KT&G 사장 교체 및 적자 국채 발행에 청와대의 부적절한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 또 다시 정국을 뒤흔들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현직 공무원들의 연이은 폭로전으로 여권 분위기는 암울하기만 하다. 둘의 폭로가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추세에 나왔다는 점도 여권으로선 더욱 뼈아팠다.
문 대통령이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게 된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여권 핵심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인사를 통한 국면 전환은 문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은 물론 참모들도 인적 쇄신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은 그만큼 지금의 정국 흐름이 쉽지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반대로 말하면 지금 이 (인적 쇄신) 카드 빼고는 마땅히 내밀 게 없다는 고민도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김정은 답방이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남아 있는 시점에 임 실장을 빼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여권 핵심 인사는 임 실장 사퇴 시기는 늦어도 1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김태우 폭로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 기강에 대한 비판 등을 감안하면 임 실장 수준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게 여권 기류”라면서 “이왕 교체가 정해졌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몇몇 의원들이 ‘곧 편하게 보자’는 식의 말을 임 실장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업무 인수인계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임 실장 후임자 인선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정치권에선 노영민 주중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노 대사가 ‘친문’ 핵심이라는 점이 오히려 변수로 꼽힌다. 여권 내에서조차 노 대사 임명은 득보단 실이 많을 것이란 반응이 주를 이룬다. 조윤제 주미대사,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송영길 민주당 의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등도 오르내리지만 깜짝 인사의 발탁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 ‘멘토’로 알려진 한 교수가 최종 후보군이라는 말이 빠르게 퍼지기도 했다.
정치권의 또 다른 관심은 인사 규모다. 임 실장과 함께 누가 교체되느냐에 따라 이번 인사가 중폭 또는 그 이상이 될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병도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이 임 실장과 운명을 같이 할 전망이다. 최근 청와대는 다음 총선 출마 의향이 있는 참모진들에 대한 실태 파악을 마쳤다고 한다. 이들 역시 청와대를 나올 채비에 한창이다. 청와대 안팎에선 임 실장을 비롯해 대략 10여 명의 참모 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국 민정수석 교체도 여전히 살아있긴 하지만 회의적 여론도 적지 않다. 조 수석은 일찌감치 설 연휴 전 자진사퇴할 뜻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태우 폭로가 터지면서 책임자인 조 수석이 도중에 자리를 떠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가 공감대를 얻었다. 김태우 폭로가 임 실장 임기를 앞당겼다면 오히려 조 수석 사퇴는 늦춘 셈이다. 그러나 여권에선 인적쇄신 카드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임종석-조국’을 같이 교체하는 게 최선이라는 견해들도 많아 문 대통령 고민이 깊어질 듯하다.
임 실장의 향후 행보 역시 정가의 ‘뜨거운 감자’다. 여권 차기 지형과 맞물려 있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임 실장이 당으로 돌아오면,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문심’이나 다름없다. 이는 또 다른 불씨를 내포한다. 친문계 내부, 그리고 친문과 비문 간 갈등의 서막이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거물급’으로 돌아온 임 실장의 총선 공천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해찬 대표와 임 실장 간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 실장이 바로 정치권으로 돌아오진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비서실장에선 물러났지만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김정은 답방 등에 주력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임 실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일단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라 본인은 쉬고 싶어 한다. 바로 여의도로 돌아오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총선 출마 의지가 강한 것은 분명하다. 컴백 시점이나 방법 등은 당과 논의해 결정할 것으로 본다. 이제 대통령 ‘문재인’과 함께 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총선 출마도 그런 측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