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인사들 시세차익·투자사기 등 부적절 처신 소문…수사기관에선 ‘외압설’ 솔솔
명동에 위치한 빗썸 비트코인 거래소.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임준선 기자
김태우 씨는 일부 언론을 통해 2017년 12월 직속상관인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지시로 참여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투자 정보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고건 전 국무총리 아들 고진 씨, 변양균 전 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의 실명까지 거론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공개한 김태우 첩보 목록에도 고진 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민간인인 전직 총리 아들의 투자 정보를 캐고 다닌 것은 명백한 민간인 사찰이라고 공격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감찰 첩보가 아니다. 비트코인 관련 정책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참고자료”라고 해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가상통화 투기가 과열되며 범죄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심지어 참여정부 관련자들이 가상통화에 관여하고 있다는 풍문도 있었다”며 자료 수집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규제하지 않았다면 그 피해는 수백만 명의 학생 주부 회사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을 것”이라고도 했다.
여권 인사들도 당시 반부패비서관실 활동을 사찰로 몰아붙여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친문 의원은 “비트코인 투자가 위험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였고, 여기저기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관련 자료를 모으는 것은 당연한 업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라고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우리가 살펴본 민간인들은 가상화폐 관련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역할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꼭 필요한 조사였다”고 했다.
그러나 야권과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민간인이 비트코인을 사건 말건 청와대가 왜 조사를 하느냐. 무슨 고소‧고발이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것부터가 직권남용이자 불법사찰”이라고 꼬집었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도 “김태우 씨가 생산한 첩보를 살펴보면 단순한 자료 수집 차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가 나돌자 이를 확인하고,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권에선 비트코인 첩보를 둘러싼 이러한 공방이 정국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여권 인사들 중 일부가 가상화폐 열풍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풍문과 맞물리면서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들이 불법에 연루된 증거를 확보하고도 현 정부가 묵인 또는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 씨가 비트코인 첩보 내용을 흘린 것 역시 무언의 압박카드 중 하나라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의 말이다.
“당시 청와대 특감반뿐 아니라 검찰 경찰 등이 앞다퉈 가상화폐 첩보를 모았다.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이 언론 등을 통해 계속 나오면서다. 지금 특감반 활동을 두고 사찰 논란이 일고 있는데, 비트코인 자체가 사적 영역의 거래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검·경에선 범죄 혐의를 집중적으로 확보해 수사에 나섰다. 가상화폐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라 수사관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뒷말이 새어나왔고, 이번 특감반 사태를 거치면서 다시 회자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포착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핵심 골자다. 일부 수사 기관에선 외압 의혹까지 불거졌었다고 한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수사를 하려면 (수집된 첩보가) 일선으로 배당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감감 무소식”이라면서 “몇몇 건의 경우 수사 도중 석연찮은 이유로 중단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월 무렵 여권 주변에선 ‘바다이야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비트코인이 제2의 바다이야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친노 인사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TV 방송을 통해 비트코인을 바다이야기에 빗댔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4년 시작된 바다이야기는 중독성과 사행성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다. 골목 곳곳에 바다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오락장이 침투했고, 이로 인해 돈을 잃은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들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참여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에도 타격을 줬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친문 성향 한 정치권 인사의 경우 가상화폐 매매를 통해 거액의 차익을 거뒀는데,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 내부정보를 활용한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1월경 비트코인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이 발표되기 전 미리 그 자료를 입수해 비트코인을 팔았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 후 가상화폐 가격은 급락했다. 이러한 내용은 검찰에서도 제보를 통해 파악했지만 확인 작업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한 거래소의 경우 투자 사기로 고발돼 수사를 받았는데, 정권 실세 인사 지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 거래소 대표가 투자자를 모을 때 실세 이름을 팔았다는 진술까지 나왔다고 한다. 거래소 대표는 여러 차례 조사 끝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거래소에 투자했던 한 사업가는 “투자자들 사이에선 실세가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대표가 이것을 활용해 투자자를 많이 모았다. 고급 정보를 남들보다 일찍 알 수 있다고도 자랑했다. 막대한 피해를 봤는데 그 대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특감반 사태를 민간인 불법 사찰로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선 한국당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 자체 진상 조사에 나서는 한편, 추가 제보를 접수 중이다. 지난해 1월 정부가 가상화폐 대응책을 발표할 때도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의원을 비롯해 많은 의원들이 문재인정부 인사들의 수상한 투자 내역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시장에서 온갖 얘기가 나돌았었다. 그러니 특감반에서도 조사에 나섰던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런데도 지금 뭐 하나 실체로 드러난 게 없다. 루머였거나 알고도 덮은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기관에서도 뒤늦게 불만이 나온다. 여권 인사들 이름이 거론된 첩보의 처리를 놓고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가상화폐 수사가 통상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일선에서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수사하지 못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는 정권 후반기 가상화폐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권력의 힘이 빠지기 시작해 검찰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 가상화폐 이슈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