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세 등 업계 상황 안좋은 데다, 그룹 지주사 전환 완료 추가 자금 확보 이유 사라져
사진=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8월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자마자 ‘하반기 IPO 최대어’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회사 현대쉘베이스오일의 회계처리와 관련해 문제가 지적돼 감리가 3개월이나 소요되면서 공모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승인효력은 6개월 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상장을 계속 추진하려면 오는 2월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증권신고서 제출에서 공모까지 통상 한 달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시한을 넘기면 현대오일뱅크는 예비심사부터 다시 진행해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에도 상장을 추진했지만 유가 하락과 경제위기 등 영향으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듬해 공모를 철회한 바 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상장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상장 시기에 대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상장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불거지면서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상장을 무리하게 진행하기보다 향후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현대오일뱅크나 정기선 부사장으로서는 더 좋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유가 하락세 등으로 정유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 SK이노베이션, S-Oil 등 정유주 주가가 지난해 10월부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IB업계에서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현대오일뱅크의 예상 기업가치가 1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7조 원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모가 역시 당초 2조~3조 원 규모로 역대 공모가 2위 넷마블(2조 6617억 원) 기록을 깰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지금은 시황이 좋지 않아 투자자들의 공모 참여를 유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추진한 이유는 지배구조 개편과 재무구조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순환출자구조 해소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현대오일뱅크 상장 구주매출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급하게 상장을 추진하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구주매출로 벌어들이는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사 체제 전환을 완료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현대오일뱅크를 상장시켜 추가자금을 확보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추후 정기선 부사장이 부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보유 지분 승계 작업이 이뤄질 때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사장은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1%(83만 1000주)를 확보했다. 정 부사장은 이로써 정몽준 이사장, 국민연금에 이어 3대주주로 올라섰다.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매입 당시 정 부사장은 부친 정 이사장에게 3040억 원을 증여받고 500억 원은 현대로보틱스 주식 23만여 주를 담보로 NH투자증권에서 빌려 자금을 마련했다.
정 부사장이 부친의 보유 지분 25.8%(420만 2266주)를 물려받으면 승계 작업은 마무리되지만 상속세가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기선 부사장이 경영권 승계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부친이 보유한 주식을 받을 때의 상속세 확보가 관건이다”라며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 구주매출을 통해 이익 배당 등의 형식으로 정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을 확보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12월 2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주주친화 정책의 일환으로 2900억 원 규모의 주주 배당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정 부사장은 약 147억 원의 배당을 받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이번에 상장이 어려워진 것은 감리 등 절차상 문제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며 “상장에 대한 의지는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정재계서 모습 감춘 MJ 지금 어디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사진=아산사회복지재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에 몸담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2년 사장, 1987년 회장에 올랐다. 이듬해 정계에 진출했고, 이후 30년 동안 최대주주로서 직간접적인 영향력만 행사해왔다. 정 이사장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돼 7선 의원에 올랐다. 이는 서청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현역 최다선 의원이었다. 2014년에는 제6회 전국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에 밀려 낙선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고, 그해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후 정 이사장은 별다른 정치행보를 보이지 않아 사실상 정계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정 이사장은 현재 아산사회복지재단 활동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도 ‘2018 서울국제음악제-정주영 진혼교양곡 공연’ ‘제30회 아산상 시상식’ 등에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