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가상통화 가격 개입·거래 초기화 빈번…법률 기반 없어 불법성 판단 난항
일요신문 취재 결과,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빗’은 ‘젤루리다의 역습’이란 이벤트를 통해 가상통화인 이그니스·아더·엔엑스티의 거래 가격 상승을 이끈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코인빗은 이그니스를 시작으로 아더, 엔엑스티 각각에 대한 이벤트를 순차로 진행해 “거래량이 제일 높은 고객 100명 중 가장 고점에 구매한 고객에 1억 원 상당 비트코인을 드린다”고 알렸다. 이그니스는 코인빗이 이벤트를 진행한 10월 1일 밤 10시부터 10월 2일 밤 10시까지 24시간 동안 540여 원까지 올랐다. 이벤트 시작 하루 전 이그니스 거래가 142원의 약 4배로 뛴 셈이다.
서울에 있는 한 가상화폐 거래소를 찾은 시민이 가상화폐 시세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가상통화 업계 한 전문가는 “거래소는 코인(가상통화) 가격에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코인빗과 같은 거래소들은 거래소 운영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이벤트로 거래량을 늘리고 가격을 올리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면서 “거래량이 많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고점에 구매한 사람을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거래 수수료를 늘리고 코인 가격 상승을 주도해 거래소 수익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라 말했다. 이벤트 이후 하루가 지난 지난해 10월 3일 밤 10시 이그니스 가격은 217원으로 급락했다.
거래량 기준 국내 2위 가상통화 거래소에 올랐던 ‘업비트’는 지난해 4월 가짜 회원 계정이 거액의 자산을 예치한 것으로 전산을 조작한 뒤 거짓 거래로 1500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가상통화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는 가짜 계정을 총 35종의 가상통화 거래에 직접 참여시켜 가상통화 매매를 허위로 진행하는 식으로 거래량과 거래액을 부풀리고 현재가와 동떨어져 체결 가능성이 낮은 ‘허수주문’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실제 고객들의 거래를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방관이 가상통화 시장을 거래소의 가격 조작이 팽배한 온라인 도박장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2017년 12월 ‘가상통화 거래소 회원 실명확인 서비스’ 실시를 대책으로 내놓은 이후 사실상 논의를 멈춘 상태다. 당시 정부는 거래소가 입금된 고객의 투자금을 마음대로 써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 착안, 은행을 통한 가상통화 실명제로 투자금 추적을 진행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은행에 사실상 규제 업무를 떠넘긴 셈이다. 정부는 가상통화를 직접 규제하는 게 가상통화의 인정이라고 봤다.
은행은 일부 거래소에만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 가상통화 거래를 허용했다. 가격 조작 등이 많은, 문제 있는 거래소에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해주면 이후 불거질 문제를 은행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줄이 막힌 가상통화 거래소는 지난해 10월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 대신 법인계좌로 투자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거래소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빗썸·코인원·코빗·업비트를 제외한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는 모두 법인계좌로 투자를 받고 있다. 투자자는 돈을 투자해도, 돈이 거래소 법인계좌에 있어 실질적 소유권이 없다. 투자자는 거래소가 투자금을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 채 거래소를 믿는 수밖에 없다.
법인계좌로 들어온 고객 돈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가상통화 거래소는 ‘신규거래소공개(IEO·Initial Exchange Offering)’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입맛에 따라 거래 자체를 없애는 ‘롤백(Roll Back)’까지 일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EO는 가상통화만 공개해 투자자를 모으는 ‘가상통화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와 달리 거래소가 새 블록체인의 가상통화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거래소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모든 형태의 ICO 전면 금지’를 엄포했지만, 가상통화 거래소는 자체 토큰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금지한 ICO를 사실상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가상통화 거래소 ‘트래빗’은 지난해 11월 7일 가상통화 티메드(TMED) IEO를 진행한 후 같은 날 롤백했다. 트래빗은 투자 희망 고객들의 로그인 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 거래 형평성을 위해 롤백을 결정하고 IEO 재추진에 나섰다고 설명한다. 다만 롤백 피해 고객 사이에선 트래빗이 거래소 물량 확보에 실패해 롤백한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금에 대한 소유권을 법인계좌 통합으로 사실상 소유한 거래소가 이익 확대를 위해 롤백했다는 것. 거래소 소유 가상통화 물량은 이벤트 이후 고점 매도에 주로 활용된다.
트래빗은 티메드 개당 1원으로 상장, 1.9원에 매수·매도해 이익을 실현한 고객이 나왔음에도 체결된 거래의 전면 취소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래빗은 ‘회원의 매매 등 거래를 직권으로 취소하고 원상 회복할 수 있다’는 약관 제23조를 롤백의 근거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가상통화 특성상 명확한 불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거래소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전면적인 롤백을 한 것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래빗의 IEO 롤백 이후 가상통화 롤백은 증가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가상통화 제도화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률 기반이 없는 한 가상통화 시장은 정부 방관 속에서 갈수록 기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블록체인·가상통화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정비를 마쳤다. 최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 2기에 블록체인 전문가가 포함된 것은 가상통화 제도화 논의의 호재로 보인다. 4차위 2기 위원인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4차위가 부처간 의견을 조율하고 공론화하는 역할을 담담하고 있는 만큼 가상통화 제도화 논의가 재시작할 여지는 있다”면서 “TF 안건에 가상통화가 올라간 상태”라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