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다던 도록은 1년째 감감 무소식…조달청 사이버갤러리는 말도 없이 ‘비공개’
베트남 유학생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김정숙 여사 뒤로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 보인다. 사진-일요신문DB
문재인 정부의 각별한 미술사랑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소문난 미술 애호가다. 아들 문준용 씨가 미디어아티스트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사실. 딸 문다혜 씨 역시 과거 금산 갤러리의 보조 큐레이터로 인한 경력이 있다. 뿐만 아니다. 이낙연 총리는 화가 아내를 두고 있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딸은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정권 핵심층에 미술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 많은 탓일까. 청와대 주도의 미술 행사도 잦았다. 정부는 지난 5월 ‘함께, 보다’ 전시를 개최해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공개했다. 역대 정부 최초였다. 이밖에도 나전칠기 벽화 전시나 신진 작가와의 협업 전시 등 크고 작은 전시회가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바 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최근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청와대의 미술품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시회는 자주 열렸을지언정 정작 소장 작품의 행방은 과거보다 더욱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 사라진 도록 제작 사업
미술평론가 A 씨는 청와대의 미술품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시회는 1회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다. 그런데 정부는 소장 미술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디에 관리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 소장품에 대한 도록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장 미술품 도록 제작에 대해서는 청와대비서실에서 먼저 제작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단지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2017년 9월 대통령비서실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유 중인 미술품 600여 점을 모두 재검토하고 정비하고 도록화해서 적당한 시기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전수조사팀도 꾸려졌다. 문제는 도록 제작 계획을 알린 지 1년이 훨씬 넘었다는 사실이다. 만든다던 도록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일요신문’은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관리하고 있는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에 관련 사실을 문의했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도록 제작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고 들은 바도 없다. 앞으로도 제작할 계획이 없다. 만약 그런 말이 있었다면 대통령비서실 자체 사업일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비서실의 답변은 없었다. 담당 행정관에게 따로 문의 메일도 보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다만 앞서 ‘일요신문’이 제출한 ‘대통령비서실 소장 작품 현황’ 정보청구 요구에 대해 “물품관리법 제 52조에 의거해 작품 관리를 문화체육관광부로 전환했으며 소장미술품이 기존 606점에서 443점으로 줄었다“고 밝힐 뿐이었다. 남은 443점에 대한 상세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 감사원의 관리 지적
청와대 내 미술품 관리가 미흡하다는 사실은 감사원에서도 지적했다. 지난 6월 감사원은 대통령비서실에 ‘소장 미술품 관리가 부적정하다’는 통보를 내렸다.
‘국가기관 소유 미술품 보관관리규정’ 제6조 및 ‘정부미술품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미술품은 예술적‧재산적 가치 등을 기준으로 A‧B‧C‧D등급으로 분류하되 보존가치가 높은 A‧B등급은 5년마다 분야별 감정전문가 또는 전문기관을 통해 실물감정을 한 뒤 이를 작품가액에 반영함과 아울러 등급분류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재분류하도록 돼있다.
대통령비서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보유한 A‧B등급의 미술품 43점에 대한 실물감정조차 하지 않았을뿐더러 작품가액은 모두 ‘0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보존가치가 높아 상위등급으로 분류된 43점 작품의 재산 가치는 모두 ‘0원’이었다. 또한 이 가운데 17점은 작가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작자 미상의 작품이었다. 같은 시기 청와대 사랑채에서는 청와대 소작품 특별전 ‘함께, 보다’가 열리고 있었다.
대통령비서실은 감사결과에 동의하면서 “차기 가격 재평가 주기에 실물감정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산가액을 재산정하거나 등급을 재분류하겠다”고 밝혔다. 재평가는 5년마다 실시된다.
청와대 본관 벽면에 걸린 송규태 화백의 ‘일월도’ 사진=일요신문 DB
# 일반인에 문 닫은 조달청 사이버갤러리
조달청 사이버갤러리는 2007년 ‘신정아 파문’ 이후 활성화됐다. 당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정부 예산 2000만 원으로 신정아 씨에게 그림을 구입하고도 이를 조달청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정아 파문’ 이후 정부는 투명한 예산집행과 미술 행정을 위한 미술작품 관리 강화대책을 내놨다. 취득가격 50만 원 이상의 모든 정부미술품은 조달청 사이버갤러리에 등재됐고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조달청 사이버갤러리를 통해 정부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현재 조달청 사이버갤러리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행정전자서명(GPKI)를 해야 한다. GPKI는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공무원 전용 공인인증서다. 사이버갤러리에서 일반인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문제는 일련의 절차가 일언반구 말도 없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달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2018년 3월쯤 사이버갤러리를 일반에 비공개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닫게 됐다. 현재는 공무원만 접근이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비공개 사유는 ‘낙후된 시스템’ 이었다. 관계자는 “2016년부터 3년 연속 국회 지적을 받은 사항”이라며 “검색 기능 등 전반적인 사이트 재구축을 위해 임시로 문을 닫게 됐다. 2020년 예산을 확보하면 2021년쯤 다시 문을 열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론가 A 씨는 “정부미술품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정부미술은행 사이버갤러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정부미술은행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조달청 사이버갤러리가 닫혔다는 말은 청와대 소장품을 비공개로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