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후보들 존재감 하락 ‘차기 대선판’ 위축…여권 주류 폐쇄성 ‘유시민 현상’과 충돌 우려도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유시민만 보인다.”
실제 그렇다. 역설적이다. 유 이사장은 정계 복귀설에 휩싸일 때마다 선을 그었다. 하지만 불출마 의사를 피력하면 할수록 ‘등판설’, ‘차출설’ 등은 한층 강해지는 모양새다. 최근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유 이사장은 범진보진영뿐 아니라 여야를 통틀어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유 이사장의 ‘알릴레오’ 등을 업로드하는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1월 23일 기준으로 65만 명을 넘어섰다. 앞서 돌풍을 일으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홍카콜라 TV(구독자 수 25만 명)’를 단숨에 꺾었다. ‘요새 유튜브가 대세라던데, 한번 정복해볼까 한다’던 유 이사장의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문제는 ‘유시민 현상’에 담긴 속뜻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인 친노(친노무현)계와 친문(친문재인)계의 팬덤(특정 인물 등을 열렬히 지지하거나 좋아하는 현상)이 유 이사장에게 오롯이 이어진 결과다. 유 이사장은 참여정부 당시부터 보수의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다만 ‘유시민 현상’에 깔린 이면을 보면 한층 복잡해진다. 유 이사장의 철벽방어에도 치솟는 몸값은 역설적으로 ‘포스트 문재인’의 대체재가 없다는 의미다. 여권 관계자들 분석도 같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유시민 현상’에는 차기 대권주자보다는 문재인 정부를 지키는 ‘투사에 대한 기대감’이 깔렸다고 설명했다. 집권 1∼2년 차 때 고공행진을 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과반 아래도 떨어졌다. 탈원전을 둘러싼 당·청 갈등을 비롯해 공직기강 해이, 여권 의원의 잇따른 구설 등 ‘집권 3년 차 증후군’은 정권 전반을 옥죄고 있다.
이에 발맞춰 야권의 대대적인 대여 공세는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당·청 내 ‘문재인 호위무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친문 지지자들이 투사 역할을 자처하는 유 이사장에게 열광하는 것도 이 지점과 맞물려있다. 유 이사장이 정의당 탈당 후 외곽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자, 친문 지지층이 ‘유시민 등판론’ 띄우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유 이사장에 대한 기대감은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의 결집과 비례한다”고 잘라 말했다.
유 이사장은 참여정부 당시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당시 ‘진짜 진보’ 경쟁을 하던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유 이사장을 향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마지막 경호실장이던 차지철 씨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이들은 2012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한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참여정부 때도 유 이사장의 포지션에 대한 비판 여론은 많았지만, 친노 지지층은 ‘포스트 노무현’으로 유 이사장을 지목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층의 팬덤 현상이 유 이사장에게 투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때 손학규계였던 이낙연 국무총리가 친문 지지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반작용은 상존한다. ‘유시민 딜레마’ 핵심은 여권 차기 대선판의 축소다. 인물의 다양성을 죽이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박근혜 대세론’도 그랬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 속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천막당사 승부수로 121석을 건졌다. 침몰하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을 가까스로 구하면서 보수진영 전체가 구사일생했다. ‘선거의 여왕’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이쯤이다. 2012년 대선에서 헌정 사상 첫 ‘과반·여성·부녀’ 대통령 3관왕을 차지할 때까지 박 전 대통령은 보수진영의 ‘국가대표로’ 자리를 굳혔다.
이는 보수진영의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보수진영 대권후보들의 싹을 자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 등장했지만, 이는 대세론보다는 참여정부 내내 이어진 경제 실정 논란과 북핵 위기가 컸다.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 MB정부가 정권 출범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파동으로 최대 위기를 맞자, 박 전 대통령은 ‘포스트 MB’ 자리를 일찌감치 꿰찼다. 또다시 보수진영의 싹은 말랐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보수진영이 구심점 부재에 시달린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정 후보로의 쏠림 현상이 진영 전체에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뿐만 아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 캠프에서 전략을 짠 한 보좌관은 “OO현상, 대안론, 대세론 등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선거전략의 정체현상’”이라며 “일종의 전략 게임인 선거에서 대세론 후보나 현상의 주인공이 패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걸었지만, 대세론에 안주한 나머지 이념적 부분에서 여전히 ‘낡은 보수’의 틀을 벗지 못했다.
선거 막판까지 중도확장 전략에 경고등이 켜진 것도 대세론 기저에 깔린 ‘경직성’과 ‘피동성’이 한몫했다.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다. 변방에서 여의도 정치문법을 거부했던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야권 후보단일화에 손을 대는 순간, ‘원 오브 뎀’(여럿 중 하나)으로 전락했다. 유 이사장이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유시민 현상’의 흐름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권 ‘특유의 폐쇄성’과 ‘유시민 현상’의 충돌도 문제다. 1997년 대선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를 꾀한 여권은 이후 ‘포스트 주자’를 키우는 데 실패했다. ‘노무현 열풍’이 있기 전까지 ‘이인제 대세론’이 민주개혁진영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국민신당 대선후보였던 이인제 전 의원은 한나라당에 몸을 담았던 김영삼(YS)계 인사였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 현상은 2002년 ‘노무현 열풍’이 불 때까지 계속됐으나, 구여권 인사의 최종 선택은 이 전 의원이 아닌 ‘노무현 현상’이었다.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지자, 여권 내는 ‘고건 현상’, ‘정운찬 대안론’으로 곁눈질했지만, 당 주류였던 친노계는 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등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인제도, 고건도, 정운찬도 사실상 ‘팽 당한’ 셈이다.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노계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2012년 ‘문재인 현상’을 계기로 기사회생했다. 그간 친노계 내부에는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파다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친노·친문계는 분화 수순을 밟고 있다. 유 이사장도 한때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친문 직계가 ‘유시민 현상’을 끝내 용인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상도동계 한 원로인사는 “동교동계인 김대중(DJ)그룹과 YS그룹 내부 분위기의 차이는 개방성 유무”라며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주류였던 민주계가 공천 개혁을 한 것도 이런 내부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말했다. YS의 주도로 이뤄진 당시 공천 개혁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박찬종·이재오·정의화 전 의원 등이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그 결과 총 299석 중 139석으로 총선에서 승리했다.
실제 유시민 대안론이 불거진 이후 민주당 내부에는 ‘경계론’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유시민 대안론’에 대해 “여권 내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 한 중진 의원도 “(유시민 현상은)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노(비노무현)계 한 재선 의원은 “인재풀이 넓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지금은 당과 유 이사장이 ‘전략적 거리 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 간극이 좁혀질지, 그대로 유지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