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판사가 “도움 줄 수 있다” 먼저 제안…검찰 수사 민원 넣기도 비일비재
국회 전경. 박은숙 기자
정치인 4명(서영교 전병헌 노철래 이군현)이 재판 청탁을 했다는 사실은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해 추가 기소를 하면서 알려졌다. 임 전 처장은 이들로부터 양형 ‘민원’을 받고 이를 재판부에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재판 청탁의 사법처리 여부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일단 이들에 대한 수사는 진행할 예정이다. 어떤 법을 적용할지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법조계에선 이러한 부적절한 거래 뒤엔 양승태 대법원 숙원 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이 깔려 있을 것으로 본다. 임 전 처장이 상고법원 도입의 정치권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청탁을 들어주려 애를 썼다는 얘기다. 실제 재판 청탁은 대법원 움직임이 가장 분주했던 2015~2016년에 이뤄졌다. 서영교 의원과 노철래 전 의원은 상고법원 도입 키를 쥐고 있던 법사위원회 소속이기도 했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에 숨죽인 모습이다. 그 여파가 국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재판 청탁이 상고법원 도입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 문제가 아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터질 게 터졌다. 서영교 의원 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내가 국회로 들어온 이후(2012년~) 수없이 봐 왔던 일이다. 여기서 자유로울 정당, 의원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판보다 검찰을 상대로 한 수사 청탁이 더 심각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검찰 출신 의원들, 국회 파견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은 물론 지인들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검찰 수사에 민원을 넣었다가 논란이 됐던 사례들도 많다.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판사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또 하더라도 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크게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검찰은 조금 다르다. 통로도 다양하다. 동료 의원 중에 검사 출신도 많다. 솔직히 재판으로 가기 전 검찰에서 해결하는 게 제일 좋지 않느냐. 검찰과는 얘기도 비교적 잘 통하는 편이다. 재판보단 검찰 수사에서 융통성이 발휘될 가능성이 높다.”
판사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검사들은 그 불똥이 검찰로까지 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국회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주요 현안을 풀어줘야 할 정치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재판 청탁과 같은 부적절한 일이 벌어진다는 논리였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인맥 등을 통해 민원을 넣는 것은 정치권뿐 아니다. 얼마나 많은 청탁들이 들어오겠느냐. 하지만 판사들이 들어주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 자리에서 거절하거나, 아니면 알아보겠다고 하고는 답을 안 해주는 게 대부분”이라면서 “(임종헌 전 처장은) 상고법원 때문에 사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을 무리해서 한 것이다. 이처럼 국회에 대해서만큼은 특혜를 줬던 사례가 더 있다는 말이 내부에서 파다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검찰도 국회에 대해서만큼은 ‘을’이다. 수사권 조정 등 여러 안건이 걸려 있지 않느냐. 그러다보니 정치권 청탁을 대놓고 무시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 평검사는 “수사 민원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윗선에서 은근히 압력을 넣는 수사의 절반 이상은 국회 쪽 청탁이라고 보면 된다. 의원들의 지역구 관계자, 지인, 친인척 등 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여기서 짚어볼 것은 사법부와 검찰에서 국회로 파견 나간 판검사들이다. 임종헌 전 처장 역시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 정치인들 민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이들이 청탁 창구 역할을 한 셈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국회의원들 업무를 지원하고, 기관 간 유기적인 협력 등을 위해 검사와 판사를 파견해 왔다. 국회 본관엔 이들이 근무하는 방도 따로 배정돼 있다.
그동안 이들의 국회 파견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파견 목적이 변질돼 자칫 의원들의 민원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치권에선 진작부터 서영교 의원 건과 같은 사태가 불거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던 셈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내가 보기에 그들의 가장 큰 임무는 의원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조직에 유리한 법안과 정책 등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라면서 “민원을 들어주는 일은 그들이 의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의원들과 그들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형성돼 있던 것”이라고 했다.
보수당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은 “파견 검사와 판사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국정감사 때 질문지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를 위해 평소 의원실과 가깝게 지낸다고 들었다”면서 “이를 잘했던 판·검사들은 대부분 조직으로 돌아가 승승장구했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의원도 “무엇보다 의원들이 청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처럼 정체가 불분명한 (파견) 근무는 없어지는 게 맞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정식적으로 협조하면 될 일인데, 음지에서 해결하다보니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의원들은 재판과 수사를 앞두고 민원을 넣었던 실제 사례들을 털어놨다. 그 수가 많아 사법부와 검찰이 가장 공을 들이는 상임위로 알려진 법사위 것만 한정해 우선 보도한다. 한 전직 법사위원은 국회 자문관으로 파견 나왔던 판사를 통해 자신의 부인이 연루된 소송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한 의원은 “(파견 판사가) 알아봐줄 수 있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기꺼이 부탁을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실제 부인은 예상보다 훨씬 가벼운 형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 (파견 판사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법사위원실 관계자는 같은 당 의원 부탁으로 재판 청탁을 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지금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4년 전쯤(2014년) 한 의원이 지역구의 친한 사업가가 1심 재판 중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자기보단 법사위에서 청탁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재판부와 가까운 판사들을 수소문해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 재판이 어찌됐는지는 챙겨보지 않았지만 법사위원들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이런 식의 민원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법사위원들의 검찰 수사 청탁은 오래전부터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검찰에선 대검찰청 범죄정보과 소속 수사관들이 법사위원들 동향을 따로 파악해 보고할 정도로 법사위에 남다른 신경을 썼다. 그만큼 법사위원들 민원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한 전직 법사위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옛날엔 음주운전 같은 사소한 문제도 검찰에 민원을 넣었다고 들었다. 우리 땐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특히 선거법에 걸린 의원들이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모든 인맥과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이 전직 법사위원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 한 대기업 수사 과정에서 현역 의원이 차명으로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소환 조사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는데, 없던 일로 됐다. 당시 그 의원은 법사위 소속이었다. 그가 수사 라인 윗선을 움직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후 이 의원은 검찰 쪽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많이 했다. 약점을 잡혔기 때문 아니겠느냐. 현 정권 들어서도 은행권 특혜 채용에 연관이 있던 한 의원이 검찰 수사에서 빠진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 역시 법사위였다. 검찰로서도 법사위원들을 수사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