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베테랑·멘토 역할 중요…축구로 소통 이어가고 싶어”
말레이시아 무대에서 복귀해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는 미드필더 김두현. 최준필 기자
[일요신문] 2000년대 중반 K리그를 호령하던 성남 일화에서 주축 선수로서 우승컵과 MVP를 휩쓸던 미드필더 김두현.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리그를 호령하던 선수는 세월이 흘러 30대 후반 베테랑이 됐다. 수원 삼성과 성남, 영국 무대까지 거치며 많은 경험을 쌓은 그가 향한 곳은 축구팬들에게 다소 생소한 말레이시아 리그였다. 말레이시아에서 1년간의 생활을 마친 그의 눈은 이제 새로운 곳을 향하고 있었다. ‘경험’이라면 국내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베테랑 김두현을 만나봤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활약하며 우승과 MVP를 휩쓸고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2015년 다시 돌아왔던 성남을 떠난 김두현의 선택은 의외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난 1년간 그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그의 대답은 ‘가족’이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 나 자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다른 환경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영어도 배웠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의 대답에 ‘한국은 가족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환경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그는 “아무래도 국내에는 선후배 관계도 있고 지인도 많다.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 구애받지 않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도 마음껏 다니기도 하고...”라며 웃었다.
김두현은 성남과 수원, 경찰청 등 전 소속팀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성남 FC
그의 또 다른 전 소속팀인 경찰청 팀(아산 무궁화 구단은 존재하나 경찰청 인원 충원 중단)이 사라지기도 했다. 김두현은 2011년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는 드물게 경찰청 복무를 선택하기도 했었다. 이에 “뉴스를 보며 당연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남겨진 곳이지 않나. 후배들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인데 그런 곳이 없어지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이 시작되면서 그는 한국 나이로 38세가 됐다. 김두현은 스스로를 “이제 더 이상 리그에 동기가 없는 나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코치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주변에선 늦었다는 말씀도 하시더라”라며 “그래도 아직은 선수 생활에 욕심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는 물론이고 어느 무대에서도 라커룸 내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야하는 위치가 됐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팀에서 처음에 그런 부분을 많이 기대했다. 상대를 이기려면 팀이 조직적으로 싸워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힘들었다. 성적은 안좋은 팀이었다. 감독만 세 번 교체됐다.”(웃음)
말레이시아 무대에서의 생활은 지난해로 종료됐다. 현재 김두현은 새로운 팀을 찾고 있다. 그는 “상황을 봐야 하는 시기다. 국내 무대도 다각도로 알아보고 있다. 미국 쪽도 생각하고 있다”며 상황을 전했다.
특히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나이는 많지만 팀 내에서 베테랑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분위기를 잡아주고 후배들이 기대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나이 많은 선수를 버거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다만 그 중요성을 알고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다면 인연을 이어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김두현과 만남을 갖기 전 2015 무렵 성남에 짧게 소속됐던 전직 선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김두현에 대해 “경력 차이가 엄청났지만 신인 선수들을 매우 잘 챙겨줬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자 김두현은 “당시 내가 그랬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웃으면서도 “고참이고 베테랑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의 입장이 돼보기도 하고 도움이 줄 수 있는 부분은 줘야한다. 꼭 축구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인간 김두현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두현은 선수 생활에서 자신의 멘토로 김호, 윤성효, 고종수, 서정원, 김학범 감독 등을 꼽았다. 최준필 기자
그렇다면 신인 시절 김두현에겐 어떤 멘토가 있었을까. 그는 “내가 데뷔했을 때 수원은 정말 강력한 팀이었다”면서 “김호 감독님이라는 훌륭한 감독님이 계셨고 윤성효 감독님도 당시 코치로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선배들도 많았다. ‘고데로 트리오’였던 고종수, 데니스, 산드로도 있었고 서정원 감독님도 선수로 뛸 때였다. 좋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라며 과거를 떠올렸다.
김학범 감독도 그의 선수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멘토다. “선수와 지도자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감독님이다. 2015년을 앞두고 김학범 감독님이 내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셨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금전적으로나 다른 부분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만큼 신뢰로 믿고 따를 수 있는 분이다. 감독님은 신뢰하는 선수에 한해서 운동장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 해주시는 스타일이다.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성공하시는 것을 보고 정말 너무 기뻤다.”
후배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잘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내가 이런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하겠나”라고 손사례를 치면서도 “경기장 밖에서 축구 외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컬적 보강은 당연한 부분이고 멘탈적 보강도 중요하다”며 “지도자가 바뀌거나 팀이 바뀌면 적응을 하는데 어떤 선수는 3개월이 걸리고 어떤 선수는 6개월이 걸린다. 이런 부분은 멘탈에서 오는 것이다. 결국은 긍정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선수생활도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나간 것을 빨리 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무뎌질 필요도 있다. 부진한 경기, 진 경기를 머릿속에서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라고 조언했다. 또한 “어릴 때 때로는 흔들려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언론의 매도 맞아보고, 큰 부상도 당해보고 슬럼프도 빠져보고 하다보면 큰 선수가 돼 있을 것”이라면서 “멘토가 있어서 중심을 잡아준다면 기회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약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 단계 성장한 선수로 국가대표 공격수 황의조를 꼽았다. 김두현은 후배 황의조와 함께 성남 시절인 지난 2015년을 전후로 좋은 호흡을 보인 바 있다. 그는 “김학범 감독님이 황의조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했을 때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내가 아까 ‘언론의 매도 맞아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웃음). 황의조는 이제 그걸 이겨낸 선수가 된 것이다”라며 웃었다.
김두현은 황의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그를 ‘저평가 됐던 선수’라고 표현했다. “성남이 많은 관심을 받는 팀은 아니었다. 큰 팀에 있었다면 더 큰 스타가 돼 있었을 것이다”라며 “국내에서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는데 일본에 진출하며 조직적인 플레이를 배워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좋은 흐름이 A대표팀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보기 좋다. 한 단계 더 올라서려면 대표팀에서 더 잘해서 유럽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경험을 하면 대표팀도 더 강해지고 한국 축구 전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황)의조가 그런 길을 걷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아시안컵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는 “우리 대표팀 경기들을 즐겁게 보고 있다”며 축구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축구 경기를 분석하고 자신만의 견해를 전하며 더욱 눈을 반짝였다. 20년이 훌쩍 넘도록 운동장에서 뛰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가 즐거운 듯 했다. 그는 “하면 할수록 재밌고 새로움을 느낀다. 궁금증도 새롭게 생긴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그런 부분이 쌓인다면 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두현은 “여전히 축구가 재밌고 새롭다”며 웃었다. 최준필 기자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당분간은 선수생활을 지속할 계획이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 또한 인지하는 부분이었다. 김두현은 지도자 라이센스는 B등급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연내 A등급에도 도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두현은 “아직 결정된 부분은 없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축구기 때문에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축구에 대한 정보나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방송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겉핥기가 아닌 심도 있는 부분을 다루고 싶다”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축구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해 보고도 싶다.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이 축구팬이 더 많아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축구에 관심이 덜한 사람도 내 이야기를 듣다보면 ‘뭐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일이지만 축구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