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서 봐주는 것” vs “삼성이니깐 욕 먹는 것”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지난 11월 15일 거래정지된 삼성바이오는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 결정에 따라 지난 12월 11일 거래가 재개됐다. 그러나 지난 12월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심위의 삼성바이오 상장실질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한국거래소는 삼성바이오의 수정 재무제표가 당시 상장요건을 만족하지 못함에도 불리한 규정은 숨기고 유리한 규정만 내세워 기심위를 통과시켰다”고 질타했다.
분식회계를 반영한 수정 재무제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는 상장 당시 부채비율이 300%가 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상장 규정 가운데 ‘질적상장요건’인 ‘최근 사업연도말 또는 최근 분반기 기준 부채비율이 300% 미만’을 충족할 수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학영 의원실이 기심위 의사록을 열람한 결과 기심위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논의되지 않은 채 상장 유지가 결정됐다.
한국거래소가 삼성바이오의 경영 투명성 항목에 ‘일부 훼손’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4년간 4조 5000억 원 규모의 고의분식이 있었음에도 불구, 3년간 156억 원 규모의 고의분식으로 ‘심각한 훼손’ 판정을 받은 다른 기업에 비해 한국거래소의 판단이 가볍다는 것. 한국거래소는 삼성바이오가 개선계획 이행을 통해 경영투명성이 개선될 것이라 판단했으나 내부회계 관리·감사, 법률자문 기능 강화 등의 개선계획으로는 그룹 차원에서 개입한 고의분식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도 이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참여연대가 상장 규정과 삼성바이오의 상장예비심사 결과 통보서를 대조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정정해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경우 2016년 8월 12일~9월 29일 진행한 상장예비심사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삼성바이오는 상장예비심사에서 탈락했을 것”이라며 “한국거래소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상장예비심사에 미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시 상장예비심사 또는 상장심사의 효력을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는 해명자료를 통해 “현금흐름 등을 고려할 때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지 않은 경우에는 부채비율이 300%를 초과하더라도 상장 미승인 사유가 아니다”라며 “콜옵션 관련 부채는 통상의 채무부채와 달리 실제 현금유출을 초래하지 않으므로 부채가 증가했다고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거래소가 밝힌 ‘재무안정성’ 심사기준에 따르면 ‘업종의 특성, 현금흐름, 부채감축계획 등을 기초로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상장신청인이 증명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또 “상장폐지를 위한 실질심사 과정에는 부채비율에 관한 요건이 없으나 재무건전성 판단을 위한 검토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으로 심사했다”며 “실질심사기간 중인 지난해 11월 7일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함에 따라 재무상태 개선이 예상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분기 재무제표에 콜옵션 행사 회계처리를 반영하면 부채비율이 감소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공방에 더해 삼성바이오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증선위와 기심위 등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 대한 증선위와 기심위 판단에 대해 ‘삼성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한편에선 ‘삼성 때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바이오 회계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참여연대는 지난 31일 한국거래소의 해명에 대해 각각의 조목마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재반박에 나섰다. 참여연대는 “거래소의 해명이 졸속적이고 편파적인 심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그간의 상장심사 관행과 상장 규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 기심위의 상장폐지 심사 부실과 분식회계 정정시 삼성바이오의 상장예비심사 탈락 가능성에 대해 전면 재검토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24일 정책토론회를 열고 증선위의 분식회계 결론을 반박했다. 명확한 회계기준을 정립하지 못한 상황인데다 피해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계평가 기준 변경이 가져온 일회성 이윤 반영을 무리하게 분식회계로 몰고 갔다는 지적이다. 삼성바이오 특혜상장 의혹제기 자체가 ‘삼성 죽이기’라는 정치색을 드러냈으며, 똑같은 조건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면 지금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전삼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숭실대 교수)은 “신산업이 탄생하고 다변화되는 사회에서 법 기준을 계속해 세워가야 시장이 성장한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시장에 대해 과도한 개입을 하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정·보완하는 정도의 소극적 개입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 교수는 또 “국내에서 삼성이라는 그룹이 갖는 위치가 있어 삼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문제가 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삼성바이오의 행정소송은 시간끌기? 금융당국과 삼성바이오의 법적공방이 오래 갈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2일 삼성바이오가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증선위 제재는 삼성바이오가 제기한 행정소송 1심 결과가 나온 이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이 중단된다. 앞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 대해 재무제표 시정 요구와 3년간 증선위 지정 감사인 선임,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권고, 과징금 80억 원 등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하자 증선위는 지난 30일 항고장을 제출했다. 증선위는 “증선위 조치대상 위법행위는 회사의 향후 재무제표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재무제표가 올바르게 시정되지 않을 경우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상당 기간 잘못된 정보에 입각해 투자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양측이 법정에서 행정처분의 시비를 가리는 동안 삼성바이오는 시간을 벌게 됐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의 행정소송이 ‘시간끌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아 있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에 삼성바이오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었으나 행정소송으로 최소 2년의 시간을 벌었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 건은 승계부터 지배구조까지 확산될 수 있는 사안인 탓에 삼성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삼성바이오와 증선위가 소송을 벌이는 사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