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재조성안’ 두고 행안부와 갈등…“제로페이 등 설익은 정책 추진 지나쳐”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성공 후 여의도 개발, 을지로 일대 재개발, 광화문 광장 재조성 등 연이어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조차 성급했다는 비난이 나오자 “재검토 하겠다”며 번번이 물러나 체면을 구겼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소상공인들이 1월 24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제로페이 국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취임 초기 토건 시장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최근 행보는 토건 정책에 매달렸던 과거 서울시장들보다 오히려 더 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박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한 일이 뭐냐’는 질문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그 질문으로 당내 경선이나 본선에서 호되게 당했다. 박 시장은 나름대로 한 일이 꽤 있다고 항변을 했지만 공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다”라며 “(전임 서울시장인) 오세훈, 이명박 하면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청계천 하고 바로 떠오르는데 박원순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당 내에서도 박 시장이 운이 좋아 3선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대선 때도 (한 일이 뭐냐는) 똑같은 질문이 나올 거 아닌가. 대선 전에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역대 최초 3선 서울시장이다. 이후 대선행은 정해진 수순이다. 현행법상 연임 제한이 있어 4선 도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의 여권 인사는 “서울시장 3선 한 사람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하겠나,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겠나. 대선 외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한 전직 서울시의회 의원은 “박 시장이 오래 전부터 대권 프로젝트를 가동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미 지난 대선 때 출마도 하지 않았느냐”면서 “다만 지난 대선 때는 경선에서 탈락해도 서울시장에 재도전하면 그만이었지만 이번엔 더 이상 정치적으로 물러날 곳이 없다. 그래서 더 조급해하는 거 같다”고 했다.
대선까진 시간이 꽤 남았지만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대권조급증의 한 원인이다. 박 시장이 올해 안에 성과를 내야만 내년 총선에서 박원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후광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내에 박원순 사람을 많이 진입시켜야 당내 대선 경선에서 유리해진다.
대권조급증은 돌출행동으로 나타났다. 광화문 광장 재조성안을 놓고 같은 당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설전까지 벌였다. 서울시가 공개한 광화문 광장 재조성안에 따르면 서울정부청사 일부를 옮겨야 한다. 정부청사를 관리하는 행안부와 협의가 필요했지만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광화문 설계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박 시장도 즉각 대응했다. 박 시장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냐”고 했다.
양측의 입장을 직접 들어봤다. 박 시장 측은 “광화문 광장 재조성안을 놓고 행안부와 여러 차례 협의를 했다. 갑자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행안부 측은 “협의는 무슨 협의냐. 통보만 받았다”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내에서도 광화문 광장 재조성안은 대권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소속 고병국 서울시의회 의원은 “광화문 광장 재조성안은 현실적으로 빨라야 2023년 이후에나 완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서둘러서는 안 되고 순리에 맞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9일까지다. 대선은 전임 임기 60일 전에 치르게 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초가 된다. 박 시장이 대선에서 광화문 광장 재조성 효과를 보려면 2021년까지는 완공이 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의원은 “얼마 전에 서울시에서 청년정부라는 500억 원짜리 사업을 추진했었다. 관련 자료를 요청했더니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가 반발이 있으면 철회하는 일이 너무 잦다. 박 시장이 너무 무리하게 추진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서울시의회 민주당 내에서도 박원순 지지하는 그룹과 지지하지 않는 그룹 간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 서울시의회 안에서도 박 시장이 대권조급증에 걸렸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고 했다.
박 시장이 내놓은 정책이 성급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소상공인 카드결제 수수료를 줄여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제로페이는 가입률이 저조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급해진 서울시는 가맹점 확대를 위해 공무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박 시장은 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 운행 정책을 폈으나 지난해 세 차례 시행한 결과 효과가 거의 없어 중단됐다.
2019년 서울시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것도 대권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서울시 복지예산은 11조 1000억 원으로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겼다. 박 시장 취임 때 복지예산이 4조 원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당 한 당직자는 “박 시장이 대권을 겨냥해 존재감을 키우려고 좌충우돌하는 거 같다. 조급하다보니 설익은 정책을 내놔서 스스로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갇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대권조급증이란 주장은 일종의 프레임이라고 본다. 현재까지 발표된 것들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게 아니다. 국책사업으로 중앙정부와 역할을 나눠서 진행했던 사업도 있다. 광화문 광장 재조성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다”면서 “박 시장은 이미 임기 중 여러 성과들을 냈기 때문에 잘 마무리해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성과를 급하게 내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