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뛰어서라도 갚고 싶다”…피해자들은 “고소당하니 하는 말” 분통
그는 “아르바이트나 육체노동을 3~4개 뛰어서라도 모두 갚고 싶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 말에 피해자들은 “만약 진정으로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최소한 돈을 다 날린 시점에 행동에 옮겼어야 한다. 1년 동안 시간만 끌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구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고소 당하니 하는 말 아니겠냐”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1월 21일 일요신문 취재진을 만난 박철상 씨. 지난 1월 30일 박 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빚이 도대체 얼마인가.
“반환한 돈 말고 20억 원 정도 된다. 약속한 50%, 30% 이자까진 아니더라도 협의를 해서 주기로 한 돈을 계산하면 30억 원에 육박한다.”
―경북대학교를 13년 다녔다. 왜 그렇게 오래 다녔나.
“2004년 입학해서 2017년 1학기까지 다녔다. 4학년 1학기부터 졸업을 하지 않고 적을 두고 있었다. 중간에 행정고시 공부도 했고, 유학을 가려고 했었다. 독일로 철학 공부를 하러 가려고 했지만 2013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을 보고 장학 기금을 만들면서 일이 꼬이게 됐다.”
―세간에서는 ‘경북대 커넥션’을 유지하기 위해 적을 놓지 않았다는 추측도 있다.
“졸업한다고 해서 커넥션이 끊기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에 갈 수도 있고 나이도 석사, 박사로 넘어갈 나이기도 하다.”
―경북대학교 수석 입학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다. 드릴 말씀이 없다.”
―어떻게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까워서 시작하게 됐다. 2013년 학교에 1500만 원 장학금을 낸 게 시작이다. 그러다 일이 점점 커졌다. 약속한 약정만 채우려고 했는데 도와달라는 곳이 많았다. 장학사업에 매진하다보니 주식은 거의 하지 못했다.”
―처음 3억은 어떻게 받았나.
“욕심이었다. 경북대 친분 있는 교수가 ‘경북대 A 선배가 투자로 실패해서 어려운 상황인데 박 군이 투자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도움을 주라’고 해서 처음에는 부담이어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2013년 장학기금을 주다보니 돈이 필요했고 투자 수익금 일부를 받고, 장학기금에 보탤 마음도 있었다.”
―주식 거래를 한 건 맞나.
“2015년 주식 거래를 해서 수익을 크게 봤다.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장학 사업에 뛰어든 이후에는 주식 거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언제든 주식 시장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박 씨는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계좌 수익률 표를 제시했다. 다만 박 씨는 이 기간 이전이나 이후 계좌 수익률은 공개하지 않았다.
―매주 월화수는 경북대에서 수업을 목금토는 홍콩 펀드에서 일한다고 했지만 출입국 기록에 출국한 흔적조차 없었다. 처음 기사는 어떻게 나왔나.
“2013년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기사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후배들 자신감을 심어 달라’고 해 보도자료만 나오기로 했고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기사는 대부분 보도자료를 그대로 썼는데 한 기자가 학교 풍문까지 넣어서 기사를 쓰면서 ‘400억 주식 부자’ 등의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기사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기사 삭제는 어려워서 3분의 2토막 삭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주식카페 등 커뮤니티로 이미 많이 퍼져버렸다. 그때부터 꼬여버렸다. 결과적으로는 그 와전된 이야기를 활용한 건 사실이다.”
―2017년 8월 신준경 씨, 최우혁 씨, 닉네임 ‘남산주성’ 등이 저격을 해 실체가 밝혀졌다. 담합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신준경 씨 등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신 씨가 페이스북에 저격을 해서 대응을 안하려고 했다. 400억 원 자산가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장학 기금을 만들어 놓고 빌린 돈으로 주식 시장으로 돌아가면 이자 이상은 충분히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따르는 후배들이 신 씨를 ‘감옥에 간 적이 있다’는 등 명예훼손 발언을 이어갔다. 명예훼손으로 소송이라도 걸리면 앞길 막을까봐 마침 연락 온 언론사 기자에게 신 씨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연락처를 통해 신 씨와 통화를 했다. 세간에 알려진 녹취록은 그때 나온 통화다. 애원하듯이 말한 이유는 후배들 고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안 그랬다면 전화할 이유가 없었다. 그 이후 400억 원 논란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산송장이 되어서 언론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았다.
―신 씨와 협상을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고 협잡을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짤 이유도 없다. 400억 자산가 등 일정 정도만 폭로하고 끝내려고 했다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사과문 작성 등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틀어졌던 것 같다.”
―기부 액수를 엑셀로 정리해 보여주는 표가 당신을 홍보하는 일종의 ‘팸플릿’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17년 11월 폭로가 나오고 언론을 보고 제3자가 내가 의심스럽다며 진정을 해서 대구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검찰이 얼마나 기부했는지 물어보길래 그때 검찰에 제출한 자료다. 돈 출처를 물어봐서 빌린 내역과 계좌 수익률도 제출했다.”
―경찰에 자수하러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7년 폭로가 나오고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어 경찰서에 가서 말씀 드렸다. ‘이런 많은 분들에게 피해를 드렸다. 변제 능력도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현실적으로 책임은 지고 싶은데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법적으로라도 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피해자 중 교수들 투자금은 거의 다 변제했다. 교수들만 챙겨줬다는 시각도 있다.
“그럴 이유가 없다. 투자금을 갚을 시기가 돌아오는 대로 갚았을 뿐이다.”
―경북대 아무개 교수보다 A 씨 변제 기한이 더 먼저 돌아왔다.
“A 씨는 원금이 아닌 이자를 받길 원했고 그 교수는 원금까지 변제받길 원했다.”
이 부분은 A 씨와 박 씨 말이 엇갈린다. A 씨는 약 3억 원 중 절반 이상을 받지 못했다.
―돈을 빌려 놓고 왜 투자는 손을 놨나.
“어리석게도 빌린 돈은 수익률만 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기부로 많이 쓰긴 했지만 레버리지를 쓰면 나머지 돈으로도 수익금은 충분히 챙겨줄 수 있을 줄 알았다. 2017년 9월 장학기금을 제대로 갖춰 놓으면 정말 투자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8월 폭로가 터지면서 여기저기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미 기부로 빠져나간 돈이 있어 제대로 돈을 갚지 못했고 그대로 주저 앉게 됐다.”
박 씨는 레버리지, 주식 미수 거래 등으로 손실 없이 시장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2018년 투자자에게 9000만 원을 추가로 빌려 주식 시장으로 돌아갔지만 손실만 봤다.
“그때는 여유가 없었고 압박감이 너무 컸다. 앞서 말했던 진정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집중할 수도 없었다.”
―기부가 사기를 위한 홍보수단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이미 충분히 명성을 얻을 정도에서 기부를 그쳤을 것이다. 계속 기부한 것은 정말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기가 됐다. 어떻게 할 것인가.
“100만 원, 200만 원이라도 기다려주신다면 하루에 3개, 4개 아르바이트나 일을 해서라도 갚겠다. 기다려주신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고소를 한 상황이라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죗값을 받겠다.”
이 말에 한 투자자는 “만약 그럴 마음이 있다면 폭로가 됐던 2017년부터 시간이 있었지만 박 씨는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고소당하니까 하는 말이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본인의 행동이 결국은 사기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범위를 너무 넓혔다. 계획대로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다.”
―기부가 사기의 콘셉트라는 말에 동의하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사기꾼으로 불려도 마땅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구성모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