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라리가 첫 골 터뜨린 우레이 “적응할 시간 필요, 스페인 몇 년 동안 머무를 수 있을 거라 자신”
스페인에 상륙한 ‘대륙의 득점왕’ 우레이.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어쩌면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밭을 매고 있을지 모른다.” 오래도록 축구팬들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중국 축구의 가능성과 현실을 동시에 가늠할 수 있는 뼈 있는 말이기도 하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다. 중국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가 열릴 때마다 미국과 ‘종합 1위’를 두고 열띤 경쟁을 펼친다. 하지만 축구에서 만큼은 중국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세계 축구사에 남은 중국의 흔적은 ‘월드컵 1회 출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축구가 비인기 스포츠인 것도 아니다. 중국은 열광적인 축구 팬덤이 존재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 역시 자국 축구 발전에 엄청난 공력을 쏟고 있다.
2013년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중국 당국은 ‘축구 굴기 정책’을 추진하며 중국 축구의 질적 향상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 프로축구리그인 ‘슈퍼리그’의 규모는 팽창했다. 중국 프로축구단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축구 대표팀은 2016년 10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끈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선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축구의 발전은 더디기만 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축구 굴기 정책’이 7년 차에 돌입한 2019년 봄. 중국 축구에 희망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인재가 등장한 까닭이다. 세계 4대 리그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대륙의 스트라이커’, 우레이가 그 주인공이다.
# ‘마케팅용 vs 전력감’ 우레이 영입 목적 논쟁, 증명은 우레이 활약에 달렸다
우레이 경기를 보기위해 RCD 에스파뇰 홈 구장을 찾은 중국 축구팬. 에스파뇰은 우레이를 영입한 뒤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6년 상하이 상강에 입단한 1991년생 공격수 우레이는 꾸준히 성장했다. 그리고 2018시즌 우레이는 절정의 기량을 자랑했다. 페널티킥 없이 27골을 몰아치며 압도적인 차이로 슈퍼리그 득점왕 자리를 꿰찼다.
우레이가 득점왕에 등극한 건 중국 축구계의 빅뉴스다. 슈퍼리그 구단들이 영입한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달성한 성과인 까닭이다.
슈퍼리그 득점왕에 오른 우레이는 곧바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우레이는 ‘2019 AFC 아시안컵’을 마친 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RCD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200만 유로(한화 약 25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선 ‘에스파뇰이 우레이를 영입한 건 마케팅용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충분히 나올 만한 이야기다.
중국 축구의 시장성은 ‘매력 덩어리’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징성 있는 중국 선수를 영입하는 것만으로도 유럽 구단은 ‘억 단위’ 중국 축구팬을 선점할 기회를 가진다. 실력을 배제한 채 마케팅용으로 중국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구단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축구계 복수 관계자는 “우레이를 단순히 ‘마케팅용으로 영입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K리그 선수 출신 축구인 A 씨는 “우레이는 중국 슈퍼리그 득점왕 출신이다.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레이의 실력을 저평가해선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A 씨는 “슈퍼리그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선수 면면으로만 살펴보면 이미 아시아 최정상급 리그다. 그런 리그에서 중국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했다. K리그에서도 내국인 선수 득점왕이 나오는 경우가 적다. 그런데 우레이는 페널티킥 득점이 없었음에도 2위와의 격차가 6골이나 났다. 우레이는 충분히 유럽 리그에서 뛸 만한 경쟁력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결국, 영입 목적을 증명하는 건 우레이 본인의 몫이다. 이제 우레이는 ‘세계 4대 리그’로 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다시 입증해야 한다. 우레이의 어깨엔 ‘중국 축구의 자존심’까지 걸려 있는 셈이다.
#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상륙한 우레이 ‘슈퍼리그 득점왕’ 자존심 세울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무대를 옮긴 뒤 후보 선수로 전락한 ‘네덜란드 득점왕’ 빈센트 얀센. 사진=연합뉴스
축구선수가 다른 리그 이적을 결정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전 소속 리그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뒀더라도, 이적 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까닭이다. 단적인 예가 ‘네덜란드 득점왕’ 출신 빈센트 얀센이다.
빈센트 얀센은 2015-2016시즌 네덜란드 에레데비지 AZ 알크마르 소속으로 27골을 터뜨렸다. 에레데비지 득점왕은 얀센의 몫이었다. 자연히 얀센을 향한 러브콜이 속출했다. 영입전의 승자는 손흥민의 소속팀으로 익숙한 토트넘 핫스퍼였다. 토트넘은 무려 1700만 파운드(한화 약 250억 원)를 투자해 네덜란드 최고 스트라이커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긴 얀센은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얀센은 토트넘에 있는 2년 6개월 동안 36경기에 출전해 6골 4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네덜란드 득점왕’ 이름값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결국, 토트넘은 201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얀센의 이적을 추진할 전망이다. 2018-2019시즌 개막 당시 얀센은 토트넘으로부터 등 번호를 받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얀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리그 이동’은 선수에게 큰 도전이다. 그렇기에 ‘중국 슈퍼리그 득점왕’ 우레이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에 더욱 큰 관심이 쏠린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 우레이는 프리메라리가 데뷔 4경기 만에 첫 골을 수확했다. 중국인 최초의 프리메라리가 득점이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안착 중인 ‘대륙의 스트라이커’ 우레이. 사진=연합뉴스
3월 2일 에스파뇰과 레알 바야돌리드의 경기, 에스파뇰이 2대 1로 앞서던 후반 20분. 우레이는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팀 승리를 굳히는 쐐기골이었다. 중국 대륙은 우레이의 첫 골에 열광했다.
우레이의 소속팀 에스파뇰 역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레이 첫 골이 흥행 대박으로 이어진 까닭이었다. 스페인 언론 ‘풋볼 에스파냐’는 “이날 경기 중계 시청자 수는 무려 4000만 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프리메라리가 중위권 팀으로선 상상도 하지 못할 시청자 수였다.
우레이는 마수걸이 골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슈퍼리그 득점왕의 골 사냥 능력과 자신이 지닌 어마어마한 마케팅 가치를 동시에 증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첫 골을 터뜨린 뒤 우레이는 자신감 넘치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에스파뇰 팬들이 나를 ‘승리의 부적’이라 부른다. 기분이 좋다. 부상이 완쾌하지 않아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다. 새로운 리그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에 몇 년 동안 머물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무대 첫 골로 우레이의 미래를 속단하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우레이가 중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우레이에게 필요한 건 안정적인 활약이다.
‘대륙의 득점왕’이 스페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그간 성과가 미미했던 중국의 ‘축구 굴기 정책’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모를 일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