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도 못 갚는데 올해 만기 차입금 1조 664억 원…‘헐값 매각’ 가능성 커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산매각 대상에 신분당선 지분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분당선은 노선 계획부터 건설·운영까지 민간이 제안한 국내 최초의 철도사업으로 정부는 서울 강남역에서 분당 정자역을 잇는 본선 사업비에만 1조 6000억 원을 책정했다. 정부는 신분당선 소유권을 가져가면서도 2011년 개통 후 30년간 운영법인이 운영 수익을 가져가도록 했다. 두산건설은 신분당선 본선 사업 주간사로 참여해 운영사인 신분당선주식회사 최대주주가 됐다. 두산건설이 가진 신분당선주식회사 지분은 29.03%다.
신분당선은 당초 강남역과 정자역을 잇는 본선에 더해 정자~광교, 용산~강남을 잇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키로 했으나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적자를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2001년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서 “강남~정자, 용산~강남 구간이 함께 개통할 때 비용 대비 편익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냈지만, 용산에서 강남 구간 개통은 2015년이었던 당초 계획보다 7년 늦은 2022년으로 지연됐다.
경기도 수원시 광교(경기대)역에서 신분당선 연장선(광교~정자) 복선전철 차량이 시험운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분당선 운영 첫해 예상 수요의 30%에 그쳤던 일 평균 이용객은 2016년 정자~광교 구간 개통 이후 40% 넘게 올랐지만 여전히 예상 수요의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신분당선은 이용객 수가 예상 이용객의 절반을 넘어야 정부가 최소운임보장(MRG)을 해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신분당선주식회사는 대신 최대주주 두산건설에서 대여금 형태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업계에선 두산건설이 신분당선 지분을 매각한다 해도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이 계획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분당선이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두산건설의 재무구조 개선이 급한 탓에 오히려 ‘헐값 매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두산건설은 현재 신분당선 지분 매각을 위한 실무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건설이 2017년 “MRG 지급 조건 달성이 시급하다”면서 “신분당선 운영이 안정화가 된 이후 지분 매각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실제 두산건설은 2013년 ‘일산위브더제니스’ 미분양 사태의 여파로 자금난에 빠진 이후 두산중공업으로부터 받은 폐열회수보일러(HRSG)와 같은 알짜 사업까지 매각하면서도 신분당선 지분 매각만큼은 미뤄뒀다. 적자 상태를 이유로 헐값 매각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
전문가들은 현재 두산건설 재무구조가 헐값 매각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동안 두산건설 재무악화를 막아온 모기업 두산중공업마저 여력을 잃어가면서 부실이 그룹 전체로 번지고 있다. 안지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두산건설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한편,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 지분에서 거액의 손상차손을 인식함에 따라 그룹 합산 기준 실적이 저하됐다”면서 “두산건설의 차입금 단기상환부담이 높은 상태에서 유동성 대응능력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지주사인 ㈜두산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두산건설은 지난해 55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본 데 따라 단기차입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72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했다. 이자 갚기에 급급한 두산건설이 미처 차입금 상환을 대비하지 못했던 탓이다. 전체 7200억 원 중 6000억 원은 두산중공업이 책임질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은 우선 두산건설에 3000억 원을 빌려주고 두산건설이 추진할 42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3000억 원을 출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두산중공업 역시 보통주 5400억 원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두산도 두산중공업 지분율만큼 출자에 나설 전망이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유상증자를 하면 ㈜두산은 지분율 희석이 우려돼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결국 두산건설 부실이 사실상 그룹 내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는 두산중공업으로, 다시 지주사 ㈜두산으로 옮겨가고 있어 두산건설 입장에선 일단 유동성 확보를 위한 매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두산건설이 신분당선주식회사에 대해 380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설정해 손실 처리한 만큼 지분 매각으로 800억 원가량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재무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재무구조 악화를 개선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여러 가지 차원의 논의 및 매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현재까지 신분당선 지분 매각에 대해 특별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사촌경영’이 두산건설이란 폭탄 돌렸다 두산그룹은 오너 일가 4세들이 경영권을 돌려 맡는 공동경영, 이른바 ‘사촌경영’ 체제다. 일각에선 누군가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 없는 데다 책임 소지를 따지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두산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두산그룹 오너 4세로는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과 차남 박석원 두산 정보통신BU 부사장,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 박형원 두산밥캣 부사장, 삼남 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두산 전무,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있다. 두산그룹은 오너 3세들이 그랬듯, 이들 4세들도 돌아가며 회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선 두산건설을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가족경영 체제인 두산그룹에서 회장이 독단적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며 “그룹 경영의 기회가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큰 만큼 누군가 잘못을 지적해 척을 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