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 ‘레이’ 등 의료기기 업체 잇단 매각…실적 부진 삼성메디슨 매각 가능성도 주목
삼성그룹이 중장기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해 생각이 잠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삼성 차명 비자금 및 편법승계 혐의로 처벌을 받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2010년 3월, 이 회장은 ‘비전 2020’을 통해 삼성그룹 5대 미래 먹거리로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정해 발표했다. 8년이 지난 지난해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중장기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래 먹거리로 ‘인공지능(AI)·5G·바이오·전장부품’ 4가지를 꼽았다. 2020년까지 이 4개 신사업에 25조 원을 투자, 삼성의 대표사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발표한 5대 미래사업에서 전지사업을 빼고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했으며 의료기기 분야도 제외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보유하고 있던 미국 인체용 체외진단기 업체 넥서스의 지분 100%를 매각했다. 인수 7년 만이다. 이어 체외진단의료기기(IVD) 생산사업 매각과 관련한 직원설명회를 개최했다. 인수 회사로 일본의 니프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앞서 2015년에는 이미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 전문제조업체 레이를 매각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선정해 야심차게 진행하던 의료기기사업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크게 축소하자 일각에서는 삼성이 관련 사업을 아예 접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선택과 집중에 근거해 효율성이 낮은 분야를 정리하는 것으로서 의료기기사업에 계속 집중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전동수 대표 및 재무 CFO 등 내부적으로 최고 전문가들이 포진했다. 일부 분야에 대한 매각이 의료기기 사업부 전체에 대한 우려로 확대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그룹에서 의료기기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영상진단기기에 주력하는 삼성전자 내 의료기기사업부와 초음파 진단기기에 집중하는 삼성메디슨이다. 삼성메디슨은 삼성전자가 2012년 “10년 후 삼성메디슨을 연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며 3313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삼성 인수 전인 2011년 2382억 원 매출을 기록했던 메디슨은 이듬해 2770억 원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2013년 2689억 원, 2014년 2847억 원, 2015년 2683억 원, 2016년 2599억 원, 2017년 3026억 원으로 성장이 정체돼 있다. 삼성이 말한 ‘10년 후’가 불과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매출 10조 원 달성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영업이익은 더 초라하다. 인수 직후인 2012년 241억 원을 기록한 후 2013년 28억 원, 2014년 38억 원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269억 원과 25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7년 영업이익 65억 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다시 지난해 3분기까지 131억 원 손실을 봤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평소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온 이재용 부회장이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며 “다른 의료기기 업체들을 다 매각하는 상황에서 삼성메디슨 홀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사업 전체 철수에 무게감이 더 실린다”고 평가했다.
의료기기사업을 쉽게 접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의료기기 사업마저 접으면, 태양전지·자동차전지·LED에 이어 5대 신수종 사업 대부분 실패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 되는데다 성과가 좋던 바이오·제약마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이면서 혼란스러워졌다”며 “비록 이건희 회장의 결정이었다지만 수십조 원을 투입하고도 사업을 키우지 못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삼성바이오 사법부·금융당국의 편애 속 검찰 수사 속도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이 2010년 정한 5대 신수종 사업 중 사실상 유일하게 성장해온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마저 분식회계 논란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설립된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6년 코스피에 상장, 현재 국내 증시 시가총액 8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상장 과정에서 4조 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발목이 잡혔다. 실제 주식거래가 중지되고 한국거래소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받으며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대표이사 해임, 과징금 부과 등 처분도 이어졌다. 삼성바이오 측은 이에 반발, 행정소송과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했다. 금융당국과 사법부는 삼성바이오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거래소 상장폐지기업심사위원회는 삼성바이오 상장을 유지해주고, 주식거래를 재개했다.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재판부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제재 효력을 정지했다. 이외 여러 분쟁에서도 삼성바이오가 대부분 승리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증선위가 지난해 11월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지난해 12월 인천 연수구의 삼성바이오 본사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14일과 15일에는 삼성물산 사무실과 삼성SDS 과천데이터센터, 한국거래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 회계처리가 2015년 9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비율 논란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합병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등 ‘윗선’의 지시나 관여 정황이 있는지 파악 중이다. 한국거래소는 2016년 삼성바이오 상장에 앞서 유가증권 상장요건을 완화해 당시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던 삼성바이오의 상장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할 때는 졸속으로 상장유지 결정을 내렸다는 혐의도 받는다. 김경률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은 “그동안 법원에서 삼성바이오에 유리한 결정을 많이 내린 것이 사실이지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 아래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