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율 고복지, 육아시간 아빠>엄마, SNS 자랑질 질색…그러나 “개인의 행복과 꼭 일치하는 건 아냐”
올해도 여전히 북유럽의 여러 나라가 행복지수 상위권을 차지했다. 사진은 노르웨이 로포텐에서 휴가를 즐기는 한 가족. 연합뉴스
이번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상위 10개국은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네덜란드-스위스-스웨덴-뉴질랜드-캐나다-오스트리아 등이었다. 반면 하위 10개국은 남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아프가니스탄-탄자니아-르완다-예멘-말라위-시리아-보츠와나-아이티 순이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1위는 대만(25위)이었으며, 싱가포르(34위), 태국(25위)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세 계단 상승한 54위였다. 일본은 58위, 중국은 93위였으며, 미국은 19위였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 명예교수인 존 헬리웰은 “상위 10위권 국가들은 행복에 대한 정서적 수치뿐만 아니라 여섯 가지 변수 모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조사 결과가 그 나라에서 태어난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이민자들 역시 세계에서 가장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헬리웰은 “이는 핀란드 사람들의 DNA 때문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런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 문제다”라고 말했다.
올해 보고서의 주제는 지역공동체(지역사회)와 친분 관계였다. 요컨대 운동이나 자원봉사와 같은 대면 활동이 행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뤄졌다. 이에 반해 온라인 상에서 쌓은 비대면 친분 관계는 오히려 행복감을 저해하는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청소년(13~18세)들이 게임, 소셜 미디어, 문자 등 온라인 활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꾸준히 증가해왔지만, 행복도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2017년 이후 다섯 단계 하락했는데, 이는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헬리웰은 미국인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약물 남용에서 도박,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나타는 ‘중독’ 증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SNS에 접속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세 배나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이 이번 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단순히 경제 수준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며, 복합적인 원인이 두루 섞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렇다고 경제적 요소를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북유럽 상위 5개국의 경우, 1인당 GDP만 놓고 봤을 때 모두 상위 20위 안에 든다. 하지만 헬리웰은 “높은 경제성장이 반드시 행복감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보다는 사람들과의 친분 관계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위권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하면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 정부에 대한 신뢰, 자유, 서로에 대한 관대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관련, 2017년 행복보고서의 부편집자 중 한 명인 얀 에마누엘 드 네브 박사는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지원에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상위권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동시에 1인당 GDP도 높다”고 말했다.
사회적 안전망의 경우, 높은 세율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1인당 GDP와 연관이 있다. 덴마크의 경우를 보면 고소득자의 경우 소득의 51.5%를 세금으로 납부할 정도로 세율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낸 세금은 무상 대학 교육, 무상 의료지원 서비스, 장기 출산 휴가, 실업 수당과 같은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재투자된다. 이에 대해 덴마크 출신인 ‘행복연구소’의 마이크 위킹 CEO는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질을 사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핀란드 역시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무주택자들을 위한 정책, 고품질 교육 시스템 등 정부 정책이 그렇다. 인구는 5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아빠들이 엄마들보다 학령기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다. ‘모든 것에 대한 북유럽 이론’의 저자인 아누 파르타넨은 “핀란드 사회는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지원은 받지만, 여전히 삶에 대한 통제권은 스스로 쥐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핀란드 사람들은 굳이 엄청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핀란드 정부는 국민들이 소중하고 평범한 삶을 살도록 돕는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핀란드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프로그램(PISA) 점수는 평균 523점이며, 이는 OECD 국가들의 평균 점수인 486점보다 높은 것이다. 또한 핀란드 인구의 88%가 고등교육을 받고 있으며, 69%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있다. 이에 비해 OECD 국가의 평균은 각각 74%와 67%다.
한편, 어려울 때 얼마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가 하는 점도 행복도 조사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헬리웰은 “시민들 간에 유대감이 발달한 사회의 특징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복구하는 능력과 불행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테러 사건이 발생한 뉴질랜드의 예를 든 헬리웰은 “2011년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그랬고, 이번 테러 발생 후에도 뉴질랜드 사람들은 똘똘 뭉쳐서 서로를 도우면서 즉시 (지진 후 피해를) 복구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친분 관계, 즉 사회적 교류가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헬리웰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고 말했다. 핀란드 사회가 바로 그렇다. 핀란드 사람들은 유독 지역사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사람들의 95%는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지역 사회를 활성화하는 것은 최근 핀란드에서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트렌드다. 가령 도서관 방문객 수 증가가 그렇다. 반타 시의 경우, 도서관 방문객의 수가 지난해 대비 14% 증가했으며, 이는 시민들이 다른 곳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핀란드의 높은 행복지수는 사회적 교류, 겸손한 태도, 안정적 일자리 등과 관련이 있다. 또한 소박하고 여유로운 일상에서 오는 북유럽 특유의 행복도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강아지와 산책하는 핀란드 헬싱키의 여성. 연합뉴스
높은 행복지수는 핀란드 사람들의 겸손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핀란드의 철학자인 프랑크 마르텔라는 말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거나 떠벌리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SNS를 통해 그러는 것을 꺼려 한다. 이에 대해 마르텔라는 “남과의 비교가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깨끗한 환경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핀란드는 이 부문에서 OECD 국가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OECD 홈페이지에는 “지역 사회의 환경의 질은 우리의 건강과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기 오염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환경 요소 중 하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빼놓을 수 없다. 드 네브 박사는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불행을 느낀다. 행복보고서의 상위권에 진입하려면 북유럽 국가처럼 좀 더 포괄적인 실업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폭넓은 실업 보험과 자녀 양육비 지원 프로그램 등이 그렇다.
워라밸도 핀란드 사람들의 삶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핀란드 국민들은 하루 평균 15.2시간을 식사, 수면, 여가, 친분 교류 시간을 포함한 개인적인 활동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한 북유럽 사람들을 논할 때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휘게’다. ‘휘게’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나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 안락한 환경 등에서 오는 북유럽 특유의 행복을 의미한다. 또한 북유럽의 길고 긴 겨울 저녁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소소한 사치를 통해 자신을 돌보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북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스로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모두가 이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거의 완벽한 사람들: 스칸디나비아 유토피아의 신화’의 저자인 마이클 부스는 “나는 지난 몇 년간 덴마크 사람들을 상대로 정말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조사 결과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가 낮은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부스는 “덴마크 사람들은 보통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기대감이 낮은 편이다. 기대치가 낮으니 쉽게 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행복지수와 개인의 행복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나라는 행복해도 개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상위권 나라들의 자살률이 높고,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코펜하겐에 있는 ‘행복연구소’와 ‘북유럽각료회의’가 2012~2016년까지 5년 동안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12.3%가 삶이 힘들거나 고통스럽다고 응답했으며, 청년들의 경우에는 13.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수치는 질병과 같은 문제에 더 영향을 받는 80대 이상의 고령층에서 더 높았으며, 이는 육체 건강과 정신 건강 모두가 행복 수치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연구진들은 정신 건강이야말로 주관적인 행복에 악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더 외로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들은 “이런 정신질환과 외로움은 북유럽 국가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고 말했다.
가령 덴마크의 경우, 16~24세의 18.3%가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노르웨이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청년들 수가 40%나 증가했다. 핀란드 역시 같은 연령대의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딱 잘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 행복지수와 개인의 행복이 꼭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매년 보고되는 이 행복보고서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다분히 주관적이며,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을 과연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가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헬리웰은 행복을 측정하는 것은 행복하다는 ‘감정’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질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삶의 질에 기여하는 요인은 건강한 기대수명과 높은 1인당 GDP다”라고 말하면서 “이밖에도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을 만큼 관대한가,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하는 점도 포함된다. 북유럽 국가의 사회 구조는 비교적 평등하며, 불평등이 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높은 점수를 받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행복보고서는 정부와 개인이 더 큰 행복을 염두에 둔 정책과 삶을 선택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핀란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한 여름 하얀 밤+긴 겨울…”대체로 우울“ 핀란드 사람들은 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기도 한다. ‘높은 자살률, 1년 중 200일이나 되는 겨울, 낮은 출산율….’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3명이고,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며, 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1.6명으로 세계 최저인 나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핀란드의 이면이다. 때문에 핀란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번 보고서 결과를 듣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농담 아니냐며 비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행복보고서가 핀란드를 사실과 거리가 먼 유토피아로 그렸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핀란드의 의료 및 교육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만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많으며, 아이를 낳기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이긴 하지만, 출산율은 놀라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민자 행복도 조사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럽연합국 가운데 이민자를 가장 적게 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에 핀란드 사람들은 스스로 ‘핀란드라는 나라는 여러 면에서 모순에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핀란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핀란드 사람들이 사실은 대체적으로 우울하다고도 말했다. 핀란드 사람들 가운데 40만 명 이상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여기에는 핀란드 특유의 긴 겨울과 추운 날씨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핀란드 사람들의 금욕적이고 비관적이면서 내성적인 태도는 대부분 성격보다는 환경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령 춥고 어두운 핀란드의 겨울은 ‘겨울 우울증’을 유발하는데, 이는 높은 자살률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패턴을 교란하는 여름철의 백야 현상 역시 그렇다. 특히 11월부터 3월까지 핀란드의 날씨는 해가 떠있어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우중충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핀란드 시민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금세 우울해질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다만 핀란드의 자살률은 1980년대 말 정점을 찍은 이후 급격히 하락해왔다. 유럽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는 독일과 프랑스의 자살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8년 ‘유로스타트’의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는 현재 인구 10만 명당 연 13명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평균인 11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치다(세계 23위). 핀란드의 자살률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실시된 대대적인 자살 예방 캠페인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체계적인 심리치료 프로그램 도입과 함께 항우울증제 구입 및 복용의 간편화 등이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