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화장실 칸에 직접 ‘고장’ 종이 붙여…연이은 사고에 여대들 외부인 출입 통제
# 대낮에 벌어진 마약범의 여대 침입
3월 18일 오후 12시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숙명여자대학교 학생회관에 50대 남성 김 아무개 씨가 침입했다. 그는 곧장 4층으로 올라갔다. 남자 화장실이 없는 층이었다. 김 씨는 자신이 들어간 화장실 칸에 직접 ‘고장’이라는 종이를 붙였다. 미화 관리자가 평소 고장난 변기에만 붙이던 안내판이었다.
수상한 남성의 침입은 한 학생에 의해 발각됐다.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고장’ 칸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까닭이다. 화장실을 찾은 재학생 A 씨가 ‘안에 누구 있느냐’고 문을 두드렸다. 답은 없었다. 그런데 문 아래 틈 사이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이상하다고 느낀 A 씨는 바로 옆 칸으로 이동해 바닥과 화장실 문 틈 사이를 들여다봤다. 허공에 떠 있는 발끝이 살짝 보였다. 숨으려는 듯한 자세였다.
움직이는 발끝을 본 A 씨는 불법촬영을 의심했다. 그는 급히 주변 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 씨가 사람들을 모아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찰나 한 중년 남성이 여자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김 씨였다. A 씨가 막아서자 김 씨가 웃으며 “화장실이 급해서 잠깐 들어간 것이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대치는 이내 몸싸움으로 번졌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두 사람은 4층 화장실 부근에서 약 10초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A 씨가 도주하려는 김 씨를 붙잡으면서 둘은 한 차례 복도에 넘어졌다. 당황한 김 씨는 겉옷과 가방 등의 소지품을 모두 버리고 도망쳤다. 추격전은 1층까지 이어졌으나 김 씨는 도주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 학생은 “친구와 학생회관 1층에 있었는데 위층에서 ‘빨리 신고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저 사람 잡으라’는 외침이 들렸다. 어떤 아저씨가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와 도망치더라. 학생회관에 있던 학생들 모두 혼비백산이었다”고 말했다. 경비원은 학생회관에서 멀지 않은 정문 초소에 있었지만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김 씨가 도주하고 난 뒤였다. 경비원은 “이상한 사람이 화장실에 있다고 해서 가보니 변기 옆에 충전기가 꽂혀있었고 바닥에는 운동화 끈이 떨어져 있었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다 두고 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성이 사용한 ‘고장’ 안내판은 여성용품 수거함에 들어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숙명여대 캠퍼스 전경. 일요신문DB
김 씨가 미처 챙기지 못한 가방 안에서는 휴대전화와 통장, 임시신분증 등이 발견됐다. 문제는 김 씨의 겉옷에서 필로폰으로 추정되는 물질 1g과 빈 주사기 발견됐다는 점이다. 경찰이 임시 신분증과 CCTV 등을 확인한 결과 김 씨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상해 혐의 등으로 지명수배된 인물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김 씨의 신원은 모두 확인했다. 마약 수배자가 맞다. 그러나 신원을 확보한다고 해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다른 부서와 협력해서 수사 중에 있다. 현장에서 불법촬영 기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학교 총무구매팀은 CCTV 12대 추가 설치와 안심존 운영 등 보안 강화에 힘쓰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호소했다. 평소 학생회관에 자주 머무른다는 한 학생은 “그 아저씨(김 씨)가 학생에게 마약을 투여했으면 어쩔 뻔했나. 일부러 학생들이 많은 학생회관을 노린 것 같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약 강간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말했다.
# 끊이지 않는 외부인 침입에 몸살 앓는 여대
외부인 침입으로 곤욕을 겪은 학교는 숙명여대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동덕여대 대학원 건물 3층에서 나체로 음란행위를 하던 박 아무개 씨(27)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음란행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SNS에 게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박 씨는 경찰조사 당시 “여대라는 특성 때문에 성적 욕구가 생긴다”고 진술했다. 같은 해 이화여대에서는 여장남자가 무용과 주변을 배회하다 학생들에게 발각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여대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가마 할아범 주의보’가 울렸다. 의문의 남성이 강의실에 몰래 들어와 네 발로 기어 다니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검정마스크에 빼빼 마른 모습이 흡사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 속 가마 할아범을 닮아 붙여진 별명이었다. 가마 할아범은 이후에도 수차례 자전거를 타고 호루라기를 부는 등 교내를 활보하다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외부인에 의한 사건이 끊이지 않자 여대는 빗장을 더욱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다. 동덕여대는 이른바 ‘알몸남 사건’ 이후 외부인 출입을 전면 금지했다. 학생증 없이는 교내 어떤 건물도 출입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역시 일부 건물 외부인 출입금지 등의 통제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출입통제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덕여대는 외부인 완전 차단을 선언했지만 최근 관련 규정을 두고 개정을 고민하고 있다. 일상생활이 불편하다는 민원 신고가 잦은 탓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증을 발급받지 못한 19학번 새내기와 외부 강사를 중심으로 출입이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총학생회와 논의를 통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여성학 전문가들은 “과도한 폐쇄성은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무작정 남성의 출입을 규제하는 것보다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