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초보 20대 사원 모집, 전문가 사칭·바람잡이 활용·수익률 조작법 교육…피해자 속출
최근 한 유사투자자문사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가 등장했다. 유사투자자문사 A 사의 전 직원인 그는 A 사에서 수익률 조작과 전문가 사칭 등의 불건전 영업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름만 ‘전문가’인 이들이 유료 가입 회원들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조작된 자료가 사용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 조작된 홍보자료와 바람잡이 판치는 카톡방
‘일요신문’이 입수한 A 사 직원의 카톡 대화방 내용에 따르면 홍보자료 조작은 공공연히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서로 글자나 숫자를 조작하는 방법에 대해 묻고 답했다.
카톡 대화방 속 B 씨는 동료직원 C 씨에게 “100만 원을 1000만 원으로 바꾸고 싶다”며 글자 크기를 줄이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법을 물어봤다. 또 다른 날, C 씨가 B 씨에게 사진 자료를 보내며 “티나나. 티 안나제?”라고 묻자 B 씨가 “티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C 씨는 B 씨의 조언대로 사진을 수정했다. 이에 B 씨는 “이건 덜하긴 한데, 꼼꼼한 놈이 보면 아래위로 글자 여백 차이가 보여서”라며 “사람들이 이것까지 따지고 들려나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채팅방의 운영자였다.
A 사 직원들이 나눈 카톡 내용.
숙제라는 이름으로 신입사원들에게 채팅방 운영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내용은 각자 맡은 채팅방 운영 방식을 지침대로 바꾸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바람잡이를 활용해라’ ‘회원의 이름을 불러서 호응을 유도해라’ ‘콘셉트를 잡아 행동해라’ 등의 상세한 지시가 내려졌다. ‘개인 채팅방에서는 회원의 투자방식을 혼내라’는 문항도 있었다. 현행법상 유사투자자문사의 일대일 투자자문 행위는 불법이다.
신입사원을 뽑기 위한 면접은 매일같이 이뤄졌다. A 사의 면접 시간은 금요일 하루를 제외한 매일 16시부터 18시까지로 면접 대상은 대개 주식 투자 경험이 적은 20대 초중반으로 알려졌다. 열정만 있다면 최소한의 자격 조건도 없다고 했다. 이렇게 뽑힌 신입사원은 한 달 동안의 사내 자체 교육을 받은 뒤 실제 채팅방 운영자로 투입되곤 했다. 실적이 좋으면 ‘전문가’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전문가 자격증을 소지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름만 ‘전문가’인 채팅방 운영자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받는 셈이다.
이에 대해 A 사는 일부 직원의 일탈 행위로 선을 그었다. A 사 법무팀 관계자와 변호사는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회사 차원의 조직적 조작 행위는 없었다. 지난해 일부 임원급 직원의 일탈 행위가 발견돼 조치를 취했다. 해당 카톡 내용은 그때 발생한 일인 것 같다. 현재는 소속 직원의 과도한 영업행위가 적발되면 내부 규정에 따라 교육하고 있다”고 답했다.
# 사업자등록번호 1개로 30개 가까운 업체 거느리지만 제재 방법 없다는 금감원
문제는 A 사가 운영하는 회사가 1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A 사 산하의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총 29개로 각 업체의 상호명과 사무실 위치가 모두 달랐지만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개의 사업자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행법상 동일한 사업자에게 2곳 이상의 사업장이 있는 경우 사업자단위과세 신고 및 승인을 받아야 한다.
A 사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 씨는 “지난해 8월 ㅇㅇ스탁, △△스탁, XX인베스트먼드 등 투자자문업체 3곳에 가입했다. 그런데 세 업체의 리딩(투자정보 제시 및 추천) 스타일이나 추천 종목이 유사했다. 주로 급등 주식이거나 시가총액이 낮은 테마주였다. 한 업체가 추천한 종목이 무너지면 다른 두 곳이 추천한 종목도 사정이 안 좋아지곤 했다. 환불을 받기 위해 여러 번 전화하는 과정에서 세 업체가 한 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모인 피해자만 300여 명.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은 약 9억 원이다. 이들은 A 사가 민원 신고가 쌓인 업장은 폐쇄하고 새로운 업장을 개업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 사가 소유한 29개의 유사투자자문업체 가운데 실제 영업 행위를 한 업체는 11개로 이 가운데 4개는 최근 문을 닫았다. 피해자들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 업체였다. A 사는 현재 18개의 업체를 추가로 개업할 예정이다.
A 사 관계자는 ”본사 홈페이지에 산하 업체들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여러 개의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동일한 사업자등록번호로 다수의 업장을 중복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여러 투자자문업체를 인수하면서 생긴 일이다. 여러 개의 업체를 운영하다보니 수익이 나지 않는 업체에 한해서 폐업 처리를 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해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비단 A 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사 피해 민원은 4887건. 이는 2012년 대비 26배 늘어난 것으로 유사투자자문사로부터 피해 민원 신고는 매년 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단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유사투자자문업을 영업할 수 있는 까닭이다
금융 당국은 마땅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투자자문 감독팀장은 “유사투자자문업 신고 서식에 정보업체명과 상호명을 다르게 기재할 수 있게 돼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유사투자자문업은 사업 특성상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은 회사가 많다. 개별 투자자도 이를 인식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현행 자본시장법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 오는 7월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된다. 현재 논의되는 문제들을 토대로 정보업체명과 상호명을 단일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개정 시행령은 기존 업체에는 소급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업체를 운영하는 기존 회사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