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법적 조치도 불사”…외풍에도 선수들은 결집
선거운동 관련 논란이 일자 자유한국당은 홈페이지에서 경기장 내부에서 찍힌 사진은 삭제한 상태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일요신문] 매주 화요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이슈를 다루는 주간브리핑을 연다. 적게는 5명 많아도 10명 내외의 기자들이 이에 참석한다. 브리핑이 예정된 2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은 이례적으로 많은 미디어 관계자가 몰렸다. 축구회관 건물 양 옆으로 각 언론사 로고가 박힌 차들이 50m 이상 늘어설 정도였다. ‘황교안 선거유세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경남 FC의 징계를 논하기 위한 상벌위원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과 대구 FC K리그1 경기를 앞두고 경남 구단은 대구를 ‘ACL 동지’라 부르며 두 구단이 ‘꽃피는 봄’을 맞았다고 홍보했다. 이들은 지난해 각각 리그 2위(경남)와 FA컵 우승(대구)을 달성하며 이들은 구단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친 이들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경기 내용을 선보였다. 대구 공격수 세징야는 해외에 내놔도 손색없는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만들었고 경남은 김종부 감독이 자랑하는 무기 측면 크로스로 동점골을 뽑았다. 경남 베테랑 공격수 배기종은 동점골에 이어 경기 종료 직전 역전골까지 뽑아내며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소명을 위해 상벌위가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을 찾은 조기호 경남 FC 대표와 구단 관계자들. 최준필 기자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선거유세 등은 과거부터 지속되던 일이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장 내에서의 정치적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도는 우리 땅’피켓을 들었던 박종우가 징계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정관에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조항이 존재한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선거운동 관련 지침도 신설됐다. 이에 과거와 같이 경기장 내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후보 약력 등이 담긴 홍보자료를 돌리는 광경을 목격하기 힘들어졌다. 경기장 내로 진입하면 구단 유니폼을 입고 관전에 임하거나 경기가 시작해도 장외 유세만이 지속됐다.
하지만 창원축구센터에서 벌어진 선거유세는 이와 달랐다. 각 당 지원유세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모두 나섰고 그중 황 대표가 경기장 안까지 들어서며 문제가 발생했다.
연맹 지침에는 정당명, 기호, 번호 등이 노출된 의상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황 대표가 입고 있던 점퍼에는 당명이 박힌 로고가 선명했다. 강기윤 후보의 의상에는 기호와 이름이 크게 적혔다. 경남 구단은 논란이 커지자 1일 낸 공식 입장문에서 “상의(당명과 후보자 이름이 적힌) 탈의를 요구했지만 옷을 벗는 척만 하며 다시 착용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 경남의 징계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경남은 관련 지침을 숙지하고 있었고 검표원 등 담당자들에게도 교육을 했다. 강 후보 측과 실랑이까지 벌였지만 이들이 막무가내로 들어가 피해자로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끝내 정치적 행동을 막지 못했고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가능성에 징계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1일 오후 연맹의 경기위원회가 열렸고 경남의 상벌위원회 회부가 결정됐다. 경남은 연맹 정관 제5조 정치적 중립성 및 차별 금지 조항을 어겨 10점 이상의 승점 삭감 또는 무관중 홈경기 진행, 제3지역 홈경기 개최, 2천만 원 이상의 제재금, 경고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튿날인 2일 오전 10시 개최된 연맹 상벌위원회로 시선이 쏠렸다. 경남이 받을 징계 수위가 결정되는 자리였다.
경남 FC 관련 징계 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지난 2일 상벌위원회. 최준필 기자
오후 2시 40분이 넘어서야 ‘제재금 2000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상벌위원회는 경기장 내에서 선거유세가 벌어진 것에 대해 경남 구단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규정 준수를 위해 노력한 점은 참작이 됐다. ‘중징계는 아니지만 경징계도 아닌 수준’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최악의 경우 나올 수 있었던 승점삭감은 피했다.
연맹의 징계는 7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경남은 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의 화살은 자유한국당을 향했다. 경남 구단은 “징계에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황 대표와 강 후보를 향해 “도민과 팬들에게 공식적인 사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렇지 않으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언급된 ‘법적 조치’에 대해 구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당 반응을 보고 논의할 것”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에선 한 발 물러선 반응을 보였다. 민경욱 대변인은 2일 논평을 내고 “구단과 축구팬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면서도 “제재금 2000만 원이라는 결정을 재고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활동에 대해 “이번 계기를 통해 선거법 뿐만 아니라 스포츠 현장의 내부 규정도 꼼꼼히 살펴 정치활동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으로부터 시작된 잡음에도 선수들은 좋은 경기를 팬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사진=경남 FC
경남은 외부의 바람에 팀이 흔들렸지만 선수들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논란이 일어난 당일에도 이들은 역전승을 일궈낸 바 있다. 공교롭게도 징계가 결정된 2일 또한 홈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경남은 지난해 우승팀 전북 현대를 맞아 0-3으로 끌려갔지만 경기종료 약 10분을 남겨두고 3골을 내리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구단 관계자는 “선거유세 논란이 선수단 내에 영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선수들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라며 “그래도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