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폐기해야 할 개인정보 그대로 보관…강력 항의하자 은폐 위해 서류 조작 의혹
2018년 6월 8일 오후 10시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인근의 복정파출소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 아무개 씨(39)는 반대 방향에서 좌회전 하던 차에 하체를 받혔다. 삼성화재 출동 서비스 직원이 출동했지만 이 씨와 운전자는 사고 접수를 하지 않고 50만 원에 즉석에서 합의를 봤다. 서비스 직원은 둘에게 합의서를 받은 뒤 현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이 씨는 몸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단 사실을 감지했다. 이튿날인 2018년 6월 9일 오전 11시 35분쯤 이 씨는 합의를 파기하고 출동 기사에게 합의금을 송금한 뒤 보험 처리를 부탁했다. 사고 접수가 이뤄졌다. 이 씨는 얼마 뒤 ‘자동차 사고접수 완료 안내문자’를 받았다.
전화번호 정보가 ‘변경’됐다는 삼성화재의 문자. 변경이라는 단어가 쓰인 건 삼성화재가 고객의 과거 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문제는 얼마 뒤 발생했다. 2018년 6월 20일 이 씨는 삼성화재에게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 문자엔 “고객님의 전화번호 정보가 ‘변경’되었습니다. [삼성화재]”라고 써 있었다. 이 씨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삼성화재가 자신의 과거 번호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까닭이었다. 이 씨는 2012년 6월 5일 과거에 쓰던 011 번호로 삼성화재에 가입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해약하고 지금껏 변경 없이 다른 회사의 손해보험을 써왔다. 이 씨는 2012년 말쯤 번호를 011에서 010으로 변경한 바 있었다.
삼성화재가 개인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보관한 정황이 드러난 셈이었다. 삼성화재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원칙적으로 거래종료 뒤 3개월이 지나면 고객의 개인정보를 폐기한다. 삼성화재가 이 씨의 과거 번호를 취득한 건 2012년 6월 5일이었고 거래종료일는 다음날이었다. 거래종료일에서 3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이 씨의 개인정보는 폐기돼야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성화재는 2018년 6월 20일 이 씨의 전화번호 정보가 ‘변경’됐다고 이 씨에게 알렸다.
이 씨는 황당했다. 즉각 “왜 개인정보를 계속 가지고 있었냐”고 삼성화재에 항의했다. 그러자 2018년 6월 21일 삼성화재 보상담당자의 상사인 센터장은 이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이 씨는 센터장을 만났지만 정작 사과를 해야 할 보상담당자는 자리에 없었다. 이 씨는 제대로 된 사과를 요청했다. 나흘 뒤인 6월 25일 센터장은 보상담당자를 데리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인근의 카페에서 이 씨를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보상담당자는 전화번호 변경에 대해 “변경은 제가 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삼성화재가 폐기해야 할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관해 온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삼성화재는 계속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개인정보를 취득하게 된 건 당신이 허락했기 때문”이라며 “당신이 개인정보수집 등을 동의한 녹취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정보수집 등에 동의한 적이 없었던 이 씨는 더욱 황당했다. 이 씨는 “증거를 달라. 만약 증거가 없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삼성화재는 이 씨에게 녹취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삼성화재의 개인정보수집 등의 동의서 형식. 왼쪽은 가해자, 오른쪽은 피해자 형식이다. 삼성화재는 가해자가 작성해야 할 ‘보험금 청구를 위한 필수 동의서’를 피해자인 이 씨에게 내밀며 “당신이 이 서류를 썼다”고 주장했다.
이후 삼성화재가 보인 대응 방식은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전자우편에 담긴 녹취에는 그 어디에도 개인정보수집 등을 동의하는 내용이 없었다. 되레 삼성화재는 조작 의혹에 빠졌다. 전자우편에는 녹취와 함께 ‘보험금 청구를 위한 필수 동의서(동의서)’라는 서류가 하나 더 포함돼 있었다. 이 씨는 동의서를 꼼꼼히 봤다. 2018년 6월 8일에 작성된 동의서였다.
그날은 사고 당시 이 씨는 차량 운전자와 합의하고 보험 처리 없이 헤어진 날이었다. 이 문서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 동의서는 가해자가 쓰는 서류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쓰는 서류가 아니다. 서류에도 ‘운전자, 소유주 용’이라고 명확하게 적혔다. 삼성화재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보통 ‘개인정보활용동의서’라는 별도의 양식을 준다. 서명도 이상했다.
‘강력한 처벌과 교육’을 약속했던 센터장의 문자.
또한 ‘동의서’ 업무는 삼성화재 보상담당자의 업무다. 사고 장소로 출동한 삼성화재의 하청업체 직원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게다가 개인정보수집 등에 동의했더라도 삼성화재가 얻을 수 있는 건 이 씨의 현재 상태 개인정보일 뿐이다. 삼성화재가 이 씨의 과거 번호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고객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보관하고 서명을 위조하는 보험사의 잘못된 관행이 또 한 번 드러나게 됐다. 한 보험 관계자는 “보상담당자가 가해자와 피해자 서명을 그냥 마음대로 해서 서류를 처리하거나 회사에 불법으로 보관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센터장이 올 정도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다. 금감원에 신고하면 상당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삼성화재를 금감원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센터장은 “명함을 준 정도만 기억날 뿐 상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