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 기간 전원합의체 판결 의문…금감원 분쟁조정위 안건 상정 기대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키코 공대위)는 이달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안건으로 키코 사건이 상정되는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 사법농단 사태 관련 의혹 사건 재심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키코 공대위 한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이 사건의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금감원 결정 이후 더 많은 피해기업이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며 “사법농단 피해로 인해 재심 가능성이 열린다면 재심도 청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특별재판부를 두고 피해자들에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키코 사건이 새국면을 맞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키코 사태는 2013년 9월 26일 대법원 판결로 ‘이미 결론이 난 문제’로 치부됐다. 당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로 4개 피해기업 사건에 판결을 내렸고, 이는 키코 사건에 대한 판결 기준이 됐다. 이후 접수된 상고 사건은 모두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처리돼 다수 피해기업들은 대법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양승태 사법농단의 핵심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1~2017년 대법원이 상고법원의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이 시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키코사태도 이 시절 판결났다.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문건에는 키코 사건에 대한 대법 판결이 언급돼 있다.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 차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 키코 사건이 언급돼 있다. 키코 사건은 별첨자료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 가운데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 중 하나로 포함돼 있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는 “키코 사건에 대해 금융기관과 기업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건에서 양측이 승복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언급했다.
키코 사건을 일단락시킨 201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심 대법관이었던 박병대 전 대법관은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2014년 2월~2016년 2월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자로 이름을 올려 지난 2월 11일 함께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박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담할 당시 참고했던 ‘사법부의 국정운영 협력사례’를 제시한 인물로 확인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해당 문건을 통해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키코 사건에 대한 박 전 대법관의 태도 변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병대 대법관이 2009년 중앙지검 수석판사일 당시에는 ‘약관이다’라고 판결을 하고 대법원에 들어간 이후인 2013년에는 ‘약관이 아니’라며 본인의 결정을 완전히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또한 지난해 7월 사법농단과 관련해 키코 사건 재판거래 의혹을 설명하며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민변은 ‘키코 사건 재판거래 의혹’ 자료를 통해 “키코 관련 사건에 있어서 박병대 전 대법관의 입장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당시 키코 관련 가처분 사건의 관여법관으로서 ‘약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관련 사건 상고심 판결에서 견해를 변경하고, 어떠한 소수의견이나 보충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키코 사건은 법관들조차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단 하나의 소수의견이나 보충의견 없이 결론을 도출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박 전 대법관은 2009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 수석부장판사 시절 키코 관련 재판에서 은행의 고객보호 의무를 언급하며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또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관 13인 중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외에도 함께 기소돼 사법농단 의혹 핵심으로 꼽히는 고영한 전 대법관도 포함돼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박 전 대법관에 이어 2016년 2월~2017년 5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키코 피해기업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사법농단 연루 의혹 명단을 공개했는데, 키코 사건을 종결시킨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린 당시 대법관 13명 가운데 절반이 사법농단 연루자로 언급돼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 검찰이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은행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모두 기각됐으며 수사기록에서 주요 근거 또한 누락됐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담당수사검사가 교체되기도 했다.
검찰은 2010년 11월 키코 조사를 위해 7개 시중은행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소명 부족을 이유로 전부 기각했다. 당시 검찰은 은행에 자료제출을 요청했으나 은행이 이를 거부하자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해 3월 피해 기업들이 키코 판매 은행을 ‘사기’ 혐의로 검찰 고발한 데 따라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가 중요했으나 법원에 가로막힌 것이다.
또 사기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근거자료인 공문이 수사기록에서 누락됐다. 누락된 공문은 당시 검찰이 키코 사건과 관련해 미 연방 관련기관에 질의를 요청해 주미국대사에게 받은 공문이다. 키코와 비슷한 사건을 다룬 미 금융당국의 견해를 담고 있어 키코 사건의 사기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공문으로서 주 내용은 미국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 관계자와 면담 내용이다. 면담 요지에는 “키코 사건의 경우 깁슨 그리팅스 사건과 매우 유사하며, 파생상품 거래 시 우월한 정보를 지닌 계약 당사자가 상대방 당사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잘못 제공한 것은 상대방을 기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라고 명시돼 있다.
키코 사건에 정통한 이대순 법무법인 정률 대표변호사는 “사건의 핵심쟁점이 ‘사기성’ 여부였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검찰 수사가 중요했다”며 “그러나 확신을 갖고 기소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담당검사는 공판부로 전보된 뒤 교체됐고, 이후 조사에 필요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기각되면서 당시 법원이 은행에 경도돼 있었던 것 같다는 의문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수사기록에 공문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법원이 공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키코(KIKO, Knock-In Knock-Out)란 무엇인가 글로벌 금융위기 닥치자 ‘키코 계약’ 강소기업 흑자 도산 키코 상품은 2006~2007년 은행들이 수출 중소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환헤지 상품 중 하나다. 환율 변동성이 클 때 수출 중심 기업들은 환율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수출 가격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수출기업들이 환헤지 상품에 가입한 이유다. 다만,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을 뒀다는 의미에서 머릿글자만 따 상품 이름을 ‘키코’라 일컫는다. 환헤지 상품으로서 키코의 특징인 상한과 하한은 한편으로 지금까지 키코사태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매듭짓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은행의 키코 상품을 계약한 기업은 환율의 상한선과 하한성을 정해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변동하면 정해진 환율을 적용받으면서 안정적인 수출활동을 할 수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 득을 보는 것이고 환율이 오르면 감수하면 된다. 문제는 환율이 계약 때 정해놓은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 범위를 벗어날 때다. 은행들은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했다. 이로써 하한을 벗어나면 은행은 손해를 제한한 반면, 기업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계약 무효화 옵션이 아닌 기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옵션을 단 상한 이상 경우다. 상한 이상 환율이 올라갈 경우 기업은 약정액의 2배 이상을 약정 환율에 팔아야 한다. 무한대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키코 계약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쳐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키코 계약을 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했다. 키코 계약 때문에 생기는 천문학적인 금융비용 탓에 영업이익이 수십~수백억이 나는 강소기업들도 버티지 못하고 ‘흑자도산’했다. 피해 기업들은 은행이 키코계약 시 발생하는 마이너스 시장가치를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은행이 금융파생상품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옵션 프리미엄을 과다하게 설계해 판매하면서 주요 내용을 고지하는 데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 반면 은행은 환율 변동에 대한 확률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계약을 맺을 당시 기업들이 행사가격을 유리한 쪽으로 설정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확률상 희박한 부분에서 은행들의 이득이 생기는 프리미엄을 챙겼다는 주장이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