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저조할수록 인수자에 유리 ‘무관심’ 위장일 수도…산업은행, 이번에도 헐값 매각 땐 책임론 불가피
아시아나항공 유력 인수후보로 떠오른 국내 대기업들이 저마다 인수설을 부인하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작업 총대를 멘 산업은행의 어깨가 무거워졌다.사진은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 연합뉴스.
당초 아시아나항공 인수 유력 후보로 한화그룹과 SK그룹, 롯데그룹, CJ그룹 등이 꼽혔다. 특히 SK와 한화의 2파전 가능성이 힘을 받았다. 그러나 SK와 한화마저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그룹 차원에서 검토한 적 없다”고 단언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8일 열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케미칼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수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항공기 엔진, 기계 시스템 등 항공제조업과 항공운수업은 본질이 달라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며 “인수를 생각해본 적도, 인수계획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유로 높은 재무적 부담과 특혜 의혹에 휘말릴 가능성 등이 꼽힌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워낙 높아 통째로 인수할 경우 재무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다. 또 미리 인수 의향을 밝히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현대중공업의 사례처럼 ‘밀실협약’이나 ‘특혜의혹’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로서는 껄끄러운 부분이다.
매각공고가 나오기 전 인수 후보로 꼽힌 기업들이 등을 돌리자 산업은행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주채권은행으로서 매각 작업을 주도하는 산업은행이 받을 타격을 클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정상화 자구 계획안을 거부하면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밀어붙였다. 지난달에도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자신감을 내비친 터다.
지난 4월 1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7조 원이 아니라 3조 6000억 원이 조금 넘는 규모이고, 인수자가 이를 모두 갚을 필요도 없다”며 인수자의 부담이 시장의 예상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아시아나항공은 정상화되면 매력적인 매물”이라며 “인수 가격과 자금지원 능력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은 시장에서 매력적인 매물로 평가된다.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운수사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 국적항공사라는 점에서 충분히 탐낼 만한 곳이다. 현금창출 능력이 뛰어나고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전 오너 일가에서 독립한 것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이유로 인수 후보로 꼽히는 기업들의 손사래가 ‘위장’일 것이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수 의사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적항공사로서) 비교적 규모가 작고 경쟁력 있는 아시아나항공이 대우조선처럼 장기 표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현 시점에서는 인수 의사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가격이 떨어지고 산은이 콧대를 낮추면 마지못해 번복하는 척하며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록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들은 끝까지 인수 의사를 분명히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해 판은 이미 산업은행보다 기업들에 유리하게 펼쳐졌다는 이유에서다.
국적항공사여서 인수전에 외국계 기업과 사모펀드 등의 참여가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 산업은행은 결국 국내 대기업 중에서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 인수 의사를 밝히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수록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의 부담이 커지고 이는 인수자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산업은행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진행한 매각작업과 구조조정에서 뒷말과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까지 얻은 바 있는 산업은행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을 단기에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선물하듯 안겨줬다는 비난도 받는 실정이다. 대우건설과 KDB생명, 동부제철, 현대상선 등 관리대상 기업들의 매각 타이밍을 놓치거나 관리부실로 기업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최근 산은이 KG그룹에 동부제철을 3600억 원에 넘기기로 결정했는데, 돌이켜보면 2014년 패키지딜을 할 때만 해도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건설 당진발전소 2개 가격이 1조 원 안팎으로 평가받았었다”며 “산은이 패키지딜에 실패하고 매각 타이밍을 놓치면서 기업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만약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