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로드숍 브랜드, 온라인 강화와 프리미엄 브랜드 정책 등 살 길 모색
우리나라 화장품업계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아모레퍼시픽과 잇츠한불의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820억 원으로 전년 5964억 원 대비 약 19%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26%나 감소했다. 달팽이크림으로 유명한 잇츠한불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208억 원으로 전년 대비 54.1% 감소했다.
중소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단일 브랜드로 승부를 봐야 하는 중소업체들의 특성상 불황을 극복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로드숍 매장들의 추락이다.
서울 중구 명동길 26 명동 화장품 거리
미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토니모리, 이니스프리 등 화장품 로드숍 매장들은 불과 3, 4년 전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화장품이 갖고 있던 기존 고가 이미지에서 탈피해 중저가 화장품을 앞세운 점과 ‘K-뷰티’ 열풍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현재 화장품 로드숍은 대부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은 다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새 출발을 알린 스킨푸드는 2010년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 매출 기준 3위를 기록할 만큼 성장가도를 달리다 지난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바 있다. 토니모리는 7분기 연속 영업적자가 이어지자 중국법인 청산 등 경영구조 개편에 들어갔다. 에이블씨엔씨의 올 1분기 영업적자는 23억 원을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로드숍의 부진 이유로 내수경기 침체와 중국 관광객 수 감소, 온라인 강세와 유통구조 변화 등을 꼽는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수익이 로드숍 매장이 아닌 면세나 수출, 관광 상권 판매에서 난다”고 말했다. 화장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특정 브랜드에 충성하기보다 가격과 제품력을 실시간으로 비교하면서 트렌드를 쫓는다”며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단일 브랜드로 승부를 보던 로드숍은 기존 방식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중국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점도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드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빠지자 잠복해 있던 내수시장의 문제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며 “중국 관광객에 의존하느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사이 내수시장이 정체된 탓”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동의 한 로드숍 점주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 가는 중국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며 “사드 이전 매출과 비교하면 확실히 위기”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중소업체 위주의 로드숍 위기는 곧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의 위기로 직결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로드숍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문제들이 우리나라 전체 화장품산업의 침체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유통구조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대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면 로드숍의 위기를 전체 화장품산업과 연결시키기는 무리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중저가 제품으로 내수시장에 중점을 둔 중소업체와 프리미엄 고가 브랜드 위주의 수출에 비중을 많이 두는 대기업을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다른 대형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전체 시장이 커지지 않는 한 내수시장에서는 성장과 정체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들이 침체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대형 업체들 중심으로 수출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에도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들의 화장품 수출과 매출액은 증가해 왔다. 특히 고가 브랜드 위주의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띈다. LG생활건강의 경우 고가 브랜드 위주의 실적이 전체 화장품 분야를 끌어가 전략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생활건강의 전체 화장품 매출에서 ‘후’와 ‘숨’, ‘오휘’ 등 럭셔리 화장품 매출 비중은 70%가 넘는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화장품은 가격 면에서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고 품질 면에서는 일본, 유럽에 밀리는 상황”이라며 “제품의 고급화와 동시에 중국 외 러시아, 유럽 등의 새로운 판로를 뚫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로드숍에도 적용된다. 김주덕 교수는 “지금의 로드숍 브랜드들도 이러한 변화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온라인 강화와 프리미엄 브랜드 정책, 수출 모색 등 최근 로드숍 브랜드들의 살길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로드숍뿐 아니라 대형 화장품 업체들도 과거와 같은 단순 분류를 넘어서기 위해 고민 중”이라며 “과거 K-뷰티의 한 축을 담당한 로드숍이 다시 전성기를 찾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의 융합, 채널 개발, 새로운 소비자 공략 등의 획기적인 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인턴기자
해외 명품 화장품 국내서 잘나가는 비결은? 고급화전략 통했다 국내 화장품업계의 침체와 달리 글로벌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샤넬, 로레알 등 이른바 ‘명품 화장품’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신상품을 선보이거나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일 등은 이제 친숙한 모습이다. 바이레도, 딥디크 등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를 직수입해 판매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사업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은 무려 175.9%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꾸준한 성장세의 이유로 ‘고급화 전략’, ‘품질’ 등을 꼽는다. 실제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샤넬코리아는 올해 초 화장품 가격을 최대 10.3% 인상했으며 지난해 1월에도 화장품 가격을 2~3% 인상한 바 있다. 다른 수입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고가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라며 “국내 화장품이 아직은 해외 명품 브랜드들을 뒤쫓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는 품질 향상과 더불어 고급화 전략을 펼쳐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파워’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대비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같은 트렌드가 명품 화장품 소비와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며 “100만 원이 넘는 명품 가방을 살 수는 없지만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사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