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알리바바·마루한과 제휴 모두 거짓…피해자 한 명이 수소문해 파악한 피해액만 최소 10억
미국 켄터키주에 실제 존재하는 ‘노아의 방주’ 테마파크. 사진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말은 노아의 방주 테마파크 ‘더 월드’를 만들겠다는 서정석 ‘월드한상’ 대표가 돈을 모으면서 한 말이다. 난데 없는 팔당댐 테마파크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온 건 아니다. 먼저 이 암호화폐는 기부의 탈을 쓰고 등장했다.
2018년 4월부터 서정석 월드한상 회장은 몇몇 암호화폐 전문가와 기독교 인사와 함께 일종의 기부를 돕는 암호화폐를 기획했다고 홍보한다. 이때는 기부에 무게가 실려 있었고 당시 사업계획서를 본 사람들은 ‘북한에 나무를 심는 사업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고, 이 자금을 모아 통일 숲 재단을 만든다’고 써 있었다고 한다.
기부가 목적인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엄청난 변동성과 리스크가 크지만 얻을 수 있는 큰 수익을 기대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피해자들은 더 월드 측이 ‘상장을 1달러에 하며 초창기 판매가격 30원의 약 30배인 1달러를 보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사업계획서를 보더라도 이들 말처럼 ‘2018년 11월에 1달러에 상장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런 목적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초기 홍보를 시작하고 한 달이 채 못돼 사업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계획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그때 불쑥 나온 게 테마파크였다. 서 회장이 ‘자신이 가진 하남시 팔당댐 인근 땅에 노아의 방주 모양의 테마파크를 짓고 이 테마파크 고문으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모시겠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엘피스 암호화폐만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계획을 추가했다. 서 회장이 직접 투자자들 앞에서 40만 평의 땅 문서를 보여주면서 사업 계획을 브리핑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기존 투자자들은 ‘기부 목적 암호화폐와 노아의 방주 테마파크는 너무 결이 다르다. 다른 코인으로 만드는 게 맞다. 혼선이 많다’고 항의의 목소리도 보냈다. 그럼에도 기부 목적과 함께 추진됐고 테마파크 사업이 추가되면서 암호화폐 관심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대박’ 냄새가 나자 엘피스라는 코인에 돈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만 기존 암호화폐에 관심 많은 블록체인 기술에 밝은 젊은 층이 아닌 중년들이 주축이었다고 한다. 당시 투자자 A 씨는 “중년층이 많이 참가했고 기술에 대해서는 다들 문외한이었다”며 “분위기는 암호화폐보다는 다단계 판매 쪽에 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테마파크 사업을 추가하면서 관심을 끌자 더 월드는 더욱 대담해졌다. 새로운 사업 발표 약 2주 뒤 이번에는 ‘아마존과 협의가 끝났다’며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계약서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아마존’이라는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 기업과의 제휴에 환호했다. 서 회장은 ‘월드한상’이라는 업체명처럼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 네트워크에 누구보다 밝다고 인맥을 자랑했고 아마존 참여도 이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고 한다.
엘피스 코인 사업을 설명하는 글
다시 2주 뒤 이번에는 중국 쪽 공략을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몰인 중국 알리바바 그룹과 제휴했다고 발표했다. 이쯤되자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뻐했지만 일부에서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암호화폐, 대단한 인맥이라고 하더라도 연이어 세계 최고 기업들과 제휴를 맺는데 계약서 한 장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심하는 눈빛과 별개로 더 월드는 놀라운 발표를 이어간다. 일본에서 손 꼽히는 재벌 중 한 명인 재일교포 한창우 마루한 회장도 참여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피해자들은 다소 허황된 이 같은 계획을 월드한상이라는 이름이 가려줬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한인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 부동산 재벌로 알려졌고 한국 정치권에도 발을 담갔던 B 회장의 존재가 서 회장을 믿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B 회장이 만든 매체에 서 회장이 출연해 ‘B 회장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B 회장과 긴밀한 사이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아의 방주를 짓겠다는 계획처럼 암호화폐를 발행한 주축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계획으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코인을 사용해 십일조를 낼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또한 엘피스 코인으로 결제 가능한 드론이나 최첨단 배터리 등을 소개했다. 이런 소식들은 코인 판매에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더월드 플랫폼’ 측에서 공개한 사업계획서
어쨌든 대단한 발표로도 의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앞서 피해자 A 씨가 경찰에 지난해 12월에 신고하면서 거창했던 이 사건은 너무 쉽게 종지부를 찍게 된다. A 씨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참여한다고 해 어렵게 사실을 확인해보니 반 전 사무총장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의심을 하게 됐고 파트너십도 모두 가짜였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5월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 사건은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수사가 마무리됐고 5월 말 검찰로 송치돼 현재 부산 서부지청으로 접수된 상태다. 서 회장은 구속됐지만 피해자들이 모아준 돈 수십억 원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피해자 A 씨가 알음알음 수소문해 모은 피해자들의 피해액만 최소 10억 원이 넘어 더 월드에 들어간 피해액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 C 씨는 “수십억 원을 일단 받아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코인 사기꾼들은 돈은 돌려주거나 코인으로 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자금 모집을 공격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A 씨는 “돌아보면 황당하지만 북한에 나무 심는 사업이라며 ‘통일숲재단’을 만든다는 기부코인으로 기독교인들을 위한 코인, 팔당댐 테마파크에다 소프트뱅크, 아마존, 알리바바 글로벌 기업은 다 갖다 붙이면서 돈을 모으고 써버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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