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그 이상의 감동, 웃음, 그리고 사랑…책장을 덮어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영화 ‘토이스토리 4’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난 2010년 ‘토이스토리 3’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트릴로지를 장식했던 ‘토이스토리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잘 가, 파트너”라는 대사로 울고 웃었던 전 세계의 팬들은 ‘앤디’가 그랬듯 인형 놀이를 졸업하는 것으로 토이스토리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된 인형들에게 펼쳐질 또 다른 삶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디즈니식 마무리로 시리즈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9년 만에 다시 찾아온 ‘토이스토리 4’는 오랜 관객들에게 설렘이면서도 우려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이미 완벽한 마무리로 장식된 추억이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려졌을 때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던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관객들의 우려는 지난 ‘토이스토리 3’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 ‘보핍’의 재등장으로 말미암기도 했다. 보핍은 앞서 ‘토이스토리 1’에서는 트레이드 마크인 긴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백인 미녀 캐릭터로 주인공 ‘우디’의 연인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 바 있다.
영화 ‘토이스토리 4’ 스틸컷
그러나 이번 ‘토이스토리 4’에서 보핍은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장난감 레지스탕스’의 리더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 같은 미녀 캐릭터의 갑작스런 ‘바지 액션’이 불편한 일부 관객들은 “디즈니가 페미니스트들의 눈치를 보고 또 캐릭터를 억지로 바꿨다”는 비판을 개봉 전부터 쏟아냈다.
아마 실제로 영화를 보면 예고편만으로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이 더 큰 불편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토이스토리 4’에서 보핍은 단순한 장식용 인형이 아닌 ‘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디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활약하기 때문이다.
남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여성 캐릭터’가 스토리의 큰 축을 차지해 갈등과 위기의 시발점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토이스토리 4’는 이런 클리셰를 그야말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오히려 관객들은 오지랖이 열두 폭이어서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우디 보다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장난감이 된 보핍의 사상이나 의견에 한 표를 줄 수밖에 없다. 이미 어른이 된 관객들은 “장난감은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우디의 말보다 “아이들은 늘 장난감을 잃어 버린다”는 보핍의 말에 수긍하기 마련이니까.
영화 ‘토이스토리 4’ 스틸컷
장난감들은 언젠가는 버려짐을 알면서도 주인의 곁을 지키는 ‘장난감의 숙명’을 따를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장난감만의 삶’을 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처럼 장난감으로서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은 인간 이상으로 인간적이다.
이런 고민은 새로운 캐릭터인 ‘포키’에게도 적용된다. 장난감들의 새로운 주인 보니가 포크와 아이스크림 나무막대기로 만든 이 장난감은 ‘쓰레기’와 ‘장난감’의 정체성 사이에서 단순하면서도 깊은 고뇌에 빠져 관객들을 시종일관 터지게 만든다. 보니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라는 새로운 운명을 거부하고 쓰레기통으로 가기 위한 탈출을 강행하는 포키와 “장난감에게 주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설득하는 우디의 만담은 극중에서 가장 ‘빵 터지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토이스토리 4’에서는 장난감이라는 존재를 “주인이 애정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니가 유치원에서 처음 만들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포키 역시 쓰레기가 아닌 소중한 장난감으로 여겨지며, 결국 장난감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주인의 애정이 식어버렸거나, 선택받지 못한 장난감은 어떻게 될까. 이것이 이번 작품에서 우디와 보핍이 관객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영화 ‘토이스토리 4’ 스틸컷
영화가 끝나고 스태프롤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관객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작에서 악역을 맡은 인형 개비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 분)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새로운 주인을 찾은 완벽한 마무리로 막을 내린 ‘토이스토리 3’의 여운을 아직 간직한 관객들이라면 이번 작품이 다소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디의 모든 결정을 응원하고 싶은 팬이라면,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마지막 장의 뒷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토이스토리 4’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100분, 20일 개봉. 전체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