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술’ 공식 깨고 특별함 더해가는 대학가 축제 현장 체험기
술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 사진=박찬웅 인턴기자
[일요신문] 대학가 축제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다. 이젠 ‘술’ 말고도 즐길 거리가 풍성한 모양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 축제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술’이었다. 축제 시즌이 되면, 학생들은 전공동아리 별로 주점을 열며 젊음을 만끽했다. 주점은 명실공히 대학가 축제 메인이벤트라 불리기 충분했다.
이제 대학 축제에서 ‘주점’은 유명무실하다. 술을 팔지 않고, 술을 마실 공간을 빌려만 주는 까닭이다. 축제에서 술자리를 즐기려면, 학생들이 술을 직접 사와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 축제 트렌드가 바뀌면서 “어차피 술 마시는 건 똑같은데, 술을 사서 주점에 가는 게 번거롭지 않느냐”는 일부 학생들의 의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변화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술의 대체재를 찾으려 애썼다.
그렇다면 술을 대신한 대학 축제 콘텐츠는 무엇일까. ‘일요신문’이 대학 축제 현장을 직접 찾았다.
# ‘호수에서 나룻배 타기’, ‘인공 암벽 등반 체험’ 대학교 랜드마크 활용한 즐길 거리 제공
건국대 학생들은 1년 중 한 번 축제 기간에 일감호에서 나룻배를 탈 수 있다. 사진=박찬웅 인턴기자
대학 축제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학교 지형’을 활용한 콘텐츠였다. 대표적인 예는 건국대학교의 ‘호수 나룻배 체험’이었다. 건국대 캠퍼스 랜드마크로 불리는 ‘일감호’에서 나룻배를 타는 콘텐츠였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일감호’에서 나룻배를 타려는 학생들은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한 건국대 재학생은 “학교 호수에서 나룻배를 탈 수 있는 학교는 건국대가 유일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인천대 암벽 등반 체험은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사진=박찬웅 인턴기자
대학교 중심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 가면, 학생들이 ‘암벽 등반 체험’을 할 수 있다. 인천대는 2011년부터 복지회관 벽면 한쪽에 인공 암벽을 설치해 놓았다. 학생들은 축제 기간에 인공 암벽에서 ‘클라이밍 체험’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인천대 재학생은 “학교를 배경으로 암벽 등반할 수 있는 곳이 드물 것”이라면서 “‘클라이밍 체험’을 통해 학생들이 건강하게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전공에 아이디어를 더하니 학생들이 몰려왔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학생이 그린 그림을 넣어 만든 부채. 사진=현앙당 제공
전공을 살려 축제에 풍성함을 더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축제가 열릴 때마다 동양화과 재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부채를 판매한다. 도예과 학생들은 기념품을 판매한다. 주력 상품은 직접 제작한 컵이나 그릇이다.
해마다 기념품을 구매하는 이화여대 재학생은 “축제 기간 학생들은 전공을 살려 기념품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지난 축제 기간에 기념품을 사보니, 가성비가 뛰어났다. 이번엔 어떤 기념품이 나올지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문구는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에서 발췌한 시 글귀다. 사진=인천대 제공
인천대 국어교육과 학생들도 축제 기간 전공을 살린 콘텐츠를 기획했다. ‘한글 타투와 키링(열쇠 고리) 만들기 체험’이었다. 타투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글귀가 적혀 있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키링 역시 한글이 적혀있다.
이번 축제에서 ‘한글 타투, 키링 만들기’ 콘텐츠를 기획한 인천대 국어교육과 학생은 “해마다 학생들끼리 모여 ‘축제 기간 어떻게 한글을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올해는 한글을 좀 더 색다르게 알리고 싶었다. 축제라는 특별한 날에 뜻깊은 추억을 새길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라면서 콘텐츠 기획 이유를 설명했다.
# 축제의 콘텐츠화, 기업 후원 행사의 일반화
해리포터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인천대 학생들. 사진=박찬웅 인턴기자
학교 축제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기획한 학교도 눈에 띄었다. 인천대는 올해 축제 콘셉트로 영화 ‘해리포터’를 선정했다. 축제 기간 학교를 ‘호그와트 마법 학교’로 꾸몄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에서 대여받은 ‘마법 학교’ 옷을 입고 학교를 활보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해마다 대학 축제를 즐기고 있는 한 인천대 학생은 “‘술’이 대학 축제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축제를 폐지할 순 없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1년에 한 번뿐인 축제를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학생들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가 축제 기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행사를 진행하는 건 이제 21세기 대표 축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학교 밖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코인 노래방’, ‘스티커 사진 자판기’들이 캠퍼스에 등장했다. 줄지어 늘어선 푸드 트럭들은 학생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평소엔 보기 힘든 이색적인 캠퍼스 풍경이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홍익대학교 재학생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축제의 꽃은 술이었다. 다른 행사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주점에서 더 이상 술을 팔지 않자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눈에 띄었다. 앞으로 더 신선한 행사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학가 축제엔 술 말고도 즐길 거리가 풍성했다. 술이 떠난 빈자리를 채운 것은 학생들의 ‘아이디어’였다. 이제 ‘축제는 술이 절반’이란 공식은 옛말인 듯하다. 그야말로 신풍속도다.
박찬웅 인턴기자 pcw02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