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의사들 9명으로 구성…“잘못된 의학 정보로 선동” ‘환자혁명’ 조한경 비판
‘퇴마의학기사단’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들은 얼굴이나 신상을 드러내진 않는다.
전문가인 의사가 이런 얘기를 잘못된 정보라고 비판해도 이들은 오히려 ‘의사가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를 두둔한다’고 말하기 일쑤다. 혹은 안아키처럼 다시 카페를 만들어 지지자를 결집하는 경우도 있다. ‘퇴마의학기사단’은 이런 현실에 분노해 만들어진 단체다.
퇴마의학기사단이란 이름은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퇴마의학기사단 소속인 의사 A 씨는 “무책임한 매체들을 통해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잘못된 정보는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마와 같다.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달콤한 말에 쉽게 넘어간다. 이런 정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리기 위해 ‘퇴마’라는 이름을 택했다”고 밝혔다.
퇴마의학기사단은 소속된 의사들이 누군지 철저히 가린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를 묻자 A 씨는 소속 의사들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으로 잘못된 의학정보를 비판해도 오히려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며 ‘삶을 위해 익명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 구성은 소아청소년과 3명, 내과 1명, 응급의학과 1명, 영상의학과 1명, 재활의학과 1명, 이비인후과 1명, 정신과 1명으로 구성됐으며 필요한 경우 다른 전문의들이나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자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이 집중해서 다룬 가짜뉴스는 ‘닥터조’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튜버 조한경 씨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환자혁명’이란 책을 집필했다. 또한 ‘닥터조의 건강이야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이 채널에 구독자는 약 11만 7000명, 총 영상 조회수 약 1245만 회에 달한다.
퇴마의학기사단의 창립 자체가 베스트셀러였던 ‘환자혁명’에서 왔다고 한다. A 씨는 “우리는 ‘환자혁명’ 책을 읽으며 경악을 넘어 분노를 느끼던 중 SNS를 통해 서로 연결됐다. 카이로프랙틱 자격증 보유자였던 조한경 씨가 스스로 ‘척추신경전문의’라고 호칭하며, ‘닥터조’, ‘의사’ 등으로 불러서, 의사(medical doctor)인 듯한 오해를 만들고 의료정보를 다루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재호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인스타그램 캡쳐.
퇴마의학기사단은 이런 가짜 정보를 이용하는 부류들 중에서는 경력이나 학력을 부풀리기 쉽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해외파가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A 씨는 “가짜 정보를 유통시켜 한몫보려는 사람들 중에 해외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 심리학자라는 둥, 독일에서 박사를 했다는 둥 미심쩍은 경력이나 학력을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 마케팅한다”며 “해외 학력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자격이 그 국가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아야 하는데,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마의학기사단은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는 건 위험하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A 씨는 “‘환자혁명’ 내용은 우리가 연재한 글을 통해 지적했듯이 황당무계한 정도로 잘못된 정보지만 메이저 언론사, 대기업, 온라인 서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띄워줄 정도로 지지를 받았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거짓 정보에 취약한지 알 수 있는 사례”라면서 “대기업마저 이런 책을 추천하는 걸 보면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정보를 검증하고, 취사선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능력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잘못된 의료정보는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위험성이 크다. 안아키 사태를 보더라도 잘못된 의료정보는 사람을 죽음까지 몰아갈 수 있다. A 씨는 “닥터조는 독감 백신에 부정적이고 감기에 해열제 복용은 도움이 안된다거나 항암치료는 철저히 실패한 치료법이라고 가짜뉴스를 퍼트린다.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건 쉽지만 이를 반박하는 것은 몇 배는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이렇게 의료정보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퇴마의학기사단 비판에도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아직도 닥터조는 활발하게 쇼핑몰과 유튜브를 운영하며 책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퇴마의학기사단은 잘못된 의료정보를 비판해 지지도 받았지만 비판한 잘못된 의료정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A 씨는 “거짓 의료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그 말을 믿고 실천한 선량한 피해자가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초기에 복지부, 의협, 경찰, 그리고 언론에 제보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질적으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이상 뾰족하게 도울 방법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라면서 “안아키처럼 꼭 피해자가 나와야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누군가 희생돼야만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사전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배운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분노했다.
A 씨는 과학자라는 의사들 중에서도 외도하거나 상업성에 매몰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는 의견도 밝혔다. A 씨는 “기능의학이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사리사욕을 차리려는 사람도 있고 정말 의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능의학을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조차 ‘과학성’에 대한 성찰과 감식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름을 얻고, 건강식품을 파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의학의 과학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A 씨는 “지금까지는 ‘환자혁명’ 저자인 닥터조 조한경 씨 비판에 중점을 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계속해서 다른 잘못된 의료정보도 비판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방향성은 내부 구성원들과 상의하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