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대로 했을 뿐” 입장…연예병사 제도 폐지해놓고 연예인 출신 차출 ‘자가당착’
최근 과도한 휴가일수로 논란이 된 배우 임시완. 연합뉴스
#입맛대로 차출되는 연예인 병사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예인 출신 군인의 군 복무 실태‘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입대한 연예인은 총 16명이었다. 배우 강하늘, 배우 고경표, 그룹 슈퍼주니어의 려욱(본명 김려욱), 배우 김수현, 배우 도상우, 보이그룹 초신성 출신의 배우 박건일, 그룹 빅뱅의 대성(본명 강대성), 지드래곤(본명 권지용), 태양(본명 동영배), 배우 주원(본명 문주원), 그룹 2pm의 택연(본명 옥택연), 배우 이장우, 래퍼 빈지노(본명 임성빈),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 황광희, 배우 지창욱 등이었다.
이 가운데 13명은 일반 병사의 평균 휴가일수보다 많은 휴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00일 이상의 휴가를 받은 사람도 4명에 달했다. 진료휴가만 56일을 받은 병사도 있었다(관련 기사: 국방부 행사비는 위로휴가? 휴가일수 100일 넘는 연예인 ‘수두룩’).
2017년 국방부는 포상휴가 최대 허용일수를 18일로 한정했다. 과거 연예병사와 고위직 자녀의 특혜 의혹 등 공정한 포상휴가 시행과 관련하여 수차례 문제가 제기된 사례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위로휴가는 최대 허용일수가 없어 사실상 포상휴가의 대체재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임시완을 비롯한 일부 연예인 출신 병사는 일반 보직으로 입대했음에도 군 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소속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차출됐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위로휴가를 받았다. 실제로 100일 이상의 휴가를 받은 연예인은 모두 40일 이상의 위로휴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에 많이 참석할 수록 휴가도 많이 나갔다는 뜻이다. 차출 여부는 개인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반 병사가 군 행사에 동원돼 40일 이상의 위로휴가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차출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16명의 행사 참여 내역을 살펴보면 일부 연예인만 여러 차례 행사에 동원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6회 이상 행사에 참여한 사람도 있는 반면 단 한 차례도 나가지 않은 사람도 2명 있었다. 3회 이상 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5명이었다. 유명할수록 불려나가는 횟수도 늘었다. 임시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전문 분야에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동원된 것도 문제였다. 2010년 전역한 육군 출신 큐레이터는 “2010년 대림미술관에서 국방부가 주최한 6·25 행사가 열렸다.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배우 이준기와 이동욱이 도슨트를 맡았다. 내무반에서 행사 영상을 보면서 전공자인 나는 상당히 씁쓸했다. 지난해 동계 올림픽 전시해설도 마찬가지다. 인기 배우를 세우면 홍보 효과는 좋을지 몰라도 다른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병사제도는 일부 연예인의 일탈행위와 군의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지난 2013년 폐지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연예인들은 여전히 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본인의 소속 부대 및 보직에 관계없이 동원되고 있다. 국방홍보원 소속 홍보지원대라는 보직만 사라졌을 뿐, 연예병사제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군 행사에서 노래 부르는 연예인 출신 병사. 연합뉴스
#홍보인력 부족…자가당착 빠진 국방부
이와 관련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17일 페이스북에 해명글을 올렸다. 그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지만 필요에 따라 국군의 날 행사나 현충일 행사, 기타 군과 국방 관련 행사의 목적과 취지를 잘 드러내고 국민들께 친근감을 주기 위해 병사들 일부를 섭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개의 연예인 출신 병사들은 이런 행사 참석을 많이 꺼린다. 대부분 연예인 출신 병사들은 평범한 군 생활 이후의 연예 활동이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임시완 당시 상병도 지난해 현충일 행사와 국군의 날 행사 출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소속부대장이 행사 참여 명령을 내렸고 임 상병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던 임 상병은 많은 모범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때 아닌 ‘모범병사 자질’ 논쟁이 벌여젔다. 배우 김수현의 군 생활이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1사단 수색대대에 근무 중인 김수현은 입대 이후 언론 인터뷰나 부대 관련 행사에 전혀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수색대대원의 임무 자체가 퇴색될 수 있어 부담스럽다’며 언론 인터뷰나 행사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속 부대도 무조건적인 동원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병사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이번 조사 대상 16명 가운데 몇 안되는 일반 병사의 평균 휴가일수와 비슷한 휴가만 받은 연예인이었다.
육군 대령 출신의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탁 위원의 발언을 두고 “애초에 참석을 거절한 연예인 병사를 데려다 행사에 동원한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대는 연예인과 일반인 상관없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가는 곳이다. 공연이나 사회를 볼 사람이 필요하다면 군인이 아니라 군 밖에 있는 연예인을 섭외했어야 한다. 논란이 생겼으면 국방부가 나서서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연예인 한 명의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혜 논란으로 연예병사 제도는 사라졌지만 이들이 해오던 홍보 업무에 공백이 생긴 까닭이다. 복수의 군 전문가들은 “적절한 대책 마련 없이 연예인 출신 병사의 대외 행사 동원이 계속되는 한 일반 병사와의 형평성 논쟁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번 논란에 대해서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앞서 불거진 가수 비(정지훈)의 휴가 특혜 의혹과 가수 지드래곤(권지용)의 1인 병실 사용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국방부는 같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16명 중 5명이 조교…연예인들 조교 선호하는 까닭 휴가 많고 이미지 개선 효과적…행사 차출시 업무는 동료가 독박 123일의 휴가를 나와 특혜 논란에 휩싸인 배우 임시완의 소속사는 “조교 보직 특성상 40일의 위로휴가를 받는다. 임시완은 8기수를 수료시켜 26일의 휴가를 받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어 “우수 조교의 경우 100일 전후의 휴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예인 출신 군인의 군 복무 실태‘ 자료에 등장하는 연예인 출신 병사 16명 가운데 5명은 조교 보직이었다. 이 가운데 현재 복무 중인 1명을 제외하고는 3명이 100일에 가까운 휴가를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들이 유독 조교 보직을 선호하는 이유를 두고 한 연예계 관계자는 힘든 만큼 장점이 있는 보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교는 타 보직에 비해 휴가일수도 많고 제대 이후 이미지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내무반 인원도 적어 군 생활에 불편함이 적다는 것도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이 각종 행사에 차출되면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큰 행사에 동원되면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한 달까지 본 업무에서 빠지게 되는데 이때 남은 업무는 동료 병사들이 분담하게 되는 까닭이다. 조교 출신의 한 예비역은 “임시완의 경우 신병기수 위로휴가를 다 채우지 못했는데 이는 남들보다 일을 덜 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임시완의 일을 대신 했을 것이다. 행사도 중요하지만 군 사기 차원에서 본업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