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건 숨기고, 유리한 건 키우고…청와대 눈치보기 지나치단 지적 나와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연합뉴스
청장 교체 이후 약 1년이 지났다. 현재 통계청은 통계 왜곡 논란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통계청 내에서도 예상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통계청 관계자는 “소득분배 및 고용이 악화되었다는 통계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는 시점에 청장 인사가 단행됐다. 명시적으로 정해진 통계청장 임기는 없지만 통상적으로 2년은 했다. 황 전 청장에 대한 내부 평가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갈아치워 정부가 스스로 논란을 만들었다”고 한탄했다.
지난 6월 17일에는 통계청이 경기 정점 판단을 보류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경기 정점은 우리나라 경기가 언제 정점을 찍고 내려왔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은 이미 여러 차례 2017년 2~3분기 즈음을 경기 정점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학계 시각도 비슷한 상황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판단을 미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7년 하반기를 경기 정점으로 선언하면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한 시기와 겹친다. 문재인 정부 정책 때문에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통계청을 담당하는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경기 정점을 정하자고 안건을 올린 뒤 결정을 유보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 통계청장이 ‘2017년 2분기가 경기 정점으로 보인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고 올해 6월에 공식적인 판단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었다. 이제 와서 보류하는 것은 ‘청와대 눈치보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통계청은 당초 업무계획에 없던 ‘팔마비율’ 등 4개 소득분배지표를 새로 개발해 발표했다. 뜬금없이 공개된 지표들은 대체로 정권에 유리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통계청 측은 “이번에 새로 개발해 공표한 팔마비율, 소득 10분위 경계값 비율, 중위소득 60% 기준 상대적 빈곤율 등은 이미 OECD에서 사용되는 지표들”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해당 분배지표를 작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발표한 것일 뿐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보은 통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통계청을 비판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도 “4개 소득분배지표를 굳이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유 전 청장은 “팔마비율은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지표가 아니다. 생소한 지표”라며 “정말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오해 받을 만한 행동인 건 맞는 거 같다”고 했다.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개편해 내년부터 소득과 지출 부문 조사를 다시 합치기로 한 것도 논란 거리다. 과거 가계동향조사는 응답률이 너무 낮아 문제가 됐다. 그래서 2017년 소득과 지출 부분을 분리하고, 분기별로 발표하는 소득조사는 올해부터 없애기로 했었다. 문제는 소득과 지출을 분리하자 분배지표가 나빠졌다.
통계청은 “통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야권에선 정부에 불리한 통계가 나오자 개편에 나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가계동향조사 개편을 위해 정부는 관련 예산을 129억가량이나 증액했다.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야당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예산은 그대로 통과됐다. 대신 발표 시점은 내년 총선 이후로 못 박았다.
통계청이 지난 2015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삶의 질 지표’는 지난해 개편작업을 거치면서 정권에 불리한 내용이 대거 삭제됐다. 이로 인해 ‘2019년 3월 기준 삶의 질 지표 종합상황표’는 전기 대비 71개 지표 중 54개가 개선돼 논란이 됐다.
통계청은 지니계수, 고혈압 유병률, 당뇨병 유병률, 한부모가구 비율, 주거비용 등의 지표를 삭제하고, 대신 자가점유가구 비율, 토양환경 만족도, 소음 만족도, 녹지환경 만족도 등을 추가했다.
특히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를 제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은 “개편과정에서 지표의 변화추세(개선 또는 악화)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우리나라 가계 소득 수준을 분위별로 측정할 때 1인 가구를 포함하지 않는 통계청의 조사 방식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선 정부에 유리한 방식으로 조사방법을 바꾸도록 통계청을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3일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하위 20%(1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보다 2.5% 줄었다. 그런데 조사방식을 바꿔 1인 가구까지 합하면 올해 1분기 하위 20% 가구 소득은 오히려 증가한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강 청장 취임 후 통계청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통계마저 코드인사의 보은통계로 의심 받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통계청 관계자는 “사실 억울한 점도 많다”면서 “최근 논란이 되는 일들은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청장 지시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악화된 지표도 가감 없이 발표하고 있는데 일부 개선된 지표를 발표하면 조작이라고 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제가 보기에 강 청장은 취임 당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답답할 정도로 조심조심하고 있다”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강 청장이 소신대로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외부 눈치만 보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들이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배나무 밑에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고 하지 않나. 취임 당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오해 받지 않도록 잘 검토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예를 들어 중요한 지표들을 빼고 삶의 질이 갑자기 좋아졌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 최소한 구지표로 조사한 결과와 신지표로 조사한 결과를 동시에 공개해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왜 오해받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통계청 신뢰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전직 통계청장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