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양육는 아내의 의무” 가부장적 발언 논란…전문가 “폭행에 정당성 부여하는 위험한 시각”
전남 영암경찰서는 7일 특수상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남편 A 씨(36)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앞서 A 씨는 지난 4일 오후 9시부터 3시간 동안 전남 영암군 자택에서 베트남 출신 아내 B 씨(30)를 주먹과 발, 소주병 등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가해자 A 씨. 사진=연합뉴스
현장에는 두 살 배기 아들도 있었다. 온라인을 통해 퍼진 2분 33초짜리 영상에는 신발장 구석에서 구타를 당하는 B 씨 옆에서 오열하는 아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두 살배기 아들도 낚싯대를 이용해 세 차례가량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B 씨는 손가락과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아들은 아동기관에서 보호조치를 받고 있다.
가해자 A 씨는 7일 경찰에 긴급 체포된 이후 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내가 평소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것“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법원에 출두해서는 “언어가 달라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아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변명을 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 국제결혼피해자단체에서 “폭행을 유도하는 외국인 여성이 많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해 논란이 예상된다. 국제결혼피해자센터는 국제결혼 중개업체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이혼한 남성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다.
입장문은 8일 새벽 ‘베트남 아내 무차별 폭행사건에 대한 국제결혼피해센터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단체의 온라인 카페에 게재됐다. 운영자는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같은 한국 남성으로서 부끄럽다. 욕설과 폭행, 생활비 미지급 등 외국인 아내에게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남성의 상담 건수가 전체 1만 1000여 건 중에 수백 건이 넘는다는 사실을 양심적으로 고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은 수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사기결혼을 자행하고 있다. 아내의 당연한 의무인 임신과 출산, 양육은 하지 않고, 성관계와 가사일을 거부한다”며 “폭행을 유도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정말 많다”고 덧붙였다. 이어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가난 탈피를 목적으로 사기 결혼을 하고 있으며 선량한 한국 남성들은 억울하게 수천만 원의 돈을 뜯기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주장했다.
‘가정 폭력의 책임이 일부 여성에게도 있다’는 것은 이 비단 이 단체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사건이 보도된 7일 이후 다양한 국제결혼 피해자 카페에서 이와 유사한 의견을 가진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자 망신이다’ ‘무조건 남편의 잘못이다’ 등의 의견이 다수였지만 ‘베트남 여성이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고 구타를 유발한 것이냐’ ‘동영상 유출 경로가 어떻게 되냐’ ‘베트남 부인도 문제다. 한국 사람을 싸 잡아 욕 먹이려는 속셈이다’ 등의 글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는 일부 남성들이 그릇된 결혼관을 가지고 국제결혼에 임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문화가정 상담센터의 관계자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 아내의 당연한 의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가부장적 발상이다. 일각에서는 ‘일부러 폭행을 유발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특수한 경우에는 배우자를 때려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폭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위험한 발언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제결혼을 한 한국인 남편 중에는 성관계가 당연한 권리인데 왜 여자가 거절하느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분들은 더 그렇다. ’돈을 지불했는데 왜?‘라는 논리다. 이 경우 자신이 성관계 혹은 임신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아내가 성관계를 해주지 않으면 ’부당하다‘거나 ’여성의 잘못‘이라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압에 의한 성관계는 현행법상 강간죄에 해당한다. 2015년 부산지방법원에서 부부 사이의 강간죄가 최초로 인정된 이후, 부부 사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분명한 성범죄로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이주 여성의 가정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의 경우 2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내야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신분은 결혼 생활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주 여성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한 부부관계에서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입장문을 발표한 단체 운영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가해자 남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악질 중개업체가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라며 ”실제로 이주 여성이 중개업체와 도모해 남편의 폭행을 유도해서 이혼을 하게 됐다며 도움을 청한 남성을 상담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