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 역할 분담해야 시너지 효과…양 ‘보수층 껴안기’vs이 ‘지지층 결집’ 전략 충돌 시 총선 흔들
이해찬 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책사’다. 문재인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양 원장은 ‘권력 디자이너’로 통한다. 둘 다 선거 전략과 관련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 대표의 코치 역할은 확정됐다. 양 원장은 서울 구로을 출마설이 나오지만, 현재까지 선수로 뛰겠다고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차기 총선을 10개월 앞둔 현재 둘의 총선 롤은 판을 그리는 ‘선거 지휘자’다.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양 원장이 판을 깔면 당은 이를 수행하는, 일종의 인재영입 역할 분담에 합의하는 것이다. 21대 총선을 10개월 앞둔 현재 이들의 역할 분담은 순항 중이다. 이 대표는 6월 4일부터 사회 분야 장관을 시작으로, 18개 부처 수장을 만나는 ‘릴레이 오찬’에 나섰다. 양 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을 차례로 만났다. 이 대표는 정부 부처, 양 원장은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한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줄 세우기를 하는 관권선거”라고 비판했지만, 여권 내부에선 역할 분담에 대한 긍정론도 만만치 않았다. 애초 양 원장에게 민주당 싱크탱크 수장 역할을 제안한 것도 이 대표였다. 당 안팎에서 ‘이해찬·양정철’ 조합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양 원장 포지션이다. 양 원장은 7월 들어 ‘경제정책 네트워크’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이는 경제학자와 전직 경제 관료 등을 총망라한 인적·정책적 네트워크다. 총선 승부가 경제에서 갈릴 것으로 보고 민주당 수권정당화를 한층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홍남기 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의 차출설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경제정책 네트워크가 인재영입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월 정국의 포문을 연 ‘윤석열 청문회’가 이를 증명했다. 애초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검증의 핵심은 이른바 ‘소윤(小尹) 친형 사건’과 부인의 비상장주식 내부자 거래 의혹,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연을 겪은 만큼, 여권 내부에선 ‘황교안 청문회’로 이슈 돌리기를 한다는 전략까지 세웠다.
그러나 윤 후보자의 위증 논란과 함께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양 원장의 영입 제의’였다. 윤 후보자는 7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양 원장의 총선 인재영입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느냐’라는 주광덕 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출마하라고 간곡히 얘기했는데 제가 그걸 거절했다”고 밝혔다. 윤 후보자는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말 양 원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윤 후보자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무마하려던 정권 윗선에 반발, 대구고검으로 좌천했었다. 윤 후보자는 “2016년 고검 검사로 있을 때도 몇 차례 전화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없냐‘고 했으나 저는 그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월에도 만났다. 올해 초 만남은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 인사 직전인 지난 4월 양 원장을 따로 만나 검찰의 독립성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는 언론 보도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직에 부임하기 전이었다. 윤 후보자는 2월 만남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으나, 야권에선 “검찰총장직을 놓고 사전교감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야권의 한 당직자는 양 원장을 향해 “문재인 정권의 최순실”이라고 힐난했다. 양 원장 측은 올해 윤 후보자와의 만남 사실은 인정했지만, ‘검찰총장직 사전교감설’에 대해선 부인했다.
적어도 현재까지 드러난 양 원장의 역할은 그가 스스로 역할을 규정한 ‘총선 병참기지’를 넘어선다. 앞서 양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문희상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서훈 국가정보원(국정원) 원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여의도 안팎에선 “당 대표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양 원장을 향해 “궁중 정치를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당 내부에서조차 “나가도 너무 나갔다”라는 말도 들린다. 이 대표는 7월 말 출범 예정인 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아 ‘새 피 수혈’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두 개의 태양이 충돌할 개연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전 포인트는 충돌 시기·지점, 양자의 관계 설정과 이에 따른 내부 역학 구도 등이다. 이는 여권 권력 분화의 중대 분수령이다. ‘이해찬·양정철’ 조합에 균열이 발생한다면, 총선 공천 초반보다는 새 인물 수혈의 얼개가 그려지는 중·후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충돌 지점은 ‘영입 인사의 이념적 포지션’이다. 보수 인사 껴안기를 통해 중도 확장에 시동을 걸려는 양 원장과 집토끼(지지층) 결집에 총력전을 전개하려는 이 대표가 충돌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서 이 대표는 ‘보수진영의 궤멸’을 주장, 자유한국당의 극한 반발을 불렀다.
반면 양 원장은 그간 보수와 진보의 통합 정치를 주장했다. 양 원장을 곁에서 지켜본 한 대학교수는 “선거 승리를 위해선 보수와 전략적 동거를 기반으로 한 선거 전략을 짤 수 있는 게 양 원장의 힘”이라고 귀띔했다. 양 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시절에도 중도보수 인사 영입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 원장이 윤 후보자에게 영입을 제안한 것도 이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윗선에 반기를 들어 좌천했지만, 윤 후보자는 진보라기보다는 강골 원칙주의자에 가깝다. 검찰 출신인 민주당 한 의원은 “윤 후보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정치적 성향은 문 대통령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20대 총선 전은 문재인 대표 체제가 무너진 직후다. 외연 확장이 제1과제였다. 보수 끌어안기의 명분과 실익이 컸다. 하지만 현재는 정권을 탈환했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과반 안팎이다. 당 대표 입에선 장기 집권론이 끊임없이 나온다. 대안 야당 존재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대 총선 때보다 산토끼(비지지층)를 잡을 명분과 실익이 크지 않은 셈이다.
양자의 관계 설정도 변수다. 양 원장이 총선 공천 국면에서 로키 행보를 보인다면, 당내 분열을 가속하는 원심력은 최소화된다. 친노·친문 등 당 주류 분열의 문도 봉쇄할 수 있다. 다만 지금껏 드러난 양 원장의 행보만 보면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7월 9일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와의 정책협약을 위해 방중 길에 올랐다. 중국 중앙당교가 한국 정당 싱크탱크와 정책협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 안팎에서 “당 싱크탱크 원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간 양비(양 원장의 애칭)의 힘은 권력에서 한발 떨어진 ‘공간의 힘’에서 파생했다. 문 대통령의 특수 관계가 당 간판이 아닌 막후 조정자에 머무를 때 힘이 극대화됐다는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당 싱크탱크 수장이다. 총선을 앞두고 당의 최전선에 섰다. 연일 당 대표를 능가하는 광폭 행보를 한다. 권력에 바짝 붙은 양비가 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갈등은 ‘내부 갈등→총선 전략 미스→분열 원심력 증가→총선 실패’로 귀결한다.
반대로 이들이 공존에 성공하면, ‘성공적인 새 피 수혈→중도 외연 확장→당 구심력 증가→제1당 사수’로 이어진다. 다만 권력의 핵심인 이들의 관계 설정을 누가 할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선당후사 정신으로 스스로 역할 분담을 한다면, 총선 승리는 바짝 민주당에 다가온다. 하지만 BH(청와대)가 나서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총선 패배의 그림자는 민주당을 옭아맨다.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 이들의 관계 설정에 달린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