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상장사 꿀꺽’ 동업자끼리 갈등·배신…‘해결사’ 조폭, 감금납치 폭행 끝 살해
영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얘기는, 지난 5월 전라도 광주에서 발생한 국제PJ파 두목 출신의 50대 사업가 살인 사건을 정리한 얘기다. 상장사 H 사와 이를 인수하기 위해 동원된 J 사, 그리고 수많은 투자자들까지. 올해 초 강남에 돈 좀 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워낙 제안을 받은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사건의 내막을 처음 파헤친 ‘일요신문’이 은밀한 뒷이야기들을 구성해봤다. (관련 뉴스 ‘[단독] 50대 부동산업자 살인사건 알고보니 ‘무자본 M&A’ 둘러싼 갈등 때문’ 참조)
# A 씨의 제안, 그리고 시작된 M&A
별 다른 자본이 없었던 50대 사업가 A 씨. 그는 부산에 위치한 상장사 H 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기업 M&A 전문가 중 한 명이었던 이 아무개 씨(62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A 씨와 이 씨를 모두 잘 아는 투자자들에 따르면 A 씨는 ‘200억 원가량을 투자해서 함께 H 사를 인수하자, 그러면 경영권을 주겠다’고 이 씨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자금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이 씨는 지와이커머스 인수를 시도한다. 상장사이자 전자 상거래업체인 지와이커머스를 인수한 뒤 지와이커머스를 통해 자금을 융통, H 사 인수를 시도하려 한 것.
돈 앞에서 배신과 갈등이 결국 살인사건으로 연결됐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합니다. 일요신문DB
이 씨는 사채업자, 기업가 등 주변 지인들에게 10억~20억 원씩 투자받은 돈으로 지난해 지와이커머스 인수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와이커머스는 인수 전 기대했던 만큼 동원 자금이 풍부하지 않았다. 보유 부동산이 있었지만, 이미 채무가 발생해 원하는 만큼 돈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했다. 결국 H 사 인수까지 비용이 더 필요했던 이 씨는 사채업자 등 강남에 ‘돈 좀 있다’는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제안, 올해 3월 우여곡절 끝에 H 사 인수에 성공했다.
# 인수 뒤 돌변한 A 씨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수에 성공하자 A 씨는 그런 이 씨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 당초 약속을 저버리고, 본인과 가까운 사람을 내세워 경영권을 차지했다.
2014년 매출 626억 원(영업이익 87억 원), 2015년 매출 1215억 원(영업이익 144억 원), 2016년 매출 1033억 원(영업이익 66억 원)을 기록하며 알짜 중에 알짜였던 우량 중소기업 H 사. A 씨는 경영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이 씨는 궁지에 몰렸다. 이 씨는 게다가 지와이커머스 인수와 자금 조달 과정에서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됐다.
이 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경영권 문제와 관련해서 A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A 씨도 이 씨를 맞고소해 소송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와이커머스 경영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지난 2월 즈음, 이 씨는 도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A 씨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추궁을 하게 된다.
# ‘A 씨 협박 통한 해결’ 노렸지만…
그때 이 씨가 선택한 인물이 국제PJ파 조직폭력배 조 아무개 씨. 이 씨는 조 씨에게 “A 씨로부터 돈을 받아달라”는 취지로 해결을 요청한다. 이에 조 씨는 성공 보수를 약속받고 A 씨를 만난다. 하지만 A 씨는 조 씨를 상대로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흐름을 잘 아는 한 기업가는 “A 씨가 조 씨에게 수백만 원, 수천만 원 정도만 주면서 시간을 벌었을 뿐 약속을 결국 지키지 않았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지난 5월 A 씨는 경기도 양주의 한 주차장에서 손발이 묶인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 당일 범인들은 너무나 쉽게 검거됐는데, 60대 남성 2명은 ‘어린 A 씨가 반말을 해 홧김에 때렸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주차장 인근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은 자살 직전 이들을 검거했고, 경찰 수사 결과 조 씨가 미리 A 씨 납치 및 감금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주한 조 씨는 여전히 경찰에 검거되지 않았는데, 경찰은 “조 씨가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조 씨 검거 작전을 진행 중이다.
용의자 2명이 용의차량을 공용주차장에 유기한 뒤 인근 사거리에서 택시에 승차하는 장면. 사진=경기북부경찰청 제공
문제를 해결하려 조 씨에게 의뢰했지만, A 씨 사망으로 되레 언론에 관심을 받게 되며 더 궁지에 몰린 이 씨는 결국 검거된다. 검찰이 지와이커머스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4개월가량 이 씨는 차량 10여 대를 수시로 바꿔 타고 차명 휴대전화인 ‘대포폰’ 등을 사용하며 수사 기관의 추적을 따돌리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지만 A 씨가 숨진 지 10여 일 만에 검거되고 만 것. A 씨가 사망하면서 이 씨가 배후로 지목돼 수사당국이 더 신속하게 움직인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태권)는 이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 씨가 지와이커머스를 인수한 뒤 회사 자금 230억 원을 횡령하고, H 사 인수에 나섰다가 실패해 소액 주주들에게 260억 원대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씨는 “A 씨를 죽이라고 사주하지 않았다”며 A 씨 납치 감금 혐의는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반달(반건달)들도 개입”
A 씨와 이 씨를 잘 아는 사업가는 “A 씨가 피해자이긴 하지만, 결국 돈에 눈이 멀어 욕심을 부린 끝에 한 명(A 씨)은 사망, 한 명(이 씨)은 구속된 사건”이라며 “강남에 돈 좀 굴린다는 사람들 중에 이 사건에 제안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다. 돈 앞에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매물로 나오는 상장사에 설계자를 중심으로 3~4명 이상이 투자해 인수하고 주가 띄우기 등을 통해 이익을 약속하는 사례가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이 씨로부터 ‘지와이커머스 인수 자금을 빌려 달라’고 제안받았던 상장사 대표는 “이 씨가 회사 자금과 자기 자금을 구분하지 않고 쓰는 탓에 불안해서 투자를 하지 않았다”며 “최근 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G 사, S 사 등은 벌써부터 누가 돈을 모아 인수를 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진짜 기업을 운영해서 성장시키기보다는 주가를 띄우거나 회사 여유자금을 활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다가 투자자들끼리 서로 약속이 어그러지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탓에 소송은 물론이고 사람을 시켜 협박하는 것도 주변에서 종종 발생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앞선 사업가 역시 “10억~20억 원만 있어도 주변 사람들 돈을 끌어다가 회사를 인수하는 게 최근 트렌드인데,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이지 반달들(건달 출신들이 사업체를 꾸려 민간인처럼 움직이는 경우를 칭함)까지 개입되다 보니 상장사를 인수해 ‘한탕’ 하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