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낙선·자살기도 딛고 카운슬러 되려 자격증까지 땄는데…‘최근 겪은 충격적인 일이 촉발’ 얘기도 흘러나와
정두언 전 의원 빈소. 고성준 기자
7월 16일 정두언 전 의원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홍은동은 과거 정 전 의원 지역구였던 곳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오후 2시경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 자락길에서 산 쪽으로 올라갔다. 오후 3시 40분쯤 정 전 의원 부인이 “남편이 집에 유서를 써놓고 산에 갔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오후 4시 30분쯤 숨진 정 전 의원을 발견했다.
갑작스러운 정 전 의원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불과 8시간 전 생방송에 출연했던 그였다. 16일 형제 같은 사이로 알려진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야산 현장을 찾아 “정두언 전 의원이 그간 우울증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고, 상태도 호전됐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 전 의원이 최근 심경에 변화를 일으킬 충격적인 일을 겪은 것은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서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본인이 이 일을 감추고 싶어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 전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던 인사들은 ‘정 전 의원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 전 의원과 막역한 사이인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전 의원이 감옥에 가서부터 우울증이 본격화됐다. 그때 얼마나 억울했겠나. 약을 많이 먹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우울증을 앓는 티는 안났다.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았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은 2012년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법정 구속돼 10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어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친박이 장악한 당에서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아 20대 총선에 나섰지만 4선 도전에 실패하고 낙선한다.
낙선 이후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한국일보’ 인터뷰가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벨트로 목을 맸지만 벨트가 끊어져 자살에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고통에서 피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 자살을 택했다. 14층 건물에 불이 나서 불길에 갇힌 사람이 뛰어 내리는 거나 비슷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이어갔다. 인터넷 강의로 독학해 심리 상담사와 분노조절장애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나중에는 ‘카운슬러’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국당의 한 당협위원장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거의 매일 방송에 출연했고, 재혼한 지도 약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전화해서 안부라도 물어볼걸’, ‘찾아가 식사라도 할걸’하는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다들 알다시피 정두언 의원이 감언이설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쓴소리라도 해야 할 말은 했다. 그런 성정 때문에 고초도 겪었고 힘든 길을 갔다”며 “쓴소리하는 사람은 꼭 필요하지만 정 전 의원이 그런 역할을 맡아 더 힘들어한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과 친분이 있던 한 한국당 인사도 “식당을 열고 식사 한번 하고 가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정작 한번을 못 갔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한번 찾아가 볼걸’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고 토로했다.
정 전 의원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부터 황교안 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청래 전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조의를 표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부인과 개업한 식당에 때때로 가면 예의 쑥스러운 웃음으로 감사하던 정두언 의원! 영면하소서. 그곳은 모략도 없어 억울한 누명이 없을 거다. 미망인 등 유족들께 위로를 드린다”고 슬픔을 표했다.
보석 상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재오 한국당 상임고문을 통해 유족에 조문 메시지와 근조화환을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은 보석 조건 때문에 직접 조문은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정 전 의원 부인이 발견한 유서에는 자필로 “가족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장례는 크게 치르지 마라. 조용하게 치러 달라. 어머니 옆에 화장해서 묻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서에 “여보 사랑해”라고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