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이대론 안된다” 공감대 있지만…손측, 보유 자산·공천권 탓 탈당 원치 않아
민주평화당이 잦은 갈등 끝에 ‘제3지대’ 구성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에서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로 정계개편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은 2017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박은숙 기자
이 같은 논의 중심에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있다. 박지원‧유성엽‧천정배 의원 등은 정 대표가 자신의 측근을 최고위원으로 임명시키는 등, 당을 사당화하고 있다며 운영방식에 연일 불만을 제기했다. 반면, 정 대표 측은 이들이 당 운영에 협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권을 잡기 위해 대표를 흔들고 있다고 반박한다. 오래된 갈등 끝에 당에는 10인 규모의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가 구성됐다. 유성엽 원내대표가 그 중심이다.
정치권은 이 연대에 주목하고 있다. 제3지대인 신당 창당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반대하고 있다. 정 대표 측 관계자는 “제3지대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먼저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언제 어떻게 (제3지대를) 꾸릴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제안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건 실체 없는 주장이다. 단지 당권을 교체하기 위한 저의가 숨어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평화당은 당 대표와 10인의 의원들로 갈라져 갈림길에 선 상황이다. 10인의 의원들은 바른미래당의 ‘일부’와 손을 잡길 원한다.
제기되는 시나리오는 둘이다. 하나는 평화당의 ‘박지원파’와 바른미래당의 ‘손학규파’가 각자의 당을 탈당한 뒤 새로운 당, ‘제3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박지원파 10인과 손학규파 약 9인으로 예상되며 이들이 새로운 당을 꾸리게 되면 2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할 수 있어 교섭단체 구성 기준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신당은 과거 국민의당의 모습과 유사해진다. 이미 실패를 확인한 ‘도로 국민의당’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현 바른미래당에 박지원파가 입당하는 ‘흡수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많다. 현재 바른미래당 그 자체로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연일 마찰음만 내고 있는데, 여기에 호남을 기반으로 한 박지원파가 입당할 경우 더 큰 갈등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을 띠는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뿐 아니라 국민의당 출신 안철수계 또한 호남지역 출신 없이 대부분 비례대표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거셀 수 있다. 결국 두 시나리오 중 전자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박지원파가 그리는 제3지대는 어떤 모습일까. 제3지대 논의 중심에 있는 한 관계자는 “‘어게인 국민의당’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국민의당의 ‘호남 버전’을 피해야 한다. 노골적인 ‘호남당’은 지양하고 외연확장을 시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로 국민의당’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차피 우리 의지로 국민의당을 깬 건 아니지 않나. 안철수 전 대표가 당을 깨고 바른미래당과 통합한 거니, 여기에 대해선 그리 창피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
2017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정동영 대표. 박은숙 기자
제3지대 시나리오 논의는 수개월 전부터 움직임을 보여 왔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를 주축으로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과 접촉하며 방법을 모색했다. 앞서의 이 관계자는 “지난 몇 달 전보다 훨씬 윤곽이 드러난 상황이다. 결사체가 눈으로 보이고 민주평화당 내에서 10명가량이 뜻을 같이 하겠다고 밝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만, 시기에 있어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대답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조건을 달았다.
제3지대 구성에 있어서 손 대표의 결단이 중요하단 의미다. 하지만 손 대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손 대표 최측근은 제3지대 논의에 대해 “당권파가 조직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물론 의원들 개개인끼리 이야기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그는 이어 “손 대표와 우리는 당을 잘 지켜서 이곳을 제3지대의 베이스캠프로 만들길 원한다. 이 집이 좋지 않나? 이쪽으로 모이길 원한다”고 흡수설을 강조했다.
이어 손 대표 최측근은 “고생스럽게 괜히 벌판으로 나가지 말자는 것이 손 대표의 초지일관 자세다. 제3지대가 있다면 그건 바른미래당이다”라고 말했다. 제3지대 구성에는 찬성하나 당을 떠날 의지는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앞서 평화당 내 제3지대 추진 관계자는 “손 대표를 주축으로 한 당권파는 3지대를 만들고 싶어도 섣불리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당이 매일 아침마다 몸싸움에 고성을 질러도 저렇게 버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평화당 관계자가 밝힌 ‘바른미래당 당권파가 탈당을 원치 않는 이유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 바른미래당이 보유한 기존 자산이다.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수십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바른미래당을 박차고 허허벌판으로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계산이다. 둘, 손 대표는 현재 당 대표로 공천과 비례대표 선정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지대로 넘어가게 될 경우, 이 같은 입김이 작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손 대표가 지금 당을 박차고 나오기엔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는 해석이다. 바른미래당 내홍이 점입가경인 이 시점에서 손 대표의 탈당은 마치 쫓겨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손 대표가 제3지대 구성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제3지대라는 공동 목표에는 뜻을 함께하지만, ‘당을 나갈 순 없다’는 손 대표와 ‘당을 나가야 한다’는 평화당 일부 의원들의 온도차 때문에 제3지대 구성은 꽤 많은 시일이 소요될 수도 있다.
손 대표를 중심으로 한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들이 제3지대로 뛰어들면, 바른미래당은 바른정당 출신 의원 등만 남게 되며 교섭단체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바른정당 출신인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이 시나리오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 최고위원은 “가능성이 낮다. 아니, 서로를 흠집내려 하는 말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어 “손 대표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당위성과 현실성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형태의 제3지대를 구상하는지 먼저 알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손학규파와 박지원파가 손을 잡아 제3지대 구성에 성공할 경우, 범여권은 21대 총선에서 다섯 갈래로 갈라질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제3지대당, 정 대표가 남은 평화당, 정의당, 그리고 무소속. 최악의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게 하루이틀인가. 과거 선거에서도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에서 다 후보를 쏟아내고 선거에 임해 왔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