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LG화학 연이은 대규모 투자…구 회장 “소재 국산화에 최선 다할 것”
최근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주로 이슈가 되는 회사는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LG그룹도 긴장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품목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부품이다. 다른 규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 역시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과정에서 사용된다. LG디스플레이가 이번 일본 수출 규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잠정) 11조 원 이상을 거둔 대기업이다.
강인범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산업미래전략포럼에서 “불화수소만 약간의 문제가 있고, 그 외에는 큰 영향이 없다”며 “불화수소는 중국과 대만에도 있고, 재고를 정확히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LG디스플레이가 국산 불화수소 시험생산을 눈앞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LG디스플레이의 매출 규모는 크지만 올해 상반기 5000억 원의 잠정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은 좋은 편이 아니다. 사진=박정훈 기자
LG디스플레이의 매출 규모는 크지만 올해 상반기 5000억 원의 잠정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은 좋은 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3일 경기도 파주시 P10 공장 내 10.5세대 OLED에 3조 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혀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투자가 일본의 수출 규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적과 전망이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의 투자 발표 후에도 당장의 실적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G디스플레이는) 파주 E6 및 광저우 팹(공장) 가동에 따라 감가상각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영업손실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2019년 실적은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해 보이지만 2020년 실적은 소폭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LG디스플레이는 이처럼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향후 수출 규제가 확대되면 다른 LG그룹 계열사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배터리 사업을 하는 LG화학의 경우 일본산 소재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면 제품 생산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했는지 정호영 LG화학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는 24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난이도와 부가가치가 높은 모델을 중심으로 양극재 내부조달 비율을 20% 초반에서 35% 수준까지 늘릴 예정”이라며 “국내 협력업체들로부터 조달하는 비중까지 합치면 3~4년 후에는 국내업체 비중이 50%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 사장에 따르면 LG화학은 현재 양극재의 20%를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고 나머지 80%는 일본, 중국, 국내 협력업체 등에서 조달받고 있다. 정 사장은 “(LG화학이) 한일관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구조지만 상황을 살펴보며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LG트윈타워 앞. 사진=박은숙 기자
지난 25일에는 LG화학이 양극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약 5000억 원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신설하는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구미시 국가산업 5단지에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번 협약은 정부가 추진 중인 ‘구미형 일자리’의 첫 번째 사업 모델이다. 구미형 일자리는 기업이 100% 투자하는 ‘투자촉진형’ 일자리 모델을 뜻한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이번 구미 투자를 시작으로 핵심소재 내재화를 통한 국산화율 제고에 박차를 가해 전지 분야의 사업경쟁력을 더욱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양극재 공장이 완공되면 LG화학의 ‘소재 국산화’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LG화학 스스로도 공장 건설 이유 중 하나로 ‘배터리 핵심 원재료의 내부 수급 비중 확대’를 꼽았다. 25일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LG이노텍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이 15일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LG이노텍의 전체 부품 공급사 133개 사 중 15.8%인 21개 사가 일본회사다. LG화학의 부품 공급사 중 일본회사 비율은 9.1%다. LG이노텍은 LG화학이나 LG디스플레이에 비하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지난해 매출이 약 8조 원에 달해 무시할만한 계열사는 아니다.
이처럼 주요 계열사가 일본으로부터 적지 않은 부품을 공급받기에 LG그룹 입장에서 이번 수출 규제가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현 정권의 실세 중 한명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만나는 등 정치권과의 소통도 적지 않게 하고 있다. 양 원장은 LG그룹만 만난 게 아니라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등 4대그룹을 모두 만났지만 LG경제연구원을 첫 번째로 만났다.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내용 등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정·재계에서는 추가 규제를 기정사실로 보고 적지 않게 우려하고 있다. 이달 초 일본 출장을 다녀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나 지난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소재 국산화’와 관련한 설전(?)을 벌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비교하면 구광모 회장의 행보가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대신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주요 경제인의 만남에서 구광모 회장이 “국내 소재 부품 산업 육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고, LG화학의 행보 등으로 보아 장기적으로 소재 국산화에 최선을 다할 듯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