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수사 간부마저 떠나 “좋아 보이는 자리가 계속 좋은 건 아니다”
인사 발표 후 처음에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했던 검사들이나 공안통 검사들이 좌천성 인사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다소 바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사했던 한웅재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사법연수원 28기)이 “지금 좋아 보이는 자리도 계속 좋은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의미심장한 인사를 남기고 검찰을 떠났을 정도다.
법무부는 2일 26명을 이동시키는 후속 인사를 발표했고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도 사태 진화에 직접 나섰지만, 후속 인사 직후에도 이선봉 군산지청장(27기), 특수통 배종혁 서울고검 검사(27기)와 박광배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29기) 등 실력파 검사들의 사의가 잇따랐다.
이번에 사의를 표한 검사들 대부분이 중간간부라는 점이 검찰 입장에서 뼈아프다. 사법연수원 20기부터 30기까지, 검찰 내에서 검사장 및 차장, 부장검사로 일선을 지휘할 연차들이 대거 옷을 벗었다. 함께 일하던 선배들의 사의를 보는 검사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이종현 기자
# 문재인 정부 수사 검사 사의? 박근혜 수사 검사도 사의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한웅재 경주지청장(28기)이 지난 2일 사의를 밝혔다. 한 지청장은 당일 오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지난 밤 고민 끝에 사직 인사를 올리고자 한다”고 운을 띄우며 글을 남겼다.
그는 “사실 2016년 10월 무렵 어떤 사건을 맡아 수사하며 잘 되든 못 되든 수사팀장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사직서를 써놓았는데 사람이 부족해 때를 놓쳤다”며 “이제야 제대로 사직의 변을 한다”고 담담히 소회를 털어놨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으로 박 전 대통령 등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이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박 전 대통령 대면 조사를 담당했던 한웅재 지청장. 2002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 대검 연구관과 형사1과장·공판송무과장 등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이번 인사에서도 안산지청 차장검사라는 중요 보직을 받은 그였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사건 수사·재판을 하면서 또 이런저런 간접적으로, 사람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고 지금 좋아 보이는 자리, 권력, 재물이 계속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사의를 밝혔다.
이례적인 규모의 사의 표명에 윤석열 총장은 6일 대검찰청 청사 1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9 하반기 검사인사 대검 전입신고’ 행사에서 “여러분께서 맡은 보직이 기대했던 보직일 수 있고 또 기대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내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며 어수선해진 검찰 내부 분위기 추스르기에 나섰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지난 7일에도 노승권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사법연수원 21기)이 사의를 밝히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후 인사로만 고위간부(검사장 이상) 15명, 중간간부까지 합치면 모두 67명의 검사가 검찰을 떠났다. 통상의 경우 20명 안팎의 검사가 사의를 표하고 조직을 떠나는 것을 감안할 때,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특히 봉욱 서울동부지검장, 노승권 연구위원 등 후배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선배 검사들의 잇따른 사의 표명은 검찰 내에 적지 않은 파장을 주고 있다. 중간간부 검사는 “정치적으로 현 권력이 원하는 수사를 해야 좋은 자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대놓고 보여준 인사”라고 평가했다.
# 청와대 겨냥한 검사들, 묵직한 사의 표명
정치적인 사건을 맡았다가 옷을 벗고 나온 몇몇 검사들은 솔직한 감정을 토로했는데,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적지 않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동부지검 주진우 부장검사(31기)도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이라는, 좌천성 인사를 받자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사직 인사를 올렸는데 그는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 능력·실적·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단 느낌을 받았다”며 “공직관이 흔들리는데 검사 생활을 더 이어가는 게 국민과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명예롭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직접 사건에 대해서도 직접 거론했다. 그는 “지난 1년간 환경부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법리검토와 토의, 조율을 거쳤고 의견이 충돌할 땐 검찰총장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를 통해 결론을 냈다”며 “전 정치색이 전혀 없는 평범한 검사다. 아는 정치인도 없고, 그 흔한 고교 동문 선배 정치인도 한 명 없다. 정치적 언동을 한 적도 없고, 검찰국에서 발령을 내 어쩔 수 없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 모습. 이종현 기자
이보다 앞서 사의를 표명한 주진우 부장검사의 상관, 서울동부지검 권순철 차장검사(25기)도 인사 직후 이프로스를 통해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며 서울고검 검사 발령에 대해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그는 주변에 “(원래는 있었지만) 이제 아쉬움은 없다”고 사직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 내에서는 “검사로 맡은 바 일을 다 한 게 좌천의 이유가 된다면 앞선 박근혜 정권 때와 다를 게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이 취임하면서 검찰의 독립성이 전보다는 확보될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인사가 나면서, 여권을 겨눈 정치 수사 담당 검사들이 대부분 좌천성 인사를 받은 것을 보고 ‘변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며 “검찰을 인사로 장악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판단은 여전하고 윤석열 총장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전 총장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좋은 보직을 받은 한 검사 역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는 선배, 후배 검사들이 너무 많이 옷을 벗고 나가 안타깝다”며 “특수통이 약진하다보니, 혹시나 하며 미리 사직을 준비했던 간부들이 대거 사의를 표명했고 그러다보니 동기나 인근 기수 검사들도 마음이 많이 흔들린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좋지 않다”고 얘기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전관 대거 시장 진입 변호사업계 표정은? 서초동은 검찰 발 전관 변호사들의 대거 시장 진입을 앞두고 화색과 우려가 교차한다. 추가로 이어질 평검사 인사까지 감안하면 최소 70여 명 이상의 검사 출신 변호사가 서초동 변호사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인데, 워낙 규모가 큰 탓에 전관예우를 확실하게 받는 이는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2년 전 나온 한 전관 변호사는 “최근 서초동 시장이 너무 죽어서 힘든데, 왜 지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처럼 전관이라고 무조건 재미를 보는 시장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차장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예전에 실수익이 3억~4억 원 정도 됐다면 이제는 그보다 못하다”며 “검사장 출신들은 대형 로펌도 가지 못하는데, 검사장 출신들의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이번에 사의를 표한 일부 중간간부급 검사들 중에는 변호사 시장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대기업 법률 파트 임원 등을 검토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형 로펌이나 사세 확장을 노리는 소형 로펌들은 인재 채용에 발 벗고 나섰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대거 시장에 나왔기 때문. 변호사 20여 명 규모의 소형 로펌 대표 변호사는 “올해 사의를 표한 검사들 중 능력이 있는 일부 검사들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매년 변호사 시장에는 ‘전관을 찾는 수요’가 있다는 설명도 빼먹지 않았는데, 그는 “한꺼번에 워낙 많은 검사들이 시장에 나온 탓에 내부에서 평이 좋고 변호사로도 잘할 것 같은 인재는 몸값이 높겠지만 그렇지 않은 검사들은 마냥 상황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