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대권 행보 및 내년 총선과 맞물려 정치적 해석 난무…중재 나선 청와대도 대략 난감
21대 총선, 20대 대선, 지역민의 반발 등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 사이에서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멈춰 있다. 사진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일요신문DB
서울시의 세종로 지구단위계획 구역 및 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고시의 핵심은 사직로 우회도로 신설이다. 이를 통해 경복궁과 연결되는 역사광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계안대로라면 정부서울청사 앞은 광장으로 만들고 청사 뒤는 6차선 도로가 자리를 잡는다. 광화문 월대 복원 등을 위해 사직로~율곡로 구간의 기반시설을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도로가 정부서울청사 후면까지 넘자 결국 행안부가 제동을 걸었다.
행안부 정부청사관리본부는 7월 30일 서울시에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는 “시민단체 및 언론 등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해 대중교통 체계 미흡, 미래 청사진 부재, 소통 없는 일방적 추진 등을 지적하며 충분한 논의의 필요성과 사업 추진 일정 등에 대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전반적인 사업 일정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는 반격에 나섰다. 8월 8일 서울시 측은 “최선을 다해 행안부의 의견을 경청하고 사실상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해 실무적인 반영이 이뤄졌음에도, 행안부가 공문까지 보내며 반대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시 측은 서울시가 1월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을 발표하고, 행안부와 협력을 약속한 뒤 세 차례에 걸친 청와대 주관 차관급 회의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10여 차례의 실무협의를 통해 행안부의 요구사항을 수용했다고 밝히며 당위성을 주장했다.
서울시는 새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한 세종로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고시했고, 이에 행안부는 9일 “실시계획인가 등 추가적인 절차를 진행할 경우, 정부서울청사 편입토지 및 시설물 등에 대한 추가 논의가 어렵다”는 내용의 ‘경고성 공문’을 또 다시 보내며 양 기관의 입장차가 더 벌어졌다.
이 논란의 시작은 1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당선작 ‘깊은 표면’) 발표 때에도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과 박원순 시장의 갈등이 있었다. 당시 사업안에는 광화문 앞에 역사광장을 조성하며, 이 역사광장 안에 정부서울청사 건물과 주차장, 부속 건물을 포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안부가 지적한 당선작의 문제점은 이 역사광장에 청사 주차장과 도로, 경비대, 어린이집, 안내실 모두 편입된다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당시에도 김 전 장관은 ‘(주차장, 안내실 등이 모두 편입되고) 청사 건물만 남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의미로 지적했었다. 김 전 장관은 어린이집을 살리기 위해 그 앞 도로를 3차로로 만들고, 서울지방경찰청 앞도 3차로로 만드는 의견 등을 제시했다. 싸움을 유발한 건 아니었고, 단순한 제안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 전 장관 시절부터 시작된 갈등이 진영 장관으로 바뀌어서도 봉합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행안부 측은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곳 주민들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대한 반발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확장에 대한 주민 설명회를 열었을 때, 물론 반발이 있긴 했지만, 광화문 광장 사업에 대한 것보다는 지금의 집회 시위 때문에 힘든 점을 토로하더라. 일상 생활의 자유가 너무 침해받는다는 불만이었다”며 “여기에 사업 소개를 하니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행안부가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 진위를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청 내부를 잘 아는 외부의 한 공무원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건 사실이다. 평창동과 사직동 주민들은 대중교통 이용률이 낮고 자차 이용률이 높다. 현재도 집회와 시위 때문에 교통 체증에 대한 불만이 큰데, 역사광장을 만들고 차선을 줄인다니 반발이 안 터져나오겠는가”라며 “아무래도 서울시는 현재 너무 조급한 면이 있다. 박 시장의 대권 출마를 염두해두고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자꾸 행안부가 안 따라와주니 다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완공 목표는 2021년 5월이었다. 박 시장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다. 20대 대선은 같은 해 5월 실시될 예정이며, 대권을 준비하는 박 시장 또한 이를 위해 시장직에서 일찍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시장의 임기와 연결 짓는 건 적절치 않다. 2021년 5월 준공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건 수많은 시민이 지나다니고 차량이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부인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박정훈 기자
다수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구성된 서울시의회 또한 이번 사업에는 소극적이다. 박 시장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라 할지라도, 지역구와 직결된 시 의원들이 지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병국 민주당 서울시의원(종로1)은 “광화문 광장 재조성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광장을 기획했어야 했는데 현재 광장 재조성은 조급하게 추진되는 면이 있다”며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앞서의 서울시청 외부 공무원은 “정부 측에서 21대 총선을 염두하고 제지에 나섰다는 것도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종로가 우리나라 총선의 핵심이자 상징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공사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행안부를 앞세워 사업을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하지만 ‘집무실 이외의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고, 공약 사업을 총괄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측은 “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청와대는 현재 서울시와 행안부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태까지 청와대 측과 세 번 정도 회의를 거쳤다. 청와대가 양쪽의 조정을 잘 해줬다”고 밝혔다. 앞서의 서울시청 외부 공무원도 “갈등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니 서울시가 청와대에 중재를 요청했다더라. 그리고 청와대는 신경은 쓰는 것 같은데 간섭까진 못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