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구조조정·화학계열사 인수합병 박차…신동빈 부재 상황 대비 신동빈 체제 굳혀놓기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구리점 전경. 롯데가 유통업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어 화학계열사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사업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성준 기자
롯데가 최근 1년간 어느 때보다 빠른 사업개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신 회장이 지난해 10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부터다. 지난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지난 4월 버거킹재팬홀딩스 전 지분을 한국 버거킹 최대주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구조조정은 온라인 채널 성장에 직격탄을 맞은 오프라인 유통업에서 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부터 전국 부실 점포를 정리해 올해 롯데백화점 안양점·부평점·인천점을 차례로 매각했고 대구 영플라자와 롯데아울렛 의정부점은 영업종료했다. 내달엔 자산유동화를 위해 롯데리츠를 상장한다. 롯데쇼핑 운영 점포들을 롯데리츠에 매각한 뒤 부동산에 대한 고정 임차료를 재원으로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사업은 지속하되 매각대금으로 이커머스 등에 투자한다는 전략이다.
사업개편의 신호탄이었던 화학계열사 인수합병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10월 신 회장이 수감생활을 끝낸 직후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으로부터 롯데케미칼 지분 23.24%를 매입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일본 롯데홀딩스 영향력이 미치는 계열사를 인수해 신 회장의 지배력을 공고히하고, 석유화학사업 경쟁력도 높인다는 차원이다. 롯데케미칼은 올 8월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기로 했고, 같은 달 일본 히타치그룹 계열사 히타치케미칼 인수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롯데지주는 지난해 11월 물류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롯데로지스틱스를 합병 발표했고, 지주사 행위제한 요건을 준수하고자 지난 5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금융계열사 매각에도 속도를 냈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금융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으며 지주사 전환 이후 2년 이내 이를 해소해야 한다. 롯데지주는 2017년 10월 출범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가 유통업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어 화학계열사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사업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는 이유와 관련해 아버지 신격호 전 회장 체제에서 벗어나 신동빈 회장의 ‘원톱체제’를 공고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훈 기자
롯데의 최근 사업구조 개편은 신격호 명예회장 세대와 다른 신동빈 체제를 확실히 구축하려는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금융계열사 정리, 오프라인 점포를 매각하고 이커머스 투자, 화학계열사 인수합병 등 일련의 행보는 주력 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지속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이라는 것.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세대엔 부동산이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여서 무작정 늘렸다면, 신 회장은 요즘 시대 분위기와 경제에 맞게 부동산 가치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합법적인 규제 틀 안에서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체제를 개편해 나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도는 지주사체제 전환을 통한 신 회장의 지배력 강화다.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롯데지주와 호텔롯데의 양대 축으로 나뉜 상태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계열사들이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신 회장은 롯데지주 아래 알짜 계열사들을 편입하거나 구조조정으로 효율화에 나서는 등 영향력을 키워왔다. 그럼에도 호텔롯데는 여전히 롯데건설, 지알에스, 알미늄 등 여전히 많은 계열사를 지배 중이다. 결국 일본 롯데홀딩스의 호텔롯데 지분율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은 호텔롯데를 상장하려 했으나 줄곧 미뤄졌다. 2016년 사드사태, 올해는 반일감정 확산과 롯데 불매운동으로 계열사 주가 하락 등 상장에 불리한 환경이 됐다. 여기에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신 회장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신 회장도 상고심에서 파기환송되면 오너리스크가 불거지고 지주사체제 완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일본롯데에서 벗어나 아버지 세대와 다른 요즘 시대에 대응해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 회장 마음이 급했을 것”이라며 “파기환송 리스크를 고려해 오너 부재 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동빈 체제 위주의 사업개편을 서둘렀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상고심을 앞두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처럼 파기환송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신 회장과 신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 전 부회장은 6월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5번째 복귀 시도에 나섰지만 본인의 이사 선임안이 부결되면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는 재기 의사를 버리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최대주주 광윤사의 대표이사로, 지분 ‘50%+1주’를 보유 중이다. 신 회장이 파기환송 등으로 위기에 처하면, 신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로서 주총을 소집해 이사직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오너가 수감되면 롯데 여론과 신뢰도가 나빠지고, 의사결정에도 차질이 생겨 사업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며 “신 전 부회장이 이러한 틈을 타 경영권에 재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삼성 이재용 파기환송에 롯데도 긴장감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롯데그룹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라고 인정한 만큼 신동빈 회장 상고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신 회장은 면세점 사업권을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는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 6월에 추징금 70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으나 2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고 판단해 처벌 수위를 집행유예 4년으로 낮췄다. 그러나 대법원이 신 회장의 뇌물공여를 정부 압력이 아닌 대가성 있는 묵시적 청탁으로 판단해 파기환송할 경우 형량이 커질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가중돼 실형을 선고받으면, 신 회장도 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으로 뇌물 인정 범위와 형량이 늘어나면서 실형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신 회장 상고심도 국정농단과 관련한 뇌물 혐의라는 점에서 삼성 재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봤다. 신 회장이 실형을 받으면 원톱체제가 흔들리는 건 물론 그룹 차원의 사업 추진력도 약해질 수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신 회장이 수감생활 직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의 공백 기간에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사업 추진이 불가했었음을 반증한다“며 ”의사결정은 안건마다 수백 수조 원의 돈이 걸려 있는데, 오너가 수감되면 이를 결정하고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