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기기 파일 공유 기능으로 음란 사진 전송…‘미리보기’ 때문에 수락 전에도 이미지 보여
‘에어드롭’이란 애플 기기에 내장된 파일 공유 기능으로, 무선 통신을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 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를 악용한 범죄는 주로 출퇴근길 혼잡한 대중교통 안에서 벌어지며, 대다수가 가해자인 남성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여성들에게 무작위로 음란 사진을 보내는 식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일본에서 성행하는 이 신종 범죄는 그 피해 대상이 여성뿐만 아니라 미성년자까지 될 수 있다는 점, 가해자를 색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바바리맨이 첨단기술과 만나 디지털화되고 있다. 미국 영국에서는 무작위로 음란 사진을 전송하는 ‘에어드롭 치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지난 2017년 7월,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브리타 칼슨(28)은 콘서트를 보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중 ‘에어드롭’으로 쪽지 하나를 전송 받았다. 아이폰 화면에는 ‘아이폰1에서 쪽지를 공유하려고 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팝업창이 떴다. 무심결에 ‘수락’ 버튼을 누른 그는 이어 나타난 사진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칼슨은 “남성 성기를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역겨움을 토로했다. ‘빨대(Straw)’라는 제목으로 전송된 이 파일의 발신자는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칼슨은 “누군가 나에게 진짜 성기를 노출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몸서리쳤다.
누가 사진을 보냈는지 알아내기 위해 칼슨은 객차 안을 미친듯이 둘러봤지만 끝내 의심이 갈 만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프랭키 내비쉬(35)라는 여성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펜역에서 막 기차에 올라탔을 때 그는 아이폰 화면에 초대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에두아르도의 사진’이라는 제목의 이 메시지에는 남성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내비쉬는 “아이들이 갖고 있을 수도 있는 스마트폰에 그런 사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니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며 분노했다.
불행한 것은 칼슨이나 내비쉬의 경험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뉴욕의 많은 여성들이 지하철이나 기차 안에서 원치않는 성기 사진을 전송받은 경험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으며, 수많은 누리꾼들 역시 앞다퉈 SNS를 통해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방금 누군가 지하철 안에서 나한테 성기 사진을 보내려고 시도했다. 제발 좀 그만했으면”이라고 분노했는가 하면,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바바리맨들이 심지어 미성년들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누군가 열네 살인 내 딸한테 성기 사진을 보낼까봐 항상 불안하다. 그건 엄연히 불법 행위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런던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런던에 거주하는 로레인 크라이튼-스미스(34)는 지난 2015년, 사우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출근하던 중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낯선 남자로부터 두 장의 혐오스런 성기 사진을 전송 받았던 것이다. ‘에어드롭’을 통해 전송된 이 사진에 대해 그는 BBC를 통해 “마치 첨단기술에 의해 성추행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다른 아이폰 사용자와 사진을 주고받느라 ‘에어드롭’을 켜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폰 화면에 남자 성기 사진이 뜨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진 전송을 거부했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또 다른 사진이 전송됐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이 틀림 없었다. 나는 성추행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고, 매우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종 범죄인 ‘사이버 바바리맨’이 가능한 것은 애플의 ‘에어드롭’ 때문이다. ‘에어드롭’은 애플이 2013년 iOS 7을 출시하면서 도입한 파일 공유 기능으로, 현재 아이폰5 이상의 기기에서 지원되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모든 애플 제품에 내장되어 있으며, 애플 기기 간에 메모, 사진, 동영상 등 대용량 파일을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를 사용해서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
단, 파일을 공유하려면 반드시 애플 기기를 사용해야 하며, 파일을 주고받는 사용자들이 서로 10m 반경 이내에 있어야 한다. 이때 공유 범위는 수신 설정을 어떻게 해놓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수신 설정을 ‘모두’로 해놓았을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파일을 수신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우가 바로 앞서 말한 ‘에어드롭 치한범’들에게 희생되는 경우다.
이와 달리 수신 설정을 ‘연락처만’으로 해둘 경우에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 간에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수신 끔’으로 설정할 경우에는 아예 ‘에어드롭’ 기능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전송 받았을 경우, 미리보기로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난다는 데 있다. 영국의 보안 컨설팅업체인 ‘펜 테스트 파트너스’의 켄 먼로는 “‘에어드롭’에는 전송된 이미지를 볼 수 없는 선택권이 없다. 사용자가 수락하거나 거절하기 전에 미리보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누군가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보낸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순간 화가 날 수도 있지만, 그 사진을 저장한 다음 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실제 지난 2017년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중 비슷한 경험을 했던 영국의 ‘허핑턴포스트’ 기자는 무려 120장의 음란 사진을 전송 받자 스크린샷을 찍은 후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 영국경찰은 급증하는 ‘에어드롭’ 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관련 사이버범죄 전담부서를 설치한 상태다. 피해자가 수사를 의뢰할 경우 영국교통경찰은 휴대전화를 분석하고 용의자의 데이터 전송을 추적한 후, CCTV 영상이나 목격자 진술과 같은 물리적 증거와 정보를 연결해 수사를 진행한다. 이렇게 수집된 모든 증거들은 법정에서 범죄자들을 재판에 넘기는 데 사용된다.
영국교통경찰의 형사과장인 케이트 포시스는 “첨단기술 뒤에 숨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결국에는 누구나 디지털 발자국을 남기게 되며, 체포된 후에는 성범죄자 등록부에 이름을 올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노출증 환자들이 ‘에어드롭’을 이용한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익명성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범죄 행위가 혼잡한 대중교통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붙잡힐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음란 사진들을 보내는 사람들은 희생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은밀하게 지켜보면서 재미있어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 홋카이도 분쿄대학의 마코토 와타나베 교수는 “이 사람들의 행동 뒤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이다. 비록 그 방법이 불법이고 상대에게 거절당하는 것이라 해도 다른 누군가의 삶에 관여함으로써 약간은 외로움이나 불행한 마음을 덜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짓이 잘못되었거나 범죄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브래드 잘츠만 섹스중독 치료사는 “과거 ‘바바리맨’들은 바바리코트를 입고 공공장소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체포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야말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구 날뛸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로서 ‘에어드롭 치한’에 대한 가장 유효한 대응 방법은 평소 ‘에어드롭’ 수신 설정을 ‘연락처만’이나 ‘수신 끔’으로 설정해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한 누리꾼은 아예 아이폰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령 ‘오카자키 경찰서1042’나 이와 비슷한 식으로 바꾸는 방법이 그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에어드롭 치한’에 떠는 일본 일본의 경우에도 근래 들어 ‘에어드롭’ 관련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골치를 썩고 있다. 이에 일본 경찰들은 ‘에어드롭’ 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 트위터에는 여러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받은 음란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더나주(TheNazu)’라는 사용자는 벌거벗은 두 남자가 산 정상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사진을 공유하면서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는가 하면, 또 다른 사용자는 속옷 차림에 디즈니 만화 캐릭터 탈을 쓴 한 여성의 사진 스크린샷을 올리면서 자신도 당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우연이긴 했지만 한 남성도 ‘에어드롭 치한’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지난 7월, 후쿠오카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한 34세 남성은 자신의 아이폰에 전송된 알몸의 여성 사진을 포함한 다수의 음란 사진을 보고는 화가 치밀었다. 사진을 전송받은 이 남성은 범인을 찾기 위해 객차 안을 둘러보았고, 이내 용의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의자는 객차 안에 있는 여성 가운데 누가 당황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가 범인이 맞다고 확신한 남성은 니시진역에서 내리는 용의자를 따라 내렸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던 용의자는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37세의 사무직 종사자였던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사진을 받은 여성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후쿠오카 경찰은 현재 ‘에어드롭 치한’ 사건을 두 건 추가로 적발해 수사 중이며, 담당 경찰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음란 사진을 무작위로 보내는 행위는 분명 심각한 범죄다”라고 경고했다. 매년 일본에서 몰카나 성추행 등 관련 범죄로 체포되는 사람은 1800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피해자들이 모두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발생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