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대비 실적 급락에 경질 가능성 제기됐지만 “오너 부재 대비 바빠 인사 미뤄질 듯”
삼성생명 서초사옥. 이종현 기자
지난 8월 29일 대법원 파기환송이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매년 경영성과로 평가를 받는 CEO들은 부진한 성적을 보이면 연말인사에서 거취가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 CEO들은 올해 들어 실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자리가 불안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삼성생명은 올해 상반기 영업수익이 16조 487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3%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9696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반토막 났고, 당기순이익도 7940억 원으로 46.70% 급감했다. 삼성화재의 경우 올해 상반기 영업수익은 11조 507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900억 원과 4372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5.76%와 35.27% 줄어들었다.
또 삼성증권은 올해 상반기 순수수료손익이 261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05% 급감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836억 원과 2134억 원으로 각각 9.10%, 8.25% 줄었다. 삼성카드는 올해 상반기 영업수익 1조 7054억 원(전년 동기 대비 1.57% 감소)에 영업이익 4786억 원(5.35% 감소), 당기순이익 3453억 원(10.72% 감소)으로 다른 금융계열사들에 비해 감소폭이 작았다. 다만 삼성카드는 지난해도 2017년에 비해 줄어든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특히 금융계열사를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금융계열사 CEO들과 저녁식사를 겸한 회동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는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 장석훈 삼성증권 대표,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전영묵 삼성자산운용 사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저금리 기조와 시장 포화 등에 따른 성장전략 논의와 함께 실적이 떨어진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의 금융계열사 CEO 회동은 다른 해석을 낳기도 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경영승계 작업을 주도했다는 비판이 일자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이사회 중심의 계열사 각자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금융계열사는 이사회와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금융경쟁력 제고 TF’에 맡기고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거리를 두던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실적이 급감하자 금융사 CEO들을 불러 모았다”며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면서 거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서울구치소를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고성준 기자
올해 실적 부진이 국내외적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영향도 크기 때문에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시는 불안하고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삼성 금융계열사뿐 아니라 다른 금융사들도 올해 실적이 하락했다”며 “이러한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실적 부진의 책임을 전문경영인들에게만 묻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다른 삼성 금융계열사 관계자 역시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들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삼성에서 CEO 실적을 평가하는 것은 3년차 임기가 끝날 때쯤이다. 단기 실적이 안 좋다고 중간에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초 임명된 사장들을 올해 상반기 실적만 보고 교체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처럼 임기가 만료되는 CEO들은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원 사장은 2014년부터 사장직을 맡아 이미 한 차례 연임된 바 있다. 이번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반면 현성철 사장, 최영무 사장, 장석훈 대표 등은 2018년에 선임돼 2021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50대 사장을 선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도 CEO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유다. 2018년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단행한 금융계열사 CEO 인사에서도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등은 경영실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대교체에 물러났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단 남은 임기 보니 금융계열사 말고 삼성의 다른 주요 계열사 사장들의 임기는 얼마나 남았을까. 핵심 계열사의 대다수 등기임원들의 임기는 오는 2021년 3월까지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주요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전면적으로 단행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상훈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김기남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등의 임기가 오는 2021년 3월까지다.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건설부문 사장, 고정석 상사부문 사장, 정금용 리조트부문 부사장 등도 마찬가지다. 다만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내년 3월, 김동중 최고재무책임자는 2022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정작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사내이사 임기는 오는 10월 26일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임원 연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이 배임·횡령 범위를 넓게 판단한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임원에 오르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삼성 경영승계 문제를 지적해온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상 취업제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경영승계 현안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배임·횡령을 지적한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감을 느끼고 등기임원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웅기 기자 |